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020년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였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 속에서 기본 속성에 이미 ‘비대면’이 내재돼있는 이커머스 업계에게는 크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업계를 발칵 뒤집을 것으로 예상했던 롯데·신세계 등 유통업 빅 플레이어들의 시장 참전으로 인한 영향은 미미했고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은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드디어, 공식적으로, 글로벌 유통의 이커머스의 정점 ‘아마존’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다가오는 2021년 한국의 이커머스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11번가와 아마존 

올 한해 이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핫한 소식인 두 브랜드의 조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확히 뭘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아마존이 해외 법인을 두고 직접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경우를 살포시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 혹은 우리나라 인근 국가에 아마존 전용 물류 인프라를 마련해 두고, 국내 소비자들이 11번가를 통한 아마존 입점 제품 구입이 가능하게 하는 것 또는 국내 11번가 입점 판매자들이 해외 아마존 플랫폼에 상품 판매가 가능하게 하는 것 등의 이야기는 나오고 있다. 

당장 11번가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이 지난 16일 “11번가는 SKT와 함께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국내 판매자들이 해외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 노력할 계획”이라면서 “11번가와 아마존은 론칭 준비가 되는 대로 상세한 서비스 내용을 밝힐 계획”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을 고려하면 앞서 열거한 두 가지 시나리오의 실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의 실행만으로 기존 이커머스 업계를 뒤흔들 만한 것인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국내 판매자들의 해외 아마존 입점 및 판매는 아마존이 우리나라에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전문 법인 ‘아마존 글로벌셀링 코리아’를 두고 이미 직접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온라인 해외직구의 경우 언어의 장벽 등으로 인해 대중화가 덜 됐을 뿐이지 국내 수많은 소비자들은 이미 아마존 또는 해외 대형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상품을 직접 구매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 이커머스 사이트들도 해외직구 구매 대행 서비스를 운영해주고 있다. 소비자에게든 판매자에게든 아마존이 ‘직접’ 제공하는 어떤 혜택이나 유익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아마존도 그렇고 11번가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만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명색이 아마존이라면 더욱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쿠팡·티몬 "이렇게 된 이상 증시로 간다" 

한국 이커머스 대격변의 전조는 '11번가-아마존'로만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국내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 역시 이전과 다른, 성장의 궤도를 그리기 위해 전력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쿠팡과 티몬이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 중 그 브랜드가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 있다고 한다면 한국 이커머스계의 단군왕검으로 불리는 ‘인터파크(035080)’ 정도가 있다. 그러나 인터파크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한 쇼핑몰 운영만을 하는 기업은 아니므로 논외의 경우가 됨을 감안하면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 중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아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쿠팡과 티몬은 '증시 상장'이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 중에서도 확실하게 “우리는 국내 증시 상장을 할 것입니다!”라고 밝힌 티몬의 변화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하다.

티몬 필수특가 기획전. 출처= 티몬
티몬 필수특가 기획전. 출처= 티몬

국내 소셜커머스 1호 기업이자 2010년 이후 이커머스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티몬은 안타깝게도 후발주자인 쿠팡, 위메프 등의 매서운 성장에 밀려 한동안 업계 최약체로 분류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이커머스 확장을 준비 중인 롯데에게 인수될 것이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티몬은 업계에서 ‘숫자의 마법사’로 불리는 이진원 대표이사의 진두지휘아래 차곡차곡 기반을 다졌고 크고 작은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하면서 생존력을 길렀다.

지난 3월에는 월 단위 영업이익 1억6000만원을 기록했고 4월에는 미래에셋대우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국내 증시 상장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회계상으로 자본잠식(-5600억원)인 상장 결격사유를 보완하기 위해 사모펀드 PS얼라이언스로부터 약 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쿠팡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김범석 대표이사는 2010년 창립 때부터 “미국의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한다”라고 이야기해왔다. 물론 창립 당시 쿠팡의 작은 규모를 생각하면 마냥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현재는 한국 이커머스 기업들 중 최고의 영향력과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기업이 됐다.

