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자동차 시장이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부족 현상까지 덥치며 고민이 깊어지는 중이다.

완성차 업체들과 부품사, 반도체 전문기업 등 관계사들 모두 전에 없던 자동차 시장 양상에 당혹스러워하는 한편 각국 정부와 함께 대안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포산(Foshan)에 위치한 상하이폭스바겐 공장. 출처= 상하이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 캡처
중국 포산(Foshan)에 위치한 상하이폭스바겐 공장. 출처= 상하이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 캡처

유럽 봉쇄 중국 활황, 반도체 공수 불균형 유발

16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뒤덮고 있는 반도체 부족 현상은 앞서 지난해 하반기 중국에서 시작됐다.

당장  지난해 12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의 중국법인인 상하이폭스바겐, 이치폭스바겐 등 두 업체는 같은 달 초 완성차 생산활동을 일시 중단했다. 반도체 부품을 유럽, 일본 등지의 주요 파트너사로부터 원활히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코로나19 사태의 여파에서 한층 자유로워지고 현지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가동되자 벌어진 현상이다. 나아가 같은 기간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조업에 차질을 빚음에 따라 공급과 수요 양측이 불균형을 일으켰다.

또 반도체 제조사들이 차량 대신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에 탑재될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에 더욱 투자한 점도 자동차 시장엔 악재다. 당시 반도체 제조사들은 자동차 수요의 완만한 회복세 또는 보합세를 전망함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문조사업체 LMC 오토모티브는 올해 전세계 신차 판매량이 전년(7,577만대) 대비 10.9% 증가한 8,402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심한 타격을 입은 지난해에 이어 기저효과가 나타나겠지만 2019년 9,038만대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선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반도체 공급난은 미국과의 무역갈등으로 인해 가중됐다. 미국 정부가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로 만든 반도체를 중국 업체에 공급하기 위해선 사전 허가를 받도록 제재했다. 이에 중국 업체 화웨이가 제재 조치 직전 반도체를 대량 사들임으로써 반도체 부족 현상이 IT 업계에 이어 자동차 시장까지 도미노 쓰러지듯 확산됐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2월 4일 “중국 자동차 시장의 전면적 회복의 영향으로 (차량용 반도체 부품 부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분기 반도체 가뭄 전세계 확산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 시작된 반도체 수급난은 이후 올해까지 현지 뿐 아니라 전세계 완성차 업체의 조업 규모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서 판매하거나 시장별 주력 차종에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탑재함에 따라 시장별·차종별 공급 격차가 갈수록 심화했다. 폭스바겐의 경우 결국 지난 1분기 중국 뿐 아니라 북미, 유럽 등 시장에서 자동차 생산량을 일부 축소시켰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이 지난 1분기 전세계에서 직면한 생산차질 규모가 10만대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폭스바겐에 이어 토요타, 혼다, 포드 등 업체들이 반도체 부족 현상 때문에 자동차를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 토요타가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생산하는 픽업트럭 툰드라의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혼다도 같은 달 일본 4,000대, 중국 3만대씩 지역별로 생산량을 감축했다. 닛산도 소형차 노트의 생산량을 월 5,000대 가량 축소 조정했다. 포드는 미국 켄터키 공장을 같은 달 말까지 3주 정도 휴업시켰다. 지프, 피아트 등 브랜드를 두고 있는 유럽 브랜드 FCA도 캐나다, 멕시코 등지에 세운 공장을 가동중단하거나 휴업 기간을 연장했다. 아우디는 1만명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휴직 조치를 실시했다.

최근 신차에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첨단기능이나 전동화 기술 등을 지원할 전자장비(전장)에 많은 반도체가 필요한 점도 반도체 재고를 더욱 빠르게 줄인 요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차량에 탑재된 반도체의 개수는 일반차의 경우 200~300개 수준인데 비해 자율주행, 전동화 등 기술이 적용된 차량에는 통상 6~10배 물량인 2000개가 장착된다.

이 같은 자동차 업계 추세는 공급 적체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 등에 따르면 반도체를 주문한 뒤 납품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인 리드타임(lead time)이 기존 12~16주에서 26~38주로 2배 이상 길어졌다.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공급사인 반도체 제조사들이 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는 점은 애석한 부분이다. 제조사들이 이미 IT 기기 등에 탑재할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공정을 재구성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조정하는 것은 적잖은 품이 드는 작업이다.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사옥. 출처=TSMC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사옥. 출처=TSMC

차량용 반도체, 만들긴 어렵고 돈은 안돼 ‘외면’

또 다른 문제는 차량용 반도체의 수익성이 비교적 낮아, 반도체 제조사가 공정을 변경할 명분을 다소 희석시키는 점이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반도체는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이다.

