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4월 기자들과 만나 다양한 탈통신 전략을 가동하겠다 밝히는 한편, 미디어 분야에서 넷플릭스와도 협력을 타진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다만 전제는 붙었다. 협력은 하더라도 이는 '망 이용대가와는 관련이 없다'는 메시지다.

LG유플러스에 이어 KT도 글로벌 OTT 강자인 넷플릭스와의 연대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려 노력하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이 글로벌 OTT 강자 넷플릭스와 조심스러운 연대를 타진하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11번가에서는 아마존과, 모빌리티에서는 우버와 만나는 등 글로벌 기업과의 연대를 특히 강조하는 SK텔레콤이기에 업계에서는 비록 웨이브가 있기는 하지만 SK텔레콤과 넷플릭스의 연대도 '괜찮은 시도'로 본다.

그럼에도 박 사장은 시너지 창출 여지를 남기면서도 왜 '망 이용대가'와는 무관하다고 힘주어 강조했을까. 왜 통 크게 협력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SK텔레콤 산하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끈질긴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회사는 현재 망 이용대가를 두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중이다.

일단 SK브로드밴드는 최초 페이스북과 비슷한 전쟁을 벌인 후 판정승을 거둔 상태에서 넷플릭스와의 일전에도 자신감을 보이는 중이다. 물론 넷플릭스도 만만치않다. 그 소소한 관전 포인트를 찾아보자.

몸풀기. 전쟁의 전개

넷플릭스와 전쟁을 벌이기 전, SK브로드밴드는 페이스북과 망 이용대가를 두고 격전을 벌인 바 있다.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가 많아지며 트래픽이 급격히 상승하자 SK브로드밴드의 망 비용이 증가했고, 이에 페이스북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라 주장했으나 페이스북이 거부하며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소위 임의접속 변경이라는 대형사고를 일으켰고 SK브로드밴드와의 전투는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싸움의 향방은 2018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에 3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SK브로드밴드에 기우는 듯 했으나 2018년 5월 페이스북이 불복을 선언하며 다시 요동친다. 다만 이후 벌어진 몇 차례의 공방전 끝에 결국 SK브로드밴드가 판정승을 거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페이스북은 현재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도 망 이용대가 전쟁을 시작했다. 일단 SK브로드밴드는 2019년 11월 방통위에 망 이용료 협상 중재 요청을 했으나, 지난해 4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며 현안을 법정 다툼으로 끌고가 판을 흔들며 전투는 순식간에 '난타전'으로 번지고 있다.

전투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우선 CP(콘텐츠공급자)인 넷플릭스가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인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료를 낼 '의무가 있는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재판 과정에서 접속과 전송은 다르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만을 위한 전용망을 제공하지 않는 상태에서 접속에 대한 책임은 넷플릭스가 질 수 있으나 전송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ISP인 SK브로드밴드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는 "CP의 경우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의무가 있고, SK브로드밴드는 ISP로의 책임을 지면 그만"이라는 논리다. 그 연장선에서 CP인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며 이러한 의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여기서 ISP의 망 유지보완에 대한 부담까지 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그 연장선에서 넷플릭스는 망 중립성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 역시 ISP의 책임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반발하고 있다. 특히 CP인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접속은 유료지만 전송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 빈약하다 공격하는 한편 망 이용대가에는 접속료와 전송료가 모두 포함된다 반박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에 있어 망 중립성을 거론하지만 이는 상법에 없는 관습법에 불과하며, 인터넷 시장이 커지며 기존 무정산 방식이 일방향 정산방식(Paid peering)으로 달라지는 트렌드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플랜B로 오픈 커넥트를 대안으로도 제시한다. 오픈 커넥트는 소비자가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 비용을 지불하는 ISP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며 ISP의 네트워크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고 회원들이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에 미리 저장해두는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를 두고 "망 트래픽 부하를 현저히 줄임과 동시에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는 ‘윈-윈'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망 이용료를 내라는 ISP의 주장은 CP에게도 ISP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 동의할 수 없으며 CP는 콘텐츠 투자라는 책임만 지면 되지만, CP의 의무 중 하나인 고객 콘텐츠 서비스를 위해서는 망 이용료라는 책무가 아니라 오픈 커넥트라는 별도의 책무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한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에 제기한 채무부본재확인소 3차 변론기일이 열린 상태다.

공은 6월 25일 법원으로 넘어갔다. 법원은 6월 25일 1심 선고를 통해 두 기업의 분쟁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관전 포인트 하나. 누가 억울한가?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역시 싸움의 균형이다. 여기서는 두 기업의 신경전을 현실적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SK브로드밴드의 문제제기는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넷플릭스가 엄청난 트래픽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용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미디어 시청을 시작할 경우 도쿄와 홍콩에 있는 캐시서버에서 트래픽이 발생하며 그 트래픽은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SK브로드밴드의 넷플릭스 데이터 트래픽만 피크타임 기준 초당 900기가비트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SK브로드밴드가 별도의 자금을 동원해 넷플릭스만을 위한 전용회선까지 만드는 중이다.

접속과 전송이 다르다는 넷플릭스의 주장도 이견이 큰데다, 망 중립성 가치가 강제력이 있는 법안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외국에서 일부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중이다. '왜 한국에서만 내지 않겠다 하는 것이냐'는 비판에는 할 말이 없다. 일각에서는 방통위의 중재로 접점을 찾아가던 사안이 넷플릭스의 갑작스러운 법정행으로 논란이 더 복잡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넷플릭스 주장을 보면 ISP와 CP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틀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ISP를 통한 고객과의 만남에 집중하는 행위가 망 중립성 가치 내부에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인터넷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타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 발전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이번 전쟁의 관전 포인트로 볼 수 있다.

