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수년째 침체 일로를 걷는 시멘트업계에 있어 원재료 가격 인상은 경영 위기를 극복할 최대 사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레미콘업계와의 첨예한 대립각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간 고통을 감수했던 시멘트사들은 수많은 가격인상 압박 환경에 놓이면서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세아시멘트 계열의 한라시멘트가 단가 인상 요청 공문 전달을 시작으로 레미콘사와 시멘트사간 가격인상 샅바싸움에 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레미콘업계 역시 어려움이 큰 상황이어서 양측의 힘겨루기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턱없이 낮은 시멘트 가격, 11개국 평균가보다 5만원↓

시멘트 가격은 지난 2014년 6월1일 인상된 이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레미콘업계와 시멘트업계의 양보없는 샅바싸움은 국내 시멘트가격이 턱없이 낮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코트라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 2019년 주요 11개국 평균 시멘트 가격은 1톤당 11만2000원 가량으로 국내 시멘트 가격인 6만1500원~6만2000원 수준보다 약 5만원 비싸다. 국내 시멘트 가격은 인도네시아(7만300원/톤), 브라질(약 11만6600원/톤) 보다 저렴한 상태다.

그동안 한국 시멘트 산업은 과도한 경쟁, 수요감소와 공급확대 등으로 시멘트 가격이 낮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시장 재편과 수급 조절 능력 향상으로 가격인상 환경을 조성했다.

IMF로 타격을 입은 당시 한국 시멘트업계는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 라파즈기업이 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라파즈한라시멘트로 출범했고, 쌍용양회도 일본 태평양시멘트사와 공동출자계약을 통해 공동경영을 하면서 외국계 자본을 맞았다.

그리고 2017년 한일시멘트가 현대시멘트(現 한일현대시멘트)를 인수하고 아세아시멘트가 한라시멘트를 품에 안으며 구조조정 종지부를 찍는 인수전이 마무리된다. 수년째 부침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멘트업계가 최근 몇년간 숨가쁜 구조조정을 통해 7개 생산업체로 시장 재편을 이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가격은 건설경기 하향에 따른 시멘트 수요 감소로 장기간 동결되고 있다.

이마저도 업계내 경쟁이 치열해 제값을 못받는 경우가 많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고 있어서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내수 출하량은 2016년 5576만톤에서 지난해 4948만톤까지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시멘트 수요는 4550만톤으로 전망되면서 당초 예상했던 지난해 수준보다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멘트업계는 지속경영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 쌍용양회, 아세아시멘트, 한일시멘트, 한일현대시멘트, 삼표시멘트 등 국내 시멘트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2016년 이후 4년만에 처음으로 역신장했다.

영업이익은 구조조정 등 허리띠를 졸라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지만,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8%~최대 17%까지 줄었다.

시멘트업계가 가까스로 버티는 사이, 레미콘업계는 건설사와의 가격 협상을 통해 지난 10월부터 레미콘 단가를 6만6300원에서 1400원(2%) 올렸다. 때문에 시멘트업계는 레미콘 가격이 상승된만큼 그 원료인 시멘트에도 인상분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위기 넘기려면 가격인상 불가피..."7만5000원 수준은 되야"

실제 시멘트업계는 지난 6년간 최저임금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한 인건비 부담 가중, 화물차 안전운임제 적용에 따른 운반비 인상, 탄소배출권 구매 부담, 수입 석탄재 환경관리 강화 부담, 대기배출부과금 등으로 가격인상 압력이 높아졌지만 고통을 감수해 왔다.

최근 코로나19 악재로 시멘트 출하량이 대폭 줄어든데 이어 내년부터는 환경관련 세금이슈들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멘트업계 전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영환경 악화가 지속으로 가격인상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나 레미콘업계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레미콘의 원재료인 시멘트와 모래 가격이 급등하면서 레미콘 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인상에 합의한 레미콘 가격 역시 5년간 인상률이 3%에 불과하다.

때문에 시멘트 가격인상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레미콘업계 합의가 이뤄져야 단가 인상이 가능한데 건설경기 악화로 협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어서다. 아세아시멘트 계열 한라시멘트는 현재 거래처인 레미콘사에 단가인상 요청공문을 전달한 상태지만,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레미콘업계와 시멘트업계간 힘겨루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과거에도 양측의 가격 다툼으로 지난 2007년과 2009년에는 시멘트 공급중단이, 2012년에는 레미콘 업체들이 조업 중단에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시멘트업계는 지난 2013년에도 시멘트 가격 10% 인상을 주장하며 건설·레미콘 업계와 힘겨루기를 하다 가격 인상을 포기한 바 있다. 1년 뒤 합의에 성공하면서 1톤당 7만5000원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업계간 출혈경쟁으로 시멘트단가는 6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멘트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국내 시멘트업계가 경영난으로 몰락하면 인접국인 중국, 일본에서 수입해야하는데 연관산업인 건설, 레미콘업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내 시멘트가격은 세계적으로 좋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가격이 싸다. 업계내에서는 7만5000원 수준을 되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