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엔씨다이노스가 창단 9년 만에 KBO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엔씨다이노스의 팬은 물론 코로나19로 지쳐가는 국민들에게 뜨거운 스포츠의 열기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모두가 열광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시리즈 우승의 여운이 조금씩 가시고 내년을 준비하기 시작한 한국 야구계의 차분함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엔씨다이노스, 아니 엔씨소프트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엔씨다이노스의 우승 현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씬스틸러는 누구일까? 바로 집행검이다. 실제로 우승을 확정한 선수단이 PC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최상급 아이템인 ‘집행검’ 모형을 들어 올리는 세레머니를 펼치며 세계 야구팬들의 이례적인 관심을 끌었다.

야구단의 ‘집행검 세레머니’는 게임 업계 출입 기자로서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구단의 모기업이 게임 회사라고는 하지만, 야구단은 본사업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순수 스포츠 구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수단이 모기업의 주력 제품인 ‘리니지’에 관심을 두는 것을 넘어 리니지를 상징하는 게임 아이템을 최고 영광의 순간에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세레머니가 구단 측이 아닌 선수들의 아이디어로 준비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VP로 선정된 양의지 선수는 인터뷰에서 “집행검 세레머니는 선수들끼리 예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엔씨다이노스 선수들이 엔씨라는 브랜드에 ‘로열티(충성심)’를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공개된 광고에서 엔씨소프트 경영진들이 드워프로 분장했던 점이 뇌리를 스친다. 그들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했던 집행검을 만들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그리고 궁금해진다. 이 같은 로열티는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야구팬들 사이에서 ‘택진이형’으로 불리는 구단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운영 방침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는 꾸준한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이다. 김택진 대표는 소문난 ‘야구 덕후’다. 김 대표는 구단 창단 당시 모회사(엔씨소프트)의 운영 역량 우려가 나오자 “내 개인 자산으로 운영해도 가능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야구에 대한 김 대표의 애정은 꾸준했다. 올해도 중요 경기가 있을 때면 직접 구장을 찾아 팀을 응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야구단을 만들기 위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감독을 믿고 운영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올해 엔씨다이노스가 김 대표를 향해 보여준 로열티는 기자가 엔씨소프트를 취재하며 느낀 회사의 경쟁력과도 닮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엔씨가 마련한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 개별 행사 마다 들고 나온 내용은 달랐지만 기자가 느낀 엔씨의 메시지는 일관적이었다.

“우리가 최고다”

농담이 섞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자사 게임에 대한 임직원들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남다르게 다가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조직 문화 역시 근본적으로는 김 대표의 회사 운영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엔씨는 ‘실력’에 걸맞게 R&D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지난해 상반기보다 800억원이 늘어난 2275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전체 매출의 약 20%에 달한다. 임직원 처우 역시 업계 최고 수준이다. 회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엔씨 직원 4115명은 올해 1월~9월까지 평균 811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연간으로는 1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미등기 임원을 기준으로 하면 같은 기간 급여가 이미 6억 5000만원을 웃돈다. 지난 4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직원에게 7일 간 ‘통큰’ 유급휴가를 결정한 것도 엔씨가 유일했다. 엔씨다이노스가 양의지를 역대 포수 최고액인 125억원에 데려온 장면과 겹쳐진다.

김택진 대표가 야구를 좋아하는 만큼, 게임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엔씨의 CEO(최고경영자)보다는 CCO(최고창의력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다. 엔씨 관계자는 “(김 대표가) 워낙 컨텐츠를 잘 알아서 실무자들이 보고할 때 더 긴장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엔씨는 게임 시장에서 철저히 ‘프리미엄’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신작 출시 일정을 외부의 기다림보다는 내부의 확신 수준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 가령 리니지 시리즈의 후속작인 ‘프로젝트TL’은 첫 공개된 지 벌써 10년이 된 타이틀이다. 모바일 신작들에서도 출시 지연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저 입장에서는 야속할 따름이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내놓지 않겠다는 엔씨의 장인 정신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엔씨 경쟁력의 뿌리는 유저로부터 얻은 로열티에 있다. 엔씨는 서비스 23년차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주기적으로 대형 업데이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10년 이상 리니지를 플레이하고 있는 진성 유저들이 여전히 많다.

양의지가 집행검을 들어 올리기 이전에도 엔씨소프트가 제작한 특별한 집행검이 있었다. 리니지 BJ인 ‘원큐’는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 서버 최초 캐릭터 레벨 93을 달성한 기념으로 엔씨로부터 받은 모형 집행검을 공개했다. 해당 집행검 모형은 24K 백금과 순금, 다이아로 제작돼 현금가치로도 수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BJ는 18년 이상 리니지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BJ 원큐가 공개한 집행검 모형. 출처=원큐 유튜브 채널 갈무리
BJ 원큐가 공개한 집행검 모형. 출처=원큐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 모든 성과는 거저얻은 것이 아니다. 엔씨의 심장인 AI와 데이터가 게이머들의 영혼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그 누구보다 AI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관련 조직을 열정적으로 키우고 있다.  KB금융과 함께 AI기반 투자자문사 설립을 위한 논의에 들어갈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 결과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메이드 인 엔씨 게임'이 완성된 셈이다.

재미있는 대목은 엔씨의 AI, 데이터 사랑이 엔씨다이노스에도 스며든 지점이다. 실제로 구단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기존 전력분석팀과 그 외 전문가들을 모아 데이터팀을 리뉴얼했고 코칭스태프 개개인이 ‘D-라커’를 통해 말 그대로 완벽한 데이터 야구를 구사했다. 이러한 노력과 신기술에 대한 엔씨소프트의 진정한 접근이 현재의 로열티를 끌어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 결과 회사는 유저와 임직원, 야구단에 이르기까지 견고한 자사 브랜드 로열티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창립 이후 줄곧 엔씨를 이끈 ‘택진이형’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