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파탄을 겪는 가계, 기업등 경제 주체가 도산절차를 통해 청산 또는 재건하는 법적 절차와 관련해 한국은 후진적이라고 할 만큼 악명이 높다. 

맥킨지 컨설팅 그룹은 한국의 도산제도와 관련, "현재의 한국에서는 실패의 대가가 너무 비싸다. 그런데 실패라는 것은 대부분 실험과 도전의 결과이다. 기업인은 도산으로부터 다시 딛고 일어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보고서에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항 이래로 수차례에 걸쳐 파산법을 정비,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재건을 뒷받침해 왔다. 수차례 기업 도산을 신청한 도널드 트럼프가 버젓이 대통령 같은 최고 공직에 오를 수 있는 사회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개인파산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 공무원법이 이를 막고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제적 침체기에 가계부채로 인한 사회불안이 심각해지자, 빠른 대응으로 사회안정을 이뤘다. 일찌감치 파산 전문 변호사와 관계당국이 손을 잡고 사법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해냈다. 불법 사채업자와 결탁했던 일본 조직폭력배들이 활개치는 것도 막아냈다.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과중 담보대출 부담, 사금융 피해, 불법 사채 피해 등은 이미 이들 나라가 겪었던 사회적 문제다.

미국과 일본등 선진국은 파산법 정비를 통해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최대한 빨리 기업과 개인을 살리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06년 개정된 우리나라의 현행 채무자회생법(통합도산법)은 이같은 미국와 일본의 도산법을 모델로 하고 있다.

하지만 파산법만 개정했을 뿐, 이를 운영하는 사법부는 인식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기 보다는 채무의 책임을 묻는 `포청천`으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도산법은 중국이나 대만과 같은 중화권에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대만은 도산법은 있으나 사문화된 지 오래다. 개인파산법이 2007년에서야 의회를 통과했다.

전통적으로 채무는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 중화권 도덕관념은 미국과 일본을 뒤늦게 따라간 한국의 도산법체계를 배우려 한다. 중화권이 모델로 삼는 한국의 도산법 체계는 향후 베트남과 같이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국제적 움직임은 매년 민간영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국제교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국제교류회는 변호사, 금융피해자 단체가 주축이 되어 한국, 일본, 대만에서 차례로 열렸다. 교류회는 이들 3개국과 중국이 회원국이다.

▲ 지난 2015년 서울에서 열린 금융피해자 동아시아 국제교류회 주제발표 모습. 사진=금융피해자협회 제공

이같은 상황속에서, 올해 국내에 첫 국제규모의 `도산` 컨퍼런스가 오는 9월15일 서울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리는 파산관련한 국제 대회다. 국제 컨퍼런스는 한국, 미국, 호주, 일본, 중국의 법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국의 도산법 체계와 현황을 교류할 예정이다. 뉴욕 남부법원, 호주 연방법원, 영국 법원, 유럽 법원, 일본 법원이 참여한다.

국내에서 국제컨퍼런스가 개최되는 것은 지난 3월 서울회생법원의 독립 출범이 계기가 됐다.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개원 당시, "한국을 도산영역의 국제 허브로 만들겠다"고 언급했고, 이를 실현하는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금융피해자와 파산관련 변호사등이 추진해온 민간 영역에서의 교류 작업이 뒤늦게나마 회생법원이 중심이 된 공공부문에서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015년 금융피해자 동아시아 국제교류회에 일본의 기무라 타츠야 파산전문 변호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피해자 협회 제공

이와 관련, 지난 27일 열린 서울회생법원 개원기념 세미나에서 정준영 수석 부장판사는 “호주의 경우 회생절차를 거치는 기업들중 절반이 재건에 실패하지만, 호주 도산법원은 나머지 성공하는 절반의 기업을 위해 존속한다”라고 호주 한 법관의 말을 인용, 회생법원도 이같은 취지에 동의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법원이 중심이 되어 여는 컨퍼런스인 만큼 한국의 도산법이 글로벌기준에서 얼마만큼 다가왔는지 가늠해볼 중요한 전환점으로 예상된다. 또한 정부, 변호사, 구조조정전문가, 금융기관 등 도산절차의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 한국 도산법체계와 운용을 글로벌 기준에 맞추는 논의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법 수요자인 금융피해자들도 채권자 우위인 도산절차의 문제점 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갖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