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채무자를 돕는 대만의 카드론 피해자 자구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2011년 파산과 회생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대만 카드론 피해자 자구회 제공
위기에 처한 채무자를 돕는 대만의 카드론 피해자 자구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2011년 파산과 회생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대만 카드론 피해자 자구회 제공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짊어지는 상황은 나라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채무자는 빚 독촉을 피해 소득활동을 중단하거나 몰래 이어간다. 그러다 빈곤해진다. 거듭된 빚 독촉은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다가 결국 일상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한다. 그러다 역시 빈곤해진다.   

동아시아 금융피해 포럼. 채무자의 비극적인 삶은 여전히 이 포럼의 핵심 주제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이 포럼에서는 적어도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다. 장기화 되는 팬데믹 상황이 채무자들을 ‘그 게임’으로 내몰고 있고, 현실적으로 목도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극단적인 상황에 떠밀리지 않도록 국경을 넘어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 그것이 동아시아 금융피해 포럼의 취지다. 각 나라의 전문가들이 운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교류함으로써 해결 방법은 도출된다. 효과가 있는 제도는 각 나라가 가져다가 써 보는 것이다. 

지난 4일 제11회 온라인 화상으로 열린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포럼에서 대만의 패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용송(林永頌) 대만 변호사협회 고문인 변호사, 하문상(何文祥) 자구회 간사, 사문정(謝金呈) 자구회 회원.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지난 4일 제11회 온라인 화상으로 열린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포럼에서 대만의 패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용송(林永頌) 대만 변호사협회 고문인 변호사, 하문상(何文祥) 자구회 간사, 사문정(謝金呈) 자구회 회원.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이번 포럼에서 대만은 채무자 지원 방법으로 ‘유튜브 홍보’에 방점을 찍었다. 대만은 올해 11번째 열리는 이번 포럼의 주최국이다.   

카드론 금융피해자를 지원하는 대만의 시민단체 ‘자구회’가 팬데믹 상황에서 입체적인 온라인 활동으로 채무자들의 참여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의 하문상(何文祥)카드론 피해자 자구회 간사는 지난 4일 온라인 화상으로 열린 ‘제11회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포럼’에서 이와 같이 자국의 성과를 한국과 일본에 전했다.  

하 간사는 "현재 대만 자구회의 활동은 수동적인 온라인 홍보에서 벗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이 가운데 유튜브를 통한 사례 공유와 해법 제시가 채무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 간사가 활동하는 대만의 ‘카드론 피해자 자구회(卡債受害人自救會)’는 불우하게 빚에 몰린 채무자들을 지원하기기 위해 199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단체는 설립과정에서 그 보다 20년 먼저 활동한 일본의 생활재건문제대책협의회(生活再建問題対策協議会)에 영향을 받았다. 자구회는 대만 사회에서 채무자들과 법조인들이 연대해 ▲사적 채무조정  ▲파산·회생 제도의 개선  ▲금리인하 요구 ▲불법 빚 독촉을 금지하는 추심법 제정 운동 등을 펼쳐왔다. 채무자에 대한 파산법원의 보수적인 재판과 금융사의 약탈적 관행이 자구회의 활동으로 견제 받고 있다.  

대만 자구회 단체가 제작한 유튜브 영상.  
대만 자구회 단체가 제작한 유튜브 영상.  제작한 영상 가운데는 10,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콘텐츠도 있다. 사진=유튜브 영상 갈무리 

자구회는 합법적인 채무 해결책을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채무자의 운명을 가른다고 봤다. 

하 간사가 발표한 실제 사례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다.

아버지를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빚에 쫒기는 신세가 된 대만인 J씨. 그는 빚 독촉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수년간 힘든 타국 생활을 이어갔다. 몇 년 후 J씨가 다시 고국 행을 결정했다. 한 시민단체의 인터넷 활동이 결정적이었다. 합법적으로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와 상반되는 사례는 비극적이다. 어느 날 자구회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추심회사의 극심한 빚 독촉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한 여성의 호소였다. 시민단체가 도움을 주려고 했을 때 그녀는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구회는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조직화된 온라인 홍보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단체는 4년부터 유튜브를 적극 활용해 채무자의 지원 효과를 높였다고 포럼의 한, 일 관계자들에게 밝혔다.

자구회의 유튜브 활동은 코로나의 ‘거리두기’ 상황과 맞물려 가계부채로 고통받은 채무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빚의 치부를 드러내 놓을 수는 없어도,  은밀히 볼 수 있는 것이 유튜브다. 한국과 일본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자구회가 제작한 유튜브에는 채무자가 재건하는 과정이 공개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파산변호사들의 채무자의 회생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 일부는 자구회를 통해 빚 탕감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 간사는 “매월 정기적으로 상담사례의 해법을 유튜브로 공개되고 있다”며 “유튜브의 영상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에 복귀한 사람들이 다른 채무자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용송(林永頌) 대만 변호사협회 고문인 변호사가 포럼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대만 자구회 설립에 중심역할을 했다. 그는 20년간 대만 자구회에서 법률 조력을 하고 제도 개선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는 이날 포럼 시작에 앞서 "우리는 오징어 게임과 달리 돈을 벌거나 갚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임용송(林永頌) 대만 변호사협회 고문인 변호사가 포럼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대만 자구회 설립에 중심역할을 했다. 그는 20년간 대만 자구회에서 법률 조력을 하고 제도 개선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는 이날 포럼 시작에 앞서 "우리는 오징어 게임과 달리 돈을 벌거나 갚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  가계부채는 위험 신호 신용잔액은 감소...자산시장으로 흘러 가는 돈

팬데믹 사태에서 대만의 사회도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날 포럼 1세션에서 발표자로 나선 오종승(吳宗昇) 교수(대만 보인대학교 사회학)에 따르면 올해 5월과 6월 사이에 대만의 실업률은 1%가 급증해 약 53만명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쳤다.

무급휴직 인구도 월평균 약4000명에서 6만명으로 급증했다. 빈곤층의 실질 소득은 감소한 반면 정부의 구제금융 영향으로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오 교수는 “현재 대만은 실업률, 무급휴가자, 가계부채가 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회전 신용 잔액은 감소하고 있다”며 “이는 비정규직 노동인구의 상황이 대출잔액이나 국가통계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정부의 구제금융이 앞으로 국가부채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구제금융, 저금리 등 지나치게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인해 대만에서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고 이 자금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시키고 있다. 앞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