편집자주 :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사이클 주기에 따른 설비투자 행태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이클 저점을 통과하며 수요가 회복하고 있음에도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또 인공지능향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가 사이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생산되고 있는 반도체. 출처=셔터스톡
생산되고 있는 반도체. 출처=셔터스톡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신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를 집중해 과거처럼 공급과잉 사이클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2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수요가 회복되고 있음에도 전년 대비 설비투자비용(CAPEX) 증가는 최소화할 방침이다.

지난주 2023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4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고 작년 대비 높은 수요 증가율이 예상되나, 올해도 보수적 투자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다. 철저히 고객 수요에 기반해 가시성이 확보된 제품의 생산 확대를 위해 투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향후 과거처럼 공급과잉 사이클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우현 CFO 발언에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그간 반도체 사이클 저점을 통과하면서 보여줬던 행동과 다른 행동을  SK하이닉스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실적발표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수급 상황이 개선 중임에 따라 본격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성장세에 진입했다고 판단했으나, 설비투자 증가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앞선 두 번의 사이클하고 다른 점인데, SK하이닉스는 2016년과 2020년 사이클 저점을 통과했을 때는 설비투자비용을 유의미하게 증가시켰다. 

실제 2016년과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당시 SK하이닉스는 향후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율이 공급 증가율을 상회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2017년 예상 설비투자비용으로 전년도보다 약 17% 증가한 7조원을 제시했다.

2021년에는 “신중한 투자 정책을 유지하겠다.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증가하나, 증가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코로나라는 불확실성을 대비한 보수적인 접근 때문이었다. 실제 1년이 지난 뒤 집행된 투자비용은 전년보다 24%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크론도 마찬가지

이러한 변화는 SK하이닉스뿐만이 아니다. 업계 3위인 마이크론으로부터도 포착된다. 

지난달 있었던 회계연도 2024년 1분기 실적발표 내용을 보면 마이크론은 올해 업계 공급이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에서 수요를 밑돌 것으로 예상하나, 설비투자비용으로 작년(77억달러)과 비슷한 수준인 75~80억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마이크론도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2번의 다운 사이클 직후 설비투자비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과는 대조되는 내용이다. 

마이크론은 2018년 설비투자비용으로 75억달러로 추정했는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약 60% 증가한 수치였다. 또 2021년에는 “D램이 예상보다 강한 산업 수요에 재고가 감소했다. 2021년에 D램 산업의 수요 성장은 높은 10%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전망과 함께 전년보다 10% 늘어난 약 90억달러를 설비투자비용으로 제시했다. 

올해는 온디바이스 AI(인공지능)로 인해 스마트폰과 PC에서 플래그십 제품 증가로 D램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며,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2023년에 전년 대비 6.5% 성장한 것으로 통계치가 발표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스마트폰향 메모리 반도체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 과거와 달리 설비투자비용을 늘리지 않는 건 지난 20년 이상 진행된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매출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전략을 변환시킨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사들의 공급 조절이 관측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다운 사이클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2022년 하반기부터 감산에 돌입했는데,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려고 했던 삼성전자 역시 2023년 상반기 들어 감산에 동참하면서 SK하이닉스는 불과 5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즉 시장(D램 기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3사가 공급을 조절할 경우 다운 사이클 파장의 길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업 사이클에사도 마찬가지인데, 메모리사들은 향후 과거와 달리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양함으로써 공급과잉으로 인한 다운 사이클을 지연하거나 회피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무건전성 우수한데도 투자 늘리지 않아

이에 대해 일각에선 “유난히 골이 깊었던 이번 다운사이클로 인해 기업들이 자본배분을 보수적으로 집행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23년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당좌비율(유동자산에서 재고자산을 제외한 자산에 유동부채를 나눈 값, 지금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을 평가하는 재무지표)은 76%이다. 이는 앞의 두 번의 다운 사이클 때인 2016년 188%와 2020년 115%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 값으로, 그만큼 현재 설비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현금성자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역대 최고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들고 있음에도 마이크론은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현재 마이크론의 현금 및 단기투자자산은 약 90억달러이며, 당좌비율은 214%다. SK하이닉스에 비해 재무적으로 월등히 여유로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마이크론이 전락적인 이유로 설비투자를 일부러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형수 HSL 파트너스 대표는 “삼성전자가 연초 감산 완화 제스처를 취하며, 메모리 3사가 공급 조절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것이란 믿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삼성전자는 DDR4에서 DDR5와 HBM으로 공정이 전환되면 자연스레 생산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현재 메모리 3사가 공장을 풀로 가동해도 어차피 생산능력이 2022년 대비 80%밖에 안된다는 입장을 외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가동률은 증가해도 전체 생산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감산 완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또 이형수 대표는 “삼성전자 감산 완화에 대한 우려가 아직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풀린 상태”라며 “메모리사가 CAPEX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메모리사는 공급을 조절해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업계 1위인 삼성전자의 올해 설비투자 계획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다가오는 삼성전자 실적발표에 이목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실적발표를 통해 올해 시장 상황과 투자 계획에 대해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