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운동화 르까프로 알려진 화승이 법정관리에 돌입한 가운데 인수·합병(M&A)을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화승그룹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스포츠 운동화 르까프로 알려진 신발기업 화승이 회생을 신청한 가운데, 화승이 곧 회생절차 인수·합병(M&A)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불가피해진 협력업체들이 회생절차에서 목소리를 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11일 구조조정 업계에 따르면 화승이 빠른 시일 내에 회생절차 M&A를 추진한다. 화승은 이미 매각주간사로 한영회계법인으로 선정하고 회생법원에 “M&A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업계에 따르면 화승은 협력업체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M&A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반발했다. 회사가 영업이익으로 채무를 갚을 경우 장기간에 걸쳐 낮은 변제율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화승의 채무는 재고자산을 담보로 설정하고 관계회사 화승네트웍스로부터 빌린 약 93억원과 케이디사모 등 특수관계인과 협력업체에 갚아야 할 채무 약 1833억원을 포함, 모두 2328억원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업계는 화승이 영업이익으로 통해 향후 10년 동안 채무를 갚아나간다면 이 같은 채무규모를 감안했을 때 협력업체에 대한 변제율이 20% 미만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협력업체들의 연쇄적 파산 우려다.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이 화승의 채무 상환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승으로부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이 사채시장에서 어음을 할인해 그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3군데 업체는 로펌 등에 구체적인 회생절차 진행을 의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대외적으로는 자력으로 회생을 공언했지만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해 내부적으로는 가급적 이른 시일에 M&A도 병행해서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화승은 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전까지 기업구조조정 펀드를 운용했던 케이스톤파트너스 등 재무적 투자자와 M&A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승 M&A 인수가액은

회계업계가 화승의 과거 3년간 재무제표를 분석해 추정한 계속기업가치는 약 730억원에서 750억원 사이다. 한편, 청산가치는 약 470억원대로 추정됐다.

화승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온다면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 사이에서 인수대금이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캐쉬 카우 역할을 해온 ‘르까프’라는 브랜드 가치와 의류 유통망 등 영업적 가치는 M&A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의류업계에서는 잠재적 인수 대상자로 ▲휠라홀딩스 ▲패션그룹형지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거론되고 있다. 화승 관계자는 “회생절차 초기 상황에서 관리인 선정과 M&A등 구체적인 일정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협력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공동관리인 선임해 달라”

회생절차의 주도권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해지고 있다. 화승의 협력업체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는 회생법원에 곧 공동관리인 선정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관리인은 회생절차에서 법원의 경영 통제 아래 채무자 회사와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인들 사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회생의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재산을 관리하고 회생계획안를 제출할 의무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관리인은 기존 대표이사가 맡는다. 회사의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에서다.

화승도 회생을 신청하면서 기존 대표이사(김건우)를 관리인으로 선정해 줄 것을 회생법원에 요청했다. 상거래 협력업체로 이뤄진 비대위는 협력업체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관리인을 추천해 법원에 선정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기존 대표이사를 관리인으로 결정한다면 적어도 비대위가 추천하는 관리인이 공동으로 화승의 회생절차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조조정 업계는 비대위의 이 같은 주장이 채권자협의회 구성에서 협력업체가 소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채권자협의회는 회생절차에서 채권자들로 구성된 대표기구다. 채권자협의회는 관리인 선임에 대해 법원에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법원은 이 의견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존 경영자를 배제하고 다른 관리인을 선정할 수 있다. 채권자협의회는 채권액이 많은 금액인 순서로 정해진다.

회생법원에 따르면 화승이 신고한 채권자는 모두 1051곳이다. 채권액이 다액인 순으로 보면 ▲ 케이디비케이티비에이치에스사모투자합자회사(케이디사모)(채권액 800억원, 대표자 산업은행외) ▲케이디비화승제일차~제삼차(유)(채권액 302억원,대표자 허서윤) ▲(주)엠에스에이(채권액 187억원, 대표자 변종건) 순이다.

이 가운데 채권액이 가장 많은 케이디비사모는 지난 2015년 산업은행과 KTB PE는 ㈜경일로부터 화승의 지분 50.23%를 약 600억원에 인수한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결국 최대 주주이면서 최대 채권자로 채권자협의회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되는 셈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경영에 실패에 책임 있는 주주가 최대 채권자로서 회생절차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상황”이라며 “비대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회생계획안을 위해서라도 비대위가 요청하는 관리인이 공동관리인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화승기업 손익계산서.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화승은?

화승의 설립자는 6·25 전란 당시 부산지역 신발제조 기술자들 모아 ‘동자표’ 고무신을 만든 현수명이다. 이후 1960년대 ‘기차표’고무신을 내놓으면서 회사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1981년 나이키가 합작생산을 의뢰, 사세가 커지면서 화승은 1986년 자체 브랜드인 ‘르까프’를 출시했다. ‘르까프’는 주식회사 국제상사의 ‘프로스팩스’와 함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신발시장의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 1995년 브랜드 다각화를 위해 ‘케이스위스’ 라이선스를 취득해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만들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속에서 채무자 회사는 1998년 3월 부도처리 되어 화의절차(지금의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 회사는 화의절차를 통해 2005년 1월 화의채무를 모두 갚고, 2007년 아웃도어 시장 공략을 위하여 ‘머렐’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회사는 2010년 아웃도어 브랜드의 난립으로 매출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2016년 사드 여파로 ‘케이스위스’의 부진까지 겹쳐졌다. 국제 시장상황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회사는 매년 지급되는 브랜드 라인선스료가 재정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승은 2018년 초 장래매출채권을 유동화(ABL)해 400억원을 조달하는 등 유동성을 개선하려 했으나 비밀리에 진행한 M&A절차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이달 1일 만기가 도래한 30억원의 어음을 상환하지 못해 회생을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 제3부(재판장 정준영 수석부장)은 이날 오후 2시 화승의 대표자를 심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