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비가 오른다고 한다. 고객사(화주)에 운송료 인상을 이미 통보한 택배사도 있고, 인상 시점 수준을 놓고 막바지 조율 중인 업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물동량이 급증하자 인건비 증가와 택배 박스 부족 등 각종 비용부담 요인으로 운임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와 정부도 대체로 가격인상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명분과 실리, 공감과 반감 사이
택배비 인상을 놓고 사회적 분위기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단, 소비자는 조건을 붙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택배 시장의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9%가 ‘인상액이 택배 종사자 처우 개선에 사용된다’는 전제하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힘입은 택배업계도 올해 기필코 요금인상에 성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인력 확충, 설비투자 및 적정 배송수수료 제공을 위해 택배 요금 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커머스 등 화주는 택배료 인상에 대해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요금인상이 판매자의 이윤하락으로 이어지다 보면 결국 제품가격의 인상이 불가피하며 이 구조는 소비자나 업계 모두 불이익이 될 것이란 이유다.

인상을 인상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적게 벌어도 많이 팔면 남는다’ 20년 전부터 택배 시장은 ‘규모의 경제’ 달성을 목표로 치킨게임에 시달렸다. 가격 인하 경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2013년 당시 택배 2위 업체였던 현대택배(현 롯데)가 “시장이 공멸한다. 500원 요금인상을 시행하겠다”라고 먼저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백기 투항한 적이 있다.

CJ대한통운, 한진, 로젠 등 경쟁업체들은 내심 요금인상을 원했지만, 현실은 불만을 품고 튀어나온 경쟁사의 고객사를 주워 담기에 급급했다. 택배 요금을 줄줄이 인상하다 가격담합 논란에 휩싸이는 것도 공정거래위원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때부터 업계는 택배료 인상이라는 표현 대신 ‘요금 현실화’, ‘운임 정상화’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가격 인상을 인상이라 부르지 못하는 국내 택배 시장의 아픔도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CJ대한통운이 거래처 500여 곳에 100~600원 수준으로 택배비를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이 회사의 거래처들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회사 관계자는 “적자 고객사를 대상으로 디마케팅(de-marketing: 수요를 일부러 줄이는 것)을 실시하는 것”이라며 “해마다 실시하는 가격 현실화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동상이몽(?) 택배대리점의 반발
택배비 인상 반대편에는 판매자뿐만 아니라 택배대리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수수료 인상으로 영업이익이 좋아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택배영업소가 왜 반발할까? 왜?

이커머스 등 판매자 입장에서 당장의 요금인상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가격경쟁으로 바닥을 친 온라인 최저가 경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쿠팡이 쏘아 올린 로켓 수준의 배송 서비스 개선에 사활을 둔 건 마당에 택배사의 요구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선 택배대리점은 택배 본사보다 화주(판매자)와의 이해구조가 더 밀접하다. 가격 인상을 통보받은 판매자 대부분이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있는데 단가를 일방적으로 올리면 이 물량을 고스란히 경쟁택배사에 뺏길 공산이 크다. 더욱이 계약 기간 내 요금인상은 법적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어 골치가 아프다. 이 때문에 대리점은 고객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재계약 시점에 택배비를 올릴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외부설득보다 내부합의가 먼저
택배비 인상은 택배사와 화주 간 합의보다 대리점과의 내부협상이 더 시급하다. 아군을 결집하지 못해 어찌 적군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평판이 업계의 안팎에서 나도는 이유다.

여기서 잠깐 국내 택배비를 살펴보자. 택배비는 ▲배송 수수료(40%) ▲집하 수수료(15%) ▲상하차 인건비(14%) ▲차량운송비(11%) ▲본사 이익(3%) ▲임차료 등 기타비용 (17%) 으로 구성돼 있다. 택배비 2,000~2,200원(2021년 1월 기준)을 고려하면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돈은 박스당 500~600원 선이다. 이는 택배기사 본인이 직접 감당해야 할 지입 수수료, 통신비, 보험료, 유류비, 차량 할부금 등을 포함했다.

하루에 200~300건을 배송하면 10~18만 원을 벌어가는 수준이다. 한 달이면 220~396만원. 업무시간이 평균 하루 12시간 정도로 계산하면 시급 8,333~15,000원 정도다.

국민들이 택배 종사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의 개선을 조건으로 택배비 인상에 힘을 실어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지점이다.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택배비 인상의 명분은 코로나-19 등 사회적 변화와 여론 형성이 만들었다. 그러나 주어진 만큼 실리(實利)의 분배와 환원에 대한 책임과 투명성은 택배업계가 풀어야 할 몫이다.

국내 택배요금 구조는 ‘판도라 상자’로 불린다. 얼핏 ‘고객사 > 대리점 > 본사’로 이어진 영업단계는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단계별로 리베이트, 백마진, 판매장려금 등의 명목이 붙여지면 셈법은 매우 복잡하다. 감자 캐듯 줄기만 걷어도 후드득 딸려 나오는 것이 물량과 영업 정보를 쥐고 있는 택배 생태계의 검은 포식자(브로커)들이다.

리베이트, 백마진 관행은 택배판 악어새와 악어의 공생관계로 오래된 암묵적 합의였다. 필자가 택배를 출입하기 시작한 2000년도에도 검은 뒷거래를 개선하자는 업계 안팎의 반성이 끊이질 않았다. 20년이 흐른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진건 없다.

판도라의 상자 이미지. 출처=갈무리
판도라의 상자 이미지. 출처=갈무리

택배판 판도라 상자를 열 준비가 되었나
택배비 인상에 앞서 업계 스스로가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백마진 구조는 택배업계 스스로가 철밥통을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이게 너무 오래 고착되어 변화가 쉽지 않았고 그 시기를 여러 번 놓친 게 사실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대형화주는 물론 동대문 등 각종 상가, 지
역조합 등 일명 택배 노른자로 불리는 택배 영업 현장에서는 백마진 행위가 여전하다.

화주-본사-대리점으로 이어지는 구간마다 브로커들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리베이트 관행쯤이야 하며 눈을 감는다. 내부감사에 문제가 발각 되도 ‘자기 식구 감싸기’를 하는 이런 태도가 택배 구조의 민낯을 드러내는 걸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러니 백마진 수법은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요금을 더 지불하겠다는 소비자들의 권익 문제도 중요하다. 우선 업계와 정부가 요금인상분에 대한 과금의 기준을 명확하게 안내해야 한다. 업계는 환경 개선 등의 여러 이유를 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비용을 어디에 얼마큼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와 설득이 부족한 상황이다. 무턱대고 요금인상을 통보하기 이전에 표준화된 과금(요금체계) 기준을 만들자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민간택배사를 도와줄 일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관련법 제정과 관리 시행부칙을 추진해야 한다. 요금체계가 명확하지 못하면 이는 택배 시장을 향한 부메랑이 될 것이다.

택배료는 저렴한데, 택배로 재벌이 되었다는 대리점과 기사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는데 문제가 무엇이겠냐 싶지마는 앞선 사례처럼 백마진과 리베이트로, 그리고 화주와의 특수관계인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면 그 사례 하나로 하여금 택배업계 전체가 잡은 요금인상 기회는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동안 침묵한 댓가로 필자도 벌을 받듯 이 글을 쓰고 있다.

자, 택배판 '판도라의 상자'를 먼저 열 준비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