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업력의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입니다. 2년 전부터 매출이 하락해 재무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저희 기업은 몇 건의 큰 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계약이 성사돼 수주가 이뤄지면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지만 현재는 운영자금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대출 만기를 앞두고 주거래은행의 상환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악화된 재무제표의 영향으로 생각됩니다. 당장 운전자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지만, 만기에 대출을 상환하면 바로 유동성 위기가 닥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업회생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본지 제보 사례-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한계기업이 늘면서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기준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의 비중은 32.1%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 대법원 사법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기업회생 신청 건수 672건으로 전년 동기(612건) 대비 9.8%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기업회생과 파산신청의 건수가 늘어난 것을 두고 경기악화의 신호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제는 기업회생이 제도권 출구전략으로 알려진 결과로 보는 구조조정 업계의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타이밍이다. 언제 기업회생을 신청해야 할까? 우리 기업은 법정관리를 받아야 할 상황인가? 판단은 쉽지 않다. 기업회생의 타이밍을 잃어버리면 법정관리를 받는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례 기업은 대출 만기를 앞두고 자금관리를 고민하고 있다. 곧 수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출을 상환하면 유동성 위기가 닥친다는 것. 당장 운영에 문제는 없어 기업회생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료=안청헌 CRO제공

◆ CRO에게 묻는다...CRO는 누구?

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 기업회생 절차에서 법정관리 기업에 대해 감사역활을 하는 '구조조정 담당임원'이다. 기업이 회생을 신청해야 만날 수 있으므로 생소하다. CRO는 회생절차에서 채무자 기업의 자금집행 등을 총괄한다.

회생을 신청한 기업은 법정관리 아래에서 이전과 다른 자금집행에 혼란을 겪게 되는데, CRO는 이 같은 법정관리 기업의 자금집행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자금집행 보고서 작성 전후로 보고서를 검토해 법원에 보고하는 일을 한다.

채무자회생법과 실무규칙에 따르면 법정관리 기업은 법원에 대해 월간, 분기, 반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채무자 기업은 일정금액을 넘는 개별 지출도 법원의 허락이 있어야 송금이 가능하다. 예컨대, "500만원 이상 또는 1000만원 이상 지출에 대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정상 경영 상황과는 다른 자금 집행 방식때문에 조언자가 필요하다. CRO의 역활이다.

회생절차 M&A나 DIP금융도 결국 자금집행과 관련된 상황이므로 CRO가 개입한다. 그만큼 CRO는 회생기업이 처한 상황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CRO에게 위기 기업의 적절한 회생시점에 대해 물어본다. 

◆ CRO가 말하는 기업회생 신청 시점

'기업회생 신청 시점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 기업이 회생의 조건(자격)이 되느냐'와 같은 질문이다. 회생을 신청할 재무상황이 아닌데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법원의 문을 두드릴 순 없는 일이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채무 상환일에 채무를 갚으면 계속 사업이 어려운 경우와 ▲파산에 직면할 우려가 있을 때다. 채무가 자산을 초과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유동성 위기 가 있다면 회생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 법률해석의 내용이다.

안청헌 CRO는 이와 관련 "회사가 6개월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이 있을 때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회생절차 기간이 평균 6개월인 점을 고려해서 나온 조언이다. 

회사가 회생을 신청하면 법원은 채무상환을 금지시킨다. 따라서 6개월간 운영자금이란 '이자 등 금융비용 지출을 감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최근에는 P플랜이나 ARS와 같은 단기 구조조정 모델이 적용되고 법원이 패스트트랙을 진행하는 만큼 법정관리 기간이 짧아지고 있어 6개월이 채 안 걸리는 예도 있다.

해당 조언은 '회생을 밟는 동안' 운영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6개월 동안 운영자금은 말 그대로 이상적 상황이다. 비축된 현금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현금 비축 원칙).

◆ 회생기업 '현금 비축 원칙'..."회생절차서 우선순위 있는 채무 때문"  

금융비용을 지출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6개월간 운전자금이 있는 경우 회생신청을 고려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 CRO의 설명이다. 객관적으로 회생을 신청해야 하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이상적인' 시기를 놓친다는 것이다.  법정관리로 거래가 단절되고 기업가치가 하락되는 것도 회생 신청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상적인 시기인지 판단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계상황에 부딪혀 회생을 신청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안 CRO는 말했다. 이 때문에 한계에 봉착해 기업회생을 신청을 앞두고 있다면 자금집행에 유의해야 한다. '현금 비축 원칙'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는 채무의 순서와 관계가 있다.

기업이 본격적인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조정되는 채무와 조정되지 않는 채무가 있다. 업계에서는 전자를 회생채무(회생채권), 후자를 공익채무(공익채권)라고 한다. 공익채무는 항상 먼저 갚아야 한다.

회생채무는 기업이 회생계획안을 통해서 몇 년에 걸쳐 갚아 나갈 수 있다. 조정되는 채무로 분류되기 때문에 회생절차에서 채무자 기업이 갚지 않는다고 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없다.  반면 공익채무는 법정관리 중이라도 수시로 갚을 수 있고, 공익채권자는 채무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집행도 할 수 있다. 공익채무를 먼저 갚아야 하는 이유다.

안 CRO의 설명 따르면 공익 채무은 회생신청 후 법원이 법정관리를 시작하는 개시결정을 기준으로 정해지기도 하고, 채권의 성질에 따라 정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개시결정 이후에 생긴 상거래 채무는 시기상 정해진 공익채무이고 근로자의 임금은 채무의 성실상 정해진 공익채무다. 

막상 법정관리에 들어섰는데, 현재 보유한 자금이나 장래 들어올 매출채권으로 원재료 구입대금을 지급할 수 없거나, 근로자의 임금을 줄 수 없다면 낭패다. 생산도 차질을 빚고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 회생절차를 견디기 어렵다. 앞서 한진해운의 경우 막대한 공익채무가 회생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익채무의 압박으로 운영자금이 부족했던 것. 

전문가들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로 회생을 고려하고 있다면 향후 공익채무를 고려해 자금을 집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안청헌 CRO는 "기업회생 신청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기업의 자금이 있다면, 회생절차에서 조정되는 채무는 결재를 미뤄야 하고 회생절차에서 지출될 근로자의 임금이나 원재료 지급 비용을 비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CRO는 특히 자금의 계좌관리도 강조했다. 그는 "회생을 앞두고 연체가 진행되는 기업도 있는데, 주거래 통장이 압류되면 회생절차에서 재료대금 지급과 근로자 임금 지급 등이 곤란해진다"며 "압류의 위기가 있다면 주거래 통장의 자금을 안전 계좌로 이체하고 회생 신청 후 지체없이 재판부에 보고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원은 본격적인 법정관리를 시작되는 개시결정과 동시에 CRO를 선임한다.  각 지방법원은 CRO 명단을 가지고 있으며, CRO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양성된다.

 

 

◆ 안청헌 CRO(법학박사)는 송인서적을 비롯해 씨에스엔지리어링, 삼보이엔텍, 대덕건설, 동튼건설, 에스엠씨, 등 모두 16곳의 회생기업의 감사를 역임했다.  2013년부터 한국생산성본부 법정관리인, 감사양성교육 과정에서 'CRO실무’ 와 중소기업진흥공단 ‘회생기업출구전략 M&A활용’과정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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