관전 포인트 둘. 곡소리 나는 한국 기업?

여기부터는 두 기업 신경전의 핵심에서 한 발 물러나 이와 연결된 다양한 파생효과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규제기관들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플랫폼 법안 등 ICT 기술 기업들을 규제하는 정책들을 경쟁처럼 쏟아내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구글의 탈세 및 시장 독과점 의혹, 애플의 후안무치한 시장 정책 등에 국민감정이 나빠지자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압박도 커지고 있다. 앱마켓 독과점 문제와 인앱결제 강제 등과 관련이 있는 소위 구글 갑질방지법,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 통신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넷플릭스법이 나온 배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분쟁 등을 통해 확산되며 오히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유탄을 맞는다는 점이다. 특히 넷플릭스 방지법은 막상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는 어려우면서도 네이버와 카카오같은 국내 기업들에 대한 규제로만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글로벌 기업이 일으킨 논란으로 만들어진 법안이 국내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글로벌 기업들을 모두 놓치는 대신 애먼 국내 기업만 규제하는 셈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도 무력화시키며 국내법을 비웃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격을 받는 곳은 국내 기업들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구글과 넷플릭스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 말하지만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 및 압박 분위기가 정말 국내 인터넷 기업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고민할 필요도 있다.

최근의 분쟁을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 국내 기업 SK브로드밴드의 전투가 아니라 CP와 ISP의 분쟁으로 본다면 더 의미심장한 그림이 펼쳐진다. 상황에 따른 분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단 CP로서의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현재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SP들이 과도한 비용을 걷어간다고 비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망 이용대가 분쟁이 SK브로드밴드의 승리로 끝이 날 경우 오히려 국내 CP들은 타격을 더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논의도 진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한편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분쟁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사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고용과 관련된 옴니버스법 일환으로 'Government Regulation No. 46/2021 on Post, Telecommunication and Broadcasting Sectors as part of Indonesia's Omnibus Law Implementing Regulations'이라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통칭 46호 법안은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산업 개방 및 외국 투자자들의 허용 빈도를 통신 및 인터넷 기업을 대상으로 분류한 가운데, 사실상 한국의 넷플릭스법을 고스란히 들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당한 트래픽을 가져가는 OTT를 포함한 외국 기업에게 ISP에 대한 비용보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인터넷 기업도 46호 법안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국내에서 망 이용대가와 관련된 논란이 커지며 CP가 ISP를 대상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인도네시아에서 비슷한 내용의 46호 법안에 따라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CP)들의 부담이 자동적으로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현지 당국이 한국의 망 이용대가 사례를 통해 46호 법안을 근거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인터넷 기업들을 압박할 여지가 있다"면서 "이번 현안에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한 이유"라 말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장 디지털세만 해도 미국과 유럽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나 한국은 통상마찰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이러한 전략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이 망 이용대가 논쟁에서 일정정도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관전 포인트 셋. 거버넌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대가 분쟁은 인터넷 거버넌스의 틀을 바꾸는 전쟁이기도 하다. 특히 ISP와 CP의 망 이용대가와 관련된 이슈는 망 중립성이라는 인터넷 거버넌스와 큰 관련이 있다. 당연히 망 중립성이라는 핵심 가치에 따라 구축되거나 파괴된 인터넷 환경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번 현안에 대한 판단 자체가 달라진다.

CP와 ISP, 나아가 전체 인터넷 구성원들의 냉정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관전 포인트 넷. 언제까지 강건너 불구경?

망 이용대가 논쟁의 또 다른 키워드는 치열하게 싸우는 SK브로드밴드와 강건너 불구경만 하는 KT, LG유플러스의 행보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 국내 시장 당시부터 상당히 불리한 조건을 감내하고 손을 잡아 IPTV 가입자를 크게 늘렸고, 이제는 KT도 넷플릭스의 손을 잡은 상태다. 그 연장선에서 SK브로드밴드가 사실상 ISP 대표 선수로 넷플릭스와 외로운 전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KT와 LG유플러스가 디즈니 플러스 등의 시장 진출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이번 망 이용대가 분쟁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판이 흔들릴 경우 두 통신사가 극적으로 ISP의 입장에서 공동투쟁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과 토종 OTT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당시 별도 OTT를 가진 통신사들이 초반에는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11일 음악저작물 사용 요율을 1.5%로 확정한 후 OTT음대협이 행정소송까지 걸자 통신사들도 전격적으로 움직인 사례가 있다. 웨이를 통해 이미 OTT음대협 단일대오를 이룬 SK텔레콤 외에도 KT와 LG유플러스가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OTT 음악 저작권료 징수 규정 승인을 중단하라는 행정소송전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관전 포인트 다섯. 합의?

최근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전을 두고 판사의 임기 및 기술에 대한 접근 등을 고려할 경우 장기전보다는 빠른 승부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설립 및 다른 미디어 플랫폼과의 합종연횡과 경쟁 등 치뤄야 할 전투가 산적한 상태다. 빠른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법정 소송으로 사안을 끌고간 넷플릭스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아직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는 없으나 6월 25일 공판기일을 기점으로 두 회사가 나름의 합의를 위한 수 싸움에 돌입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