여기에 일본 소프트뱅크를 포함해 해외의 큰 손들로부터 수 조원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낸 전례를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쿠팡의 나스닥 상장은 가능하다. 여기에 더 힘을 싣기 위해 쿠팡은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들을 영입하며, 천천히 나스닥 상장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여기에 쿠팡은 국내에서의 절대 입지를 굳히기 위해 음성, 제천, 대구, 광주 등에 대형 물류센터를 지어 전국 단위 로켓배송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등으로 사업의 내실을 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업들은 왜 증시에 상장되려고 할까? 기업이 증시에 상장되면 특별한 리스크가 없는 한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된다는 점에서 운영과 자본 상의 안정을 꾀할 수 있고, 이 투자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기업의 가치는 수 십배에서 수 백배 이상으로도 커질 수 있다. 기업이 증시에 상장돼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는 것의 전제는 “이 기업은 수익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경쟁력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티몬과 쿠팡은 각각 국내와 해외 투자시장을 목표로 한 ‘퍼포먼스’ 내기에 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손익 혹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장된 미래의 가치’를 평가하는 국내·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이 과연 매력적으로 비춰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 중 연간 단위의 영업이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 이베이코리아가 유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두 기업에 냉혹한 투자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쿠팡-광주광역시 첨단물류기지 건립 업무 협약식. 출처= 쿠팡
쿠팡-광주광역시 첨단물류기지 건립 업무 협약식. 출처= 쿠팡

네이버-쿠팡 연합?

대격변의 전조에는 한국 이커머스의 숨은 '설계자' 네이버 역시 빠지지 않는다. 사실상 국내 모든 이커머스 기업들의 보금자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네이버는 '검색포털'이라는 영역에서의 절대 입지를 활용해 자신들만의 이커머스 플랫폼 구축을 위해 전력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의 요청으로 네이버의 쇼핑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네이버는 네이버대로 항변의 이유가 충분하기에 조사의 여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커머스 사업을 꾸준하게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가 CJ의 물류 법인 CJ대한통운 주식의 상당 부분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지난달 이뤄진 약 6000억원 규모의 ‘빅 딜’은 이커머스-물류로 이어지는 인프라 강화의 의도가 매우 뚜렷하다. 네이버는 물류 인프라를 직접 운영하는 대신 국내 물류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CJ대한통운을 자사 쇼핑 플랫폼에 대한 풀필먼트 서비스 지원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이커머스와 물류를 잇는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만 보자면, 쿠팡이 축하는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네이버가 현재 3자 물류(3PL)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쿠팡과의 연대까지 고려한다는 ‘빅 픽쳐 설’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현 시점 한정으로 아직은 소설과 같은 시나리오이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아마존 한국 이커머스 진출설 

다시 아마존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재는 아마존이 11번가와 함께 정확하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다른 측면으로 아마존과 한국 이커머스의 접점이 확장되는 관점의 새로운 가설들이 나오고 있다. 바로 지난 수 년 동안 수도 없이 국내 업계의 모 관계자들을 통해 입에 오르내렸던 아마존의 한국 이커머스 직접 운영이다. 

국내 대형 유통기업의 한 고위급 관계자는 “2021년 3월 아마존이 한국에 직접 이커머스 법인과 플랫폼을 설립할 것이며, 아마존 프라임의 OTT 서비스 이용과 연계된 형태로 사업이 시작될 것이고 초기에는 국내 기업과의 적극적 연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11번가와 관련한 SK텔레콤의 공식입장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SKT는 11번가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커머스 사업 혁신을 위해 아마존과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했다...(중략)...아마존은 11번가의 IPO(기업공개) 등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성과에 따라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신주 인수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서 일련의 상황들을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마존은 한국 이커머스의 초기 접점은 11번가를 통해 만든다. 이후 한국을 거점으로 한 이커머스 사업에 대한 아마존의 구체적 방향성이 결정되면 11번가와의 협력을 발판삼아 아마존은 국내의 다른 이커머스 기업을 인수해 한국 이커머스 법인을 운영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국내와 해외의 아마존 이커머스 플랫폼을 잇는 물류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한 가지의 ‘빈 틈’이 있다. 그러나 사업 확장을 실행하는 규모의 단위가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다른 아마존이 제대로 하겠다고 먹는다면 물류 인프라 구축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련의 정황들은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요동을 치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대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이커머스의 끝판왕인 아마존이 더 이상 뜬소문이 아닌 ‘공식적으로’ 한국 이커머스 업계와의 접점에 등장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곧 다가오는 2021년은 이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한국 이커머스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해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