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미 17세기에 이를 설파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대표 역사극으로 꼽히는 <헨리 4세>에서 이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권력의 허망함, 정치의 냉혹함, 인간의 이기심 등을 통해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파헤쳤다.

직장인들에게 권력의 정점은 임원이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등기임원은 물론 기업의 간부사원의 첫 관문이라는 상무 등의 임원이 그들이다. ‘임원’만큼 권한과 책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을 찾기 어렵다. 고액연봉과 각종 혜택을 받는 임원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직장인들은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료들과 치열한 경쟁도 벌어야 한다. 그러면서 조직의 인화단결에 기여하고 이끄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임원이라는 왕관의 무게는 감히 지고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무겁다.

사전에는 임원(任員)을 ‘회사의 업무 집행, 감사 등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종사하는 자’라로 풀이한다. 임원들은 어떤 회사의 운영 방향을 정하는 ‘결정권’이라는 특수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에겐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보수도 받는다. 국내 4대 기업(삼성·현대자동차·LG·SK)에서 임원이 되면 직장인에게는 꿈의 숫자로 통하는 연봉 ‘1억원’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그것도 최소 단위다. 여기에 회사 측은 차량을 제공해준다. 출장을 가면 ‘비즈니스 클래스’ 보장도 받는다. 어디 이뿐인가. 상무급 이상 임원으로 퇴직하면 1~2년간은 본사나 계열사 고문으로 일하며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위로금을 받는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이러니 임원은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쟁취하고 싶은 ‘힘’이자 ‘명예’인 것이다.

그러나 임원이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원이 되는 길은 좁고도 험하다. 임원이 된다고 해서 순탄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막강한 권한은 사내외 수많은 이들의 ‘밥줄’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그것에 비례하는 책임도 져야 한다. 사내에서 회사에 손실을 주거나 이미지를 훼손할 일이라도 생기기라도 한다면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한다. 본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임원들은 자기들은 임시직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임원이 되는 문은 대단히 좁다. 22.1년 그리고 0.74%라는 두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4년 전국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발표한 ‘2014년 승진․승급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졸 사무직 신입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기까지는 평균 17.9년, 임원(상무급 이상)까지는 평균 22.1년이 걸린다. 신입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2.41%,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74%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0명이 입사해 22년을 근무하면 단 7명만이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오래 근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점이다. 국내 10대그룹 전체 임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가장 긴 곳이 13.1년(현대중공업, 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지연, 학연을 갖춘 직장인이라도 이 험난한 여정을 견뎌내지 못하면 임원의 임 자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여성의 길은 더 험난하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여성 직장인에게는 유리천정이 엄연히 무겁게 짓누른다. 그들이 유리천정을 뚫기란 가히 기적에 가깝다.

임원은 되기도 어렵고, 되고 난 이후를 감당하는 것은 더 어려운 자리다. 그것이 바로 임원이라는 ‘왕관’의 무게다. 청춘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20년 이상을 쏟아부어야만 쓸 수 있는 그 왕관은 권한과 책임, 혜택이라는 찬란한 ‘금빛’을 발산하면서 마치 중력처럼 대한민국의 수많은 젊은 직장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