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DDR5 D램 모듈용 전력관리 반도체.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 DDR5 D램 모듈용 전력관리 반도체. 출처= 삼성전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는 ‘공급망’의 이슈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재화의 수량이 시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만, 재화를 생산지에서 수요처로 전달하는 물류(物流)의 단계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두 번째는 재화가 시장에서 요구하는 만큼 생산되지 못했거나 혹은 수요가 폭증해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다.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의 선진국들조차도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의 문제는 후자의 경우다. 정리하면, 지금 전 세계는 필요한 만큼의 반도체가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반도체, 왜 부족한가?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에는 다양한 변수와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근본적으로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주체들이 예상한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수요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며, 이를 촉발시킨 것은 코로나19의 확산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반도체의 수요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증가해왔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당초 생산 계획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수요 증가 추이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대면시키지 않고서도 온라인-통신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언택트(Untact)’ 기술과 그 기술을 구현하는 서버(Server) 혹은 PC 등 전자기기들의 수요가 폭증했다. 자연스럽게 고도화된 기술이 반영되는 모든 전자기기들의 필수요소인 반도체의 수요도 함께 증가했고 이 증가 속도는 제조업체들의 예상을 아득하게 상회했다.

수요에 맞춰서 고도화되는 기술 그 자체도 반도체 부족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차량용 반도체다. 최근 제작되는 신형 차량들은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기본적으로 탑재된다. 이러한 차량 한 대에 투입되는 반도체의 수는 일반 차량보다 적게는 1.5배에서 2배 이상 늘어난다. 코로나19로 인해 반도체의 수요가 폭증한 상황에서 자동차의 수요까지 늘어나면서 반도체 수급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된 것이다.

반도체 부족에는 외교 관계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호주와의 갈등을 문제 삼아 호주산 석탄의 자국 내 반입을 금지시킨다. 그로 인해 호주산 석탄을 활용한 발전(發電)으로 가동되던 중국 원자재 공장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반도체 제조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규소, 텅스텐 등 원자재의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이는 곧 반도체 제조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반도체의 공급도 줄어들게 된다.

얼마나 부족한가?

각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의 재고는 기밀사항이기에 그 정확한 수량이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현재의 반도체 수급 상황은 시장의 거래가격 지표에 근거해 대략적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반도체 부족의 심각성을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조사의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됐다.

지난 1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부는 자국에 진출한 150여개의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2021년 12월 기준 반도체 재고 보유 수량을 파악했고, 그 결과를 대외에 알렸다. 상무부는 “2021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내의 반도체 재고가 시장의 수요대로 거래될 경우, 수량이 전부 소진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단 5일’에 불과하다”라고 밝혔다. 상무부에 따르면, 같은 기준으로 2019년의 반도체 재고가 소요되는 기간은 ‘40일’이었다.

레이먼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부 장관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반도체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는 필요한 반도체 수량의 대부분을 대만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반도체 부족현상은 최소 향후 6개월 동안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반도체 공급난의 위기에 대응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을 정부 차원의 장기 계획을 세워 자국 내 반도체 수요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의 주도 아래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EU가맹국들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 협의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정부의 주도로 구체화된 K-반도체 계획을 통해, 현재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의 상위 입지를 지키기 위한 방법론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TSMC 팹 12A. 출처= TSMC
TSMC 팹 12A. 출처= TSMC

주요 반도체 기업들 역시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해, 조 단위 이상의 대자본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확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지난 1월 13일 “올 한 해 동안 반도체 생산설비의 확충에 최대 440억달러(약 52조원)를 투자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반도체 설비의 확충에 총 43조6,000억원을 투자한 삼성전자는 올해에 그 투자 규모를 더 늘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0조원)가 투입되는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 시 제 2파운드리 공장의 착공을 올해 내로 시작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은 지난해 9월 미국 애리조나 주에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의 착공을 시작한 데 이어 지난 1월 21일에는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해 미국 오하이오 주에 2개의 반도체 공장을 추가로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