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품귀 현상, 특히 차량용 품귀 현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NXP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달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인수합병과 관련된 전격적인 결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선택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출처=NXP
출처=NXP

“NXP 인수 가능성 충분하다”

지난 1월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CFO)은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신규 사업에서도 지속성장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며 3년 내 의미있는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 말했다. CFO가 직접 인수합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6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104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슈퍼 사이클, 품귀 현상이 심해지며 삼성전자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라인 증설에 나서는 한편 극적인 인수합병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평택 및 중국 시안에서 라인 증설에 나선 상태에서 인수합병의 유력한 후보군으로 네덜란드의 NXP가 거론되고 있다. 당장 21일(현지시간) 미 경제주간지 바론즈는 JP모건 소속 박정준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수 있다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에서는 일단 ‘여력이 충분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100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한 가운데 NXP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최대 7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 자체로 막대한 출혈이지만 한 때 퀄컴이 눈독을 들였던 세계 2위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를 품을 수 있다면 큰 무리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NXP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와 인포테인먼트,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 현재 심각한 품귀 현상을 보이는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에서 두각을 보이는 기업이다. 지난해 독일 인피니언에 이어 11.2%의 시장 점유율로 2위에 머물렀으나 2018년까지는 글로벌 1위 기업으로 활동한 바 있다. ‘여력’이 충분한 삼성전자가 충분히 인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글로번 반도체 패권, 특히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확보하는 한편 글로벌 반도체 거점 전략과 의미있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NXP는 대만 TSMC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싱가포르 공장을 제외할 경우 네덜란드 네이메헌 1곳, 미국 애리조나 챈들러 1곳, 텍사스 오스틴 2곳 등 총 4곳의 글로벌 생산거점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풍부한 유동성, 즉 ‘여건’을 통해 NXP를 품는다면 당장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장악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 대비를 넘어 글로벌 생산거점 전략에서 의미있는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보유한 하만과의 시너지도 노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오디오 명가이자 전장사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바 있다. 이어 2018년 디지털 콕핏을 출시하며 기세를 올린 가운데 최근 온라인 쇼케이스 행사 ‘하만 익스플로어 2021(Harman Explorer 2021)’를 통해 디지털 콕픽 2021까지 공개했다.

하만 OTA, 하만 이그나이트 스토어, OLED, QLED, LCD 등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삶의 연장선'으로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콘텐츠 제작의 기능까지 넣어 자동차의 일반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전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애플카의 비전이 완성차 업계를 술렁이게 만드는 한편 주요 업체들의 미래차 전략들이 속속 공개되는 상황이다. LG도 마그나 및 룩소프트와의 연대로 미래 전장사업에 올인하는 상황이다. 그 자체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당분간 극단적인 팽창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품은 하만도 ‘한 칼’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경우 차량용 반도체 전략과 전장사업의 하만이 미래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처=하만
출처=하만

“NXP 인수 가능성 낮다”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할 요인이 낮으며,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NXP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일단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품귀현상을 보이고, 이 문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에 큰 뜻을 보인적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D램 및 낸드플래시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에서 두각을 보이며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로 나아가는 로드맵이 구성된 상태지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은 삼성전자의 옵션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자체가 현재 극심한 품귀난을 겪으며 ‘귀하신 몸’이 되었으나 사실 사업 특성상 큰 수익을 거두기는 어려다는 평가도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안전 규제가 강하지만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 고도화보다는 상황에 맞는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높은 수익이 창출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 뛰어들기는 위험하다는 말도 나온다.

NXP의 매출 중 44%가 차량용 반도체며 나머지 21%는 사물인터넷, 20%는 통신 인프라, 15%는 모바일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차량용 반도체 외 모든 영역은 삼성전자도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영역이 겹치는 만큼 삼성전자 입장에서 NXP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닐 수 있다.

최근 불거지는 반도체 국수주의도 삼성전자의 NXP 인수를 막을 수 있는 요인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확보하겠다 선언했으며 미 바이든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구축하는 중이다. 당연히 중국도 자국 중심의 반도체 생산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엔비디아가 영국의 암을 인수하려 움직이자 영국 규제 당국이 불허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반도체 국수주의와 자국 생산 우선주의 등이 심해지고 있다. 당연히 네덜란드 정부가 삼성전자의 NXP 인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NXP는 한 때 퀄컴이 인수를 추진했으나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서 중국 규제당국의 불허 결정에 딜이 무산된 경험도 있다.

NXP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모든 외국기업과의 딜에서 더욱 신중한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삼성전자 인수합병 전략도 지지부진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차량용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을 종용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도 삼성전자가 NXP 인수를 통해 미국 외 공장에서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NXP 인수합병을 추진할 경우 눈치를 볼 외부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 구속된 상태라 전격적인 인수합병 결정을 내릴 콘트롤 타워가 부재한 것도 불안요소 중 하나다.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 부재로 사업 로드맵을 추구하지 못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아무리 여력이 있다고 해도 7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움직이는 것은 총수의 결단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