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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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지난해 전세계 완성차 업계에 드리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의 그늘이 유력 자동차 제조사들의 희비를 교차시켰다. 각 업체들은 올해 반도체 수급난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란 전망을 저마다 내놓은 뒤 실적을 더욱 개선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반도체 공급난은 완성차 업체들의 차량재고 관리 능력과 공급망 안정화 역량을 시험했다. 지난달 28일 기준 전세계에서 지난해 가장 많은 완성차를 판매한 업체는 일본 토요타로 파악됐다.

이날 토요타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완성차 1,050만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당일까지 판매실적을 발표한 전세계 업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높은 수치를 보였다. 폭스바겐그룹 888만대, 현대자동차그룹 667만대, 닛산 그룹 407만대, 르노그룹 270만대, BMW 252만대, 다임러그룹(벤츠 등) 209만대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스텔란티스 등 지난 2020년 10위권에 든 나머지 업체들은 내달 이후 판매량을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북미 등 특정 지역의 실적을 앞서 공개한 업체들의 실적을 살펴볼 경우 전년 대비 지난해 판매량 순위가 일부 변동될 전망이다.

미국 1위를 줄곧 차지해온 제너럴모터스는 지난해 13% 가량 감소한 판매실적을 기록해 토요타에 선두를 빼앗겼다. 토요타는 미국 자동차 시장 역사상 처음 현지 국적 업체를 뛰어넘어 정상에 오른 첫 외국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선 BMW가 벤츠를 201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추월했다.

각 업체들은 코로나19의 창궐 시점인 지난 2020년 혹독한 완성차 공급·수요 침체기를 보낸 뒤 지난해 반도체 수급난에도 노련하게 대처해왔다. 다만 ‘선수들’ 사이에선 등락 추이를 불가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출처= 한국자동차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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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조사 “한동안 부족” vs 완성차 업체 “연내 개선”

작년 완성차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한 차량용 반도체의 향후 공급 추이에 대한 전망에는 업계별 온도차가 나타난다. 반도체 부족현상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은 주로 반도체 공급 업체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대만 반도체 제조사 TSMC는 칩 제조 현황이 올해 이후에도 정상화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올해 생산 가능한 반도체 물량에 대한 수주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단기간 생산능력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분석기업 S&P글로벌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는데 100억~200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건설에 3~5년 가량 긴 기간이 소요된다. 이밖에 반도체 생산 능력을 대부분 내재화한 테슬라도 지난해 최고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반도체 수급난을 고려해 신차를 출시하지 않기로 선언함에 따라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S&P글로벌은 “칩 제조사들이 향후 수년간 생산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약속했다”며 “하지만 새로운 생산 능력이 안정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다 칩 물량을 두고 전자기기의 제조사와 완성차 관련 종사자 양측간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연내 수급난의 여파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2021년 영업실적을 발표하는 컨퍼런스콜에서 일제히, 오는 하반기 이후 반도체 수급난의 영향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반도체 부품의 주요 생산지인 동남아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사그라드는 등 공급망 이슈가 해소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토요타도 지난해 12월 이후 올해 반도체 수급난의 영향이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현저히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신차 출고 현황을 개선하는데 성공한 한편, 차량 수요가 여전히 활발히 발생하고 있는 점에 자신감을 얻은 모양새다.

출처=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출처=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완성차 업체, 반도체 수급과정 직접 제어한다

완성차 업체들은 반도체 제조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책과 별개로, 칩 물량을 직접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가장 먼저 하드웨어로서 초기 단위인 반도체 칩으로 ‘전자제어장치’에 탑재된 뒤 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모듈’이나 ‘시스템’을 구성한 후 ‘완성차’의 최종 조립 과정에 투입된다. 완성차 업체는 납품받은 모듈·시스템을 통해 반도체 칩을 건네받는 셈이다.

완성차 업체는 이번 반도체 수급난을 겪은 이후 전자제어장치, 전장부품 등을 각각 제공하는 단계를 거슬러 직접 반도체 공급업체와 거래하려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전 단계 납품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부품과 공급망 등을 직접 관리해나갈 방침이다.

이 일환으로 현대차, 토요타, 테슬라, 폭스바겐 등 업체들이 삼성전자나 퀄컴, NXP, TSMC 등 주요 업체들과 기술적으로 교류하거나 지분 투자해 반도체 수급 과정을 내재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밖에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를 주문하는 단위 기간을 늘려 제조사가 수요를 예측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협업해야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장홍창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지해 최근 기술협력, 내재화, 공급망 관리방식 전환 등 행보를 개시했다”며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시작된 이후 관련 생태계에 나타날 근본적인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일각에선 대체 공급처를 널리 확보하는 데에도 힘써야 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이는 반도체 생산능력을 내재화하는데 편중된 전략이 위험할 것이란 의미를 내포한 주장이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현대차·기아가 반도체 사태 초기 비교적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건 안전재고 확보량을 늘리고 복수 공급처를 확보해둔 덕분”이라며 “반도체 공급난을 내재화하는 한편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