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그룹 차원의 배터리 및 충전 관련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는 파워데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폭스바겐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그룹 차원의 배터리 및 충전 관련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는 파워데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폭스바겐

[이코노믹리뷰=노성인 기자] 글로벌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이 자사 전기차의 주력 배터리를 각형 배터리로 변경함에 따라 국내 배터리 3사 전망에 먹구름이 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발표로 3사가 모두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화학(051910)은 전거래일 대비 7만5,000원(7.76%) 하락한 89만1,000원에 마감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과 삼성SDI(006400) 또한 각각 5.69%, 0.87% 하락했다.

이는 15일(현지시간) 폭스바겐이 ‘파워데이’ 행사에서 배터리 통합화, 내재화 등의 중장기 전략 변화 발표가 기폭제가 됐다. 배터리 셀을 각형으로 통합해 비용을 절감하고 복잡성을 줄이는 동시에 배터리 성능도 향상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오는 2023년 각형 배터리 사용을 시작해 2030년에는 80%까지 비율을 높일 계획이다.

아울러 유럽 내 투자를 통해 40.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공장 6개, 총생산능력 240GWh의 공장들을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와 합작해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폭스바겐에 파우치형 배터리를 납품하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게는 당황스러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인 ‘MEB 플랫폼’의 경우 LG화학이 유럽 내 최대 공급업체이고, SK이노베이션이 2위 공급업체로 알려져 있다.

이에 적어도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삼성SDI는 이번 이슈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모양새다. 삼성SDI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 다르게 중대형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박세혁 SNE리서치 연구원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플랫폼 중 가장 표준으로 평가받는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이 각형을 선택한 만큼 각형 배터리 제조사의 중장기적 수혜가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고체 배터리 전환이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채택 배경이라는 분석도 삼성SDI에 긍정적이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전고체 배터리와 관련해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3월 1회 충전 주행거리 800㎞에 1,000회 이상 충전과 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 법인인 '얼티엄 셀즈'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건설되고 있다. 출처=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 법인인 '얼티엄 셀즈'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건설되고 있다. 출처=LG에너지솔루션

LG화학은 고객사 다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동진 현대차 연구원은 “LG화학의 경우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JV) '얼티엄 셀즈(Ultium Cells)’를 통해 미국 내 배터리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은 원통형 전지 증설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며 ”최근 LG화학은 미국 내 신규 공장 투자를 통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이라 발표했는데 이 공장에서 테슬라 향 46800 모델(46mm 길이 80mm) 원통형 전지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코나전기차 화재 관련 일회성 비용을 지난해 4분기에 이미 반영해 악재는 소멸됐고, 원통형 전지 신규 증설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분쟁’ 패소에 이어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탑재로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10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SK이노베이션 측에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강동진 연구원은 “파우치 배터리만 생산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상황을 고려하면 시장이 좁아지고 소송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배터리 사업 자체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폭스바겐이 유럽 내 자체 배터리 생산 설비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유럽 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소재업체와 노스볼트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수혜를 점치기도 했다.

정원석 연구원은 “이번 발표를 통해 폭스바겐이 필요로 하는 배터리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일반화·평준화된 이차전지 소재 특성상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유럽 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는 국내 소재업체들로는 솔루스첨단소재(336370)(동박), 솔브레인(357780)(전해액) 등이 있다. 노스볼트향 소재 공급업체들로는 동진쎄미켐(005290)(CNT 도전재), 나노신소재(121600)(CNT 도전재) 등이 꼽혔다.

한편 배터리 3사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반면 솔루스첨단소재는 장중 10% 가까이 오르는 등 유럽 진출 소재업체들은 상승세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