차량용 MCU는 5년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내구력을 지니고 16~40나노미터 수준의 고도화한 미세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기 때문에 관련 공정을 구축하거나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한 반도체 제조사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하지만 차량용 MCU는 비교적 저가형 반도체에 사용되는 원판(웨이퍼)을 바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IT기기에 들어가는 MCU에 비해 낮은 마진율을 갖췄다. 이 같은 이유로 글로벌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분야의 매출액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까다롭지만 수익성은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소수 업체가 만들고 있기 때문에 수급난을 단기에 극복하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 주요 완성차 업체의 본사나 공장이 위치한 국가의 정부들이 직접 반도체 제조사에 증산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3개국의 정부는 지난 1월 말 대만의 반도체 관련 주무부처인 경제부에 현지 반도체 생산량을 증대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만 당국은 반도체를 증산하도록 기업에 촉구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12일(현지시간) 반도체 품귀 대책 회의를 통해 삼성전자 등 기업에게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나서라는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반도체 생산·유통구조 뿐 아니라 혹한, 화재 등 자연재해나 인재(人災)로 인한 공장 셧다운 사태도 반도체 가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 2월 16일 오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위치한 NXP, 인피니온 등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들의 공장이 가동중단됐다. 당시 혹한이 들이닥쳐 전열기구 사용량이 느는 등 이유로 지역 내 전력 소모량이 급격히 늘어나 정전 사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어 2월 13일엔 차량용 반도체 시장 3위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가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를 확인하기 위해 이바라키현에서 가동해온 공장을 일시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19일엔 같은 공장에 화재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복구하는데 한달 가량 기간을 소요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1위 업체인 대만 TSMC도 각종 재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일 대만 북부 신주 과학단지 내 12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난데 이어 14일엔 타이난 공장에 송전전력 케이블 이상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6시간 정전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지난 1분기 반도체 공급난으로 생산 차질을 빚은 자동차 물량이 13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국산차 업체들은 반도체 재고량을 비축함으로써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2~3개월 가량 더 오래 버텼지만 결국 생산차질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제너럴모터스 본사의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는 한국지엠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인천 부평공장의 생산량을 절반 가량축소시켰다. 쌍용차도 이날까지 8일간 평택공장을 멈춰 세운다.

현대차와 기아도 지난달부터 울산공장, 화성공장 등 생산시설의 주말 특근을 없애거나 줄였다. 현대차는 이어 지난 7일부터 일주일동안 울산1공장을 휴업시켰고, 12~13일 이틀간 아산공장을 가동 중단했다.

차세대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 5의 생산량도 당초 목표치였던 월 1만대에서 2,600대로 대폭 줄임으로써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기아는 오는 7월 출시할 차세대 전기차 EV6의 양산 일정을 앞두고 있어 현재로선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다만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됨에 따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주체마다 제기한 반도체 수급난 지속 시기에 대한 전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이번 상반기 안에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7월 말까지는 반도체 수급난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고,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반도체 리드타임을 고려할 때 3분기까지는 완성차 생산 차질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파운드리 시장 3위 업체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의 톰 콜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최대 2년간 반도체 품귀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갈수록 다양한 기능을 지원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을 개발·생산하기 위해선 적어도 1년 이상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 데 따른 예측이다.

반도체. 출처= HMG저널 캡처
반도체. 출처= HMG저널 캡처

완성차 업체, 공장 세우거나 제품 사거나 ‘각자도생’

반도체 제조사들이 현재 이어지는 차량용 제품 수급난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가장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완성차 업체들도 마냥 손놓진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공급처를 다변화하거나 정부와 합작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데 투자하는 등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간 관행처럼 이어온 반도체 유통 구조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곳은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중국 시장에서 대규모 생산차질 문제를 경험한 후 공급처를 늘림으로써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전·후공정을 각각 맡은 협력사와 설계 협력사에 이어 벤더를 거쳐 제품을 받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설계사나 전문 제조업체로부터 완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한 반도체를 불필요한 유통 과정 없이 전문제조업체로부터 신속히 확보할 수 있고, 여러 공급처를 둠으로써 돌발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은 반면 구매단가가 높아져 완성차 가격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정부 주도하에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이 같은 방안에 화답했다. 정부는 이번 상반기 이 같은 구상을 구체화한 ‘K-반도체 벨트 전략’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내 업계의 경우 현재 차량용 반도체 물량 98%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을 타개하기 위한 개발·생산·제조 국산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완성차 업계에서 갈수록 성능을 강화한 반도체를 원하는 가운데 관련 전문제조 역량과 성숙도 높은 자동차 시장 등 강점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무역협회 신성장연구실은 “한국은 세계 7위 규모의 자동차 산업(반도체 수요처)과 세계 시장의 18.4%를 차지하는 반도체 공급처를 보유하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실은 “전동화,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산업의 기술 트렌드를 고려해 경쟁 우위에 놓인 국내 분야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의 생산성‧혁신성‧견고성 등 기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