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槪念)

1.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2.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해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개념 차리게 해주려고 그런 거야.” 선임은 말했다. 구타의 원인이 나의 ‘무개념’에 있었다니. 졸지에 나는 군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속 깊은 선임을 둔 행운아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개념은 늘 문제였다. 존재, 실체, 타자, 소외, 본질, 현상 등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가장 괴로운 건 저것들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개념 좀 없다고 사람을 패다니 아직도 좀 분하다. 물론 하이데거 수업도 정신적 구타에 가깝기는 했지만.

상병쯤이었을까. ‘개념 탑재’가 완료되자 군 생활은 확실히 편해졌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라는 국어사전의 설명처럼, 개념은 지식이다. 어느 사회나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이 있기 마련이다. 저 선임은 군 생활의 필수 지식을 교육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를 때렸던 걸까. 고마워라. 제대 후에 나도 유익한 지식을 참 많이 배웠다. 이번엔 내가 가르쳐드리고 싶으니, 박진* 병장님은 이 글을 보시면 저에게 연락을 좀. 꼭.

‘개념’을 뜻하는 영어 ‘Concept’의 라틴어 어원 ‘Conceptus’에는 ‘전체적으로 잡아 파악하다’라는 뜻이 있다. 즉, ‘개념’이란 ‘파악된 결과로서의 지식’뿐 아니라 ‘파악하는 활동’까지 아우르는 역동적인 말이다.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는 국어사전의 설명대로, 개념은 인식의 틀로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규정한다. Conceptus에 ‘출산’, ‘임신’ 등의 의미가 있는 건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개념은 세계를 낳는 일이다.

에릭 홉스봄은 근대화를 이끈 원동력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에서 찾는다.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여기에 ‘언어혁명’을 추가한다. ‘민주주의’나 ‘역사’처럼 새 뜻을 얻은 말들. ‘유토피아’, ‘자본주의’ 등 신조어들. 이런 새로운 개념들이 시대의 의식을 뿌리부터 변화시켰기에 근대화가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교, 과학,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 근대 혁명 바탕에는 거대한 문화적 혁명, 코젤렉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념의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

저 ‘언어혁명’에 비견할 만한 경험이 동아시아에도 있다. 에도 시대에 시작된 난학(蘭學)과 메이지 시대 이후 지속된 번역 열풍을 통해 일본은 자기 나름의 혁명을 수행했다. Society, Liberty, Right, Nature, Individual, Philosophy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개념들의 어원과 역사, 사상을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까다롭게 한자어를 선별한 결과, 일본은 비서구권 국가 중 가장 탁월하게 서양 문명을 자신의 문화 속에 녹여냈다. 사회, 자유, 권리, 자연, 개인, 철학과 같은 번역어와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떨어뜨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를 도라고 하면 영원히 변치 않는 도가 아니’라는 <도덕경>의 경구처럼 하나의 개념으로 실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언어의 성긴 손으로는 현실의 자투리를 잡을 뿐이다. 개념은 이해를 돕지만, 이해의 뒷면에는 늘 오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에우티프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시비를 걸듯 ‘경건’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 결과 정작 누구도 ‘경건’의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무지의 자각’에서 진리는 비로소 새롭게 추구된다. 기존 개념을 회의하는 건 비판적 사유의 본질에 해당한다.

한국 군대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넌 어른이 먼저 되어야 돼. 인마”라는 대사로 끝난다. 영화 내용으로 볼 때, 어른이란 개념 있는 인간, 군대의 논리를 내면화한 인간, 사회가 원하는 내부인을 뜻한다. 몹시 부끄럽지만, 나도 후임에게 발길질을 한 일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유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후임의 잘못을 일깨우고 소대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뒤틀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완벽하게 저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비판과 창조를 모르는 정신은 개념의 노예가 된다. 개념은 언제나 전쟁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