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프레임> 미셸 부커 지음, 신현승 옮김, 미래의창 펴냄.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엄청난 충격을 동반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을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고 불렀다. 이후 ‘회색 코뿔소(Grey Rhino)’라는 개념도 널리 소개됐다. 회색 코뿔소란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위험 또는 눈으로 보고서도 못 본 척 하는 위기를 가리킨다.

이 책의 저자가 ‘회색 코뿔소’ 이론을 만든 장본인이다. 저자는 지난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독자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다수 사건 사고가 마치 우리를 향해 쿵쿵 대며 요란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회색 코뿔소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대형 사건 사고는 어느날 갑자기 무작위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일련의 경고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회색 코뿔소라는 위기 상황은 신호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위험 신호를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그 이유로 "우리가 자신의 승부수가 잘못될 가능성을 실제보다 낮게 보고, 리스크보다는 장밋빛 전망에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블랙 스완’과 다른 ‘회색 코뿔소’

회색 코뿔소 이론은 여러 정부와 기업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기여를 했다. 팬데믹 이후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지금, 경제·금융 전문가들은 다시금 “회색 코뿔소가 다가온다”며 경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 상황은 물론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한층 더 실용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을 제시한다.

책에는 팬데믹,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 같은 거대한 리스크부터 실직, 건강 문제, 커리어 전환, 결혼 등 일상적 리스크까지 관리의 영역을 확장하여 최적의 대안이 제시돼 있다.

어떤 사람은 위기에 꼼짝없이 당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위기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설명돼 있다. 저자의 지론은 “코뿔소에 짓밟히는 대신 코뿔소의 위력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내가 선택한 리스크가 나를 만든다”

우리는 매 순간 리스크를 판단하고, 선택한다. 작게는 저녁 식사로 평소 먹던 음식을 먹을지, 아니면 새로운 음식에 도전할지, 하락장에서 주식을 팔지, 아니면 더 지켜볼지, 크게는 기업이 부도덕한 경영진을 해고할지, 아니면 두고 볼지 등 리스크 판단은 일상의 선택부터 기업과 국가의 흥망까지 좌우한다.

어떤 리스크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회이지만, 어떤 리스크는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치명적인 위협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리스크와 긍정적 리스크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위기를 마주했을 때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경영진의 개인적인 리스크가 어떻게 한 기업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까? 왜 어떤 국가는 전염병, 기술 변화, 기후 위기 같은 리스크를 다른 국가보다 더 빨리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답을 리스크 프레임, 즉 ‘관점’에서 찾는다. 리스크를 보는 관점은 타고난 성격, 자라온 환경, 경험, 안전망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런 요소들은 한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준다는 점에서 저자는 이를 ‘리스크 지문(指紋)’이라고 작명했다.

리스크 지문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개인과 기업, 사회가 리스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지는 각각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인적 자원에서부터 글로벌 전략, 디자인, 마케팅, 합병, 정책 등 모든 측면에서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리스크 지문을 파악할 때 내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타인과 조직, 문화마다 다른 관점들을 진정으로 공감하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 “리스크 프레임으로 위기와 기회 분별해야”

리스크는 제한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 리스크는 기회이자 위험이며, 야누스의 얼굴처럼 개인과 집단의 기분에 따라, 관점과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리스크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며 자산 혹은 부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스크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저자는 리스크 프레임으로 위기와 기회를 분별함으로써 부정적인 리스크는 줄이고 긍정적인 리스크는 감수하며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리스크 지문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와 연구가 등장한다. 인종차별의 위기를 딛고 독보적인 자리에 오른 디자이너, 취재를 위해 전쟁 현장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기자, 500개 이상의 공유 업무 공간을 하나로 연결시킨 창업자, 마약과 질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피트니스 산업계의 스타가 된 CEO 등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의 실화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과 깨달음을 준다.

◇“리스크 통제감? 환상 또는 과신일 뿐”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사고 이후 미국의 승무원과 조종사 협회는 보잉 737 맥스 기종의 운항 안전성에 대해 서로 다른 진술을 내놨다.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조종사들은 승무원들보다 비행기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런 통제감은 착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

여러 연구에서 밝혔듯이 인간은 실제보다 더 큰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숫자를 선택하면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동승한 사람보다 교통사고 리스크를 더 낮게 인식한다. 학자들은 이런 ‘통제감의 환상’을 비현실적인 낙관주의 또는 과신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동업(사업 파트너십)은 50~80% 실패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파트너십이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성격 충돌, 신뢰 붕괴, 가치관 차이 등 리스크 관련 요소들을 지목한다.

전문가들은 동업이 잘 유지되려면, 사전에 상대방이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지, 즉 ‘리스크 감수자‘인 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