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택배왔습니다."

올해로 택배서비스가 국내 등장한지 28년. 그 사이 택배시장은 유통의 핵으로 부상했다. 2000년대 초반, '발품' 팔아 물건을 구매하던 소비자들은 어디서나 쉽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 신유통채널에 맛들며 '손품'에 빠져들었고, 택배산업은 그들의 발이 되어 빠르게 성장했다. 온라인쇼핑 활성화에 더해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가 대중화되자 택배는 소비자 생활속으로 깊숙히 파고 든다.

온라인·모바일쇼핑 성장과 궤를 함께한 국내 택배산업. 2001년 기준 온라인쇼핑 시장규모는 3조3470억원에서 135조2640억원으로 약 20년간 40배이상 껑출 뛰어올랐고,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에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세상을 펜데믹으로 뒤엎은 코로나19는 온라인산업 활황에 방아쇠를 당겨 한국 택배시장을 순풍에 돛단 듯 초고속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파발마'로 시작된 택배, 창업붐에 '춘추전국시대'

"한진 파발마로 생활택배하세요.", "삶을 가볍게 해주는 생활택배"

한진이 지난 2010년 개인택배를 시작하면서 선보인 파말마 광고 문구다. 파란색 조끼를 입고 역동적으로 달리는 말 그림을 담은 트럭을 타고 나타나는 친절한 아저씨(택배기사)는 1992년 한진이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택배사업을 개시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한진 파발마. 출처=한진택배.
한진 파발마. 출처=한진택배.

오늘날 '국민생활지원형 물류서비스 산업'으로 자리잡은 국내 택배시장의 시작을 알린 것은 한진이었다. 한진은 1991년 9월 택배업이 법제화된 뒤 최초로 허가받고 이듬해 영업을 개시했다.

'파발마'는 국내 최초 택배 브랜드로 기존 기업택배(B2C, B2B) 중심의 택배서비스에서 개인택배(C2C) 부문을 특화한 택배전문 서비스 브랜드였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 등 사정으로 같은해 한진택배 회사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 8년 뒤 부활하며 개인택배시장을 공격해갔다.

그사이 택배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온라인쇼핑몰 창업붐이 일고 홈쇼핑이 등장하면서 택배업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1990년 전후로 본격적으로 시장이 개화한 택배업은 인터넷이 급격히 보급되며 온라인쇼핑시장 활성화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성장했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다.

시장을 눈여겨 본 대한통운과 현대택배(현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한진에 이어 각각 1993년과 1994년 출사표를 던진다. 이후 1999년엔 CJ GLS도 신규사업자로 나선다. 제일제당 물류부분이 분사하며 탄생한 물류회사 CJ GLS는 CJ그룹이 인수한 삼구홈쇼핑 물량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2000년 우체국택배가 '방문접수'란 서비스 개선 형태로 진입한 후 '우체국택배'로 전환하면서 진출 대열에 오른다. 이외에도 다수의 노선화물운송사업자, 용달사업자, 이삿짐센터 사업자들이 택배사업에 뛰어들어 불꽃 경쟁이 펼쳐진다.

2005년 들어 택배업 진출 규제가 풀리자, 신규업체들까지 줄줄이 진입했다. 2006년 말 신세계가 물류 자회사 세덱스에 택배부문을 신설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1월 유진그룹(로젠택배), 3월 동부그룹(훼미리택배, 동부익스프레스), 5월 동원그룹(로엑스)과 두산그룹(하나로) 등이 중견업체를 품에 안으며 시장에 참여했다. 2008년에는 경기화학(현 KG그룹)도 옐로우캡을 통해 들어선다. 2007년 말 기준 국내 택배업체는 29개사로 늘었고, 오토바이 퀵서비스업(늘찬택배업)을 포함한 택배업체 수는 1309개에 달했다.

'출혈경쟁'으로 혼탁해진 시장 경쟁, M&A 가속화

2000년대 후반 들어 소셜쇼핑까지 활성화되자 택배수요는 더 늘었다. 국내 소비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온라인쇼핑은 대형마트, 백화점 등 기타 매체에 비해 빠른 성장율을 보였고 거래액 비중도 확대된다. 여기에 모바일기기가 대중화되면서 온라인쇼핑시장 성장을 견인, 택배시장의 동력원으로 자리잡는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횟수(경제활동 인구 기준)는 2000년 5회에서 2010년 48.8회로 증가했다.

그러나 외형성장과 반대로 시장질서는 후진화됐고 혼탁해졌다. 시장확대에 택배사들이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혹독한 출혈전쟁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4000원에 달하던 택배단가는 1997년을 정점으로 2000년 3655원까지 하락했다. 시장팽창와 달리 택배사 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2004년엔 카드대란이 덮치면서 경기 침체로 인한 물량마저 줄어든다. 경쟁격화를 감당하지 못했던 중소업체 40여개는 도산하며, 자연스레 시장재편으로 이어졌다.

구조조정 시작은 CJ GLS였다. 2006년 CJ GLS가 삼성물산 물류회사인 HTH택배 지분을 사들였고, 2008년엔 한진이 신세계 자회사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세덱스)를 300억원에 사들인데 이어 동원그룹은 아주택배와 KT로지스를 인수해 설립한 로엑스택배를 청산한다.

이후에도 M&A는 지속됐다. 2011년 말에는 CJ GLS가 당시 업계 1위였던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하면서 단숨에 1위로 올라선다. 2014년 말엔 KG그룹 계열사 KG이니시스가 동부택배를 인수해 'KG로지스'로, 2017년엔 현대로지틱스가 롯데 품에 안기며 '롯데글로벌로지스'로 재탄생한다.

빅5에 몰린 쏠림현상

2015년 이후 모바일 쇼핑 비중이 압도적으로 증가하며 전체적인 온라인 쇼핑 시장 성장을 견인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쇼핑 중 모바일쇼핑 비중은 2013년 17%에서 2017년 56%까지 올라섰다.

중소택배사들의 퇴출과 대기업들의 인수합병 결과는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우체국택배, 로젠 등 상위 5개사 쏠림현상으로 이어졌다.

2008년 시장점유율 74.8%를 차지했던 상위 5개사는 2017년 85.5%으로 뛰어올랐고, 2019년 91.5%까지 올라섰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 업계 1위 CJ대한통운 시장점유율은 50.4%에 달하며 나홀로 독주중이다.

택배사들의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업계 5위인 로젠택배 매각이 추진중이고 한진택배 역시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슈로 자산유동화를 위한 분리 매각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이들의 새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기존 택배사들 촉각이 곤두선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도권을 먼저 가져가는 업체가 지속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어 대형업체간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며 "유통업체들의 온라인강화 움직임과 이커머스시장 성장세에 택배물량 성장률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