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6일 ‘수제화’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장과 체험공방을 접목한 ‘성수수제화 희망플랫폼’이 문을 열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풀숲이 무성했고 공간은 있지만 활용도는 없는 곳이었다. 야간이 되면 어둡고 무서워 시민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서울시 성동구 뚝섬역 변전소와 2호선 지상구간이 교차하는 쌈지공원의 모습이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이곳이 환골탈태했다. 이 자리에 지난달 26일 ‘수제화’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장과 체험공방을 접목한 ‘성수수제화 희망플랫폼’이 문을 열면서 거리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시장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을 제작한 성수동 수제화 1호 명장 유홍식 씨가 만든 구두는 물론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들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남녀 구두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수제화 명인·명장의 노하우가 돋보이는 구두와 신진디자이너가 선보인 감각적인 제품이 눈에 띄었다.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은 물론, 기성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희소성의 가치까지 더해 오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2층에는 오감만족 체험공방도 마련되어 있었다. 수제화 1호 명장 유홍식 씨를 포함한 6명의 수제화 장인이 30년 이상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목형제작·패턴·가죽재단·제갑·저부’의 수제화 제작 전 과정을 시민 누구나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성수동에 위치한 수제화거리 매장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수제화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성수동에 위치한 수제화거리 매장 내부에서 여성들이 수제화를 보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맞은편에는 수제 구두, 가방 등을 만드는 신진디자이너와 기존 수제화 명장·명인이 운영하는 매장이 총 16개가 나란히 문을 열었다. 화사한 핑크빛 배경으로 여성 구두를 판매하는 곳에서부터 가죽 냄새가 진동하는 수제 가죽 가방까지,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정성들인 제품들이 소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매장을 오픈한 허다원 부티크헤르원 대표는 “기존 수제화 명장들과 나처럼 젊은 창업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하며 “아카데미를 통해 제작 과정을 배우고 수제화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발이 편하고 디자인까지 예쁜 신발을 찾는다면 수제화를 신어야 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허 대표는 수제화의 매력에 대해 소비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발이 가장 편하면서도 예쁘게 만든 작품이라는 점을 꼽았다. 보통 여자 구두의 경우 굽이 높으면 오래 걸을 때 발이 불편하기 마련인데, 수제화는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해 이러한 문제점을 최대한 줄여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자 디자인도 예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여성 수제화의 가격은 보통 10만원대 초반부터 시작하며, 젊은 창업자들은 온라인 판매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을 제작한 수제화 명장 1호 유홍식 드림제화 대표는 56년째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유홍식 대표는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수제화거리 조성에 대해 고무적으로 본다고 운을 뗐다. 젊은이들의 작품을 인정하고 이들의 생각을 공유하며, 명장들의 전문 기능을 접목해 기술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마지막 기술자로서 현재 젊은이들은 가르치고 있다”라며 “수제화는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여겨져 왔는데, 개인의 개성을 표출하는 시대에 따라 수제 시장 성장의 잠재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성수동에 위치한 수제화거리 '희망플랫폼' 내부 모습.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중국 대비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수제화 산업도 침제를 겪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성수동에 남은 수제화 매장은 지난해 기준 고작 20개에 불과했다. 중국에 공장을 짓고 싼 가격에 물건을 유통하는 구조로 박리다매 형태가 만연해지면서 관련 소비 시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최근 들어 다시 수제 제품을 찾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소비 트렌드가 점차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게 ‘수제’ 제품이다. 여전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고 온라인 사이트에서 100원까지도 가격을 비교하는 소비형태가 뚜렷하지만, 반대의 모습도 있다.

‘내가 갖고 싶고 마음에 드니까’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눈에 띈다. 이는 한동안 우리 소비 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도 연결된다. ‘사고 싶다’ 혹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처럼 가치소비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공장에서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제품보다 좀 더 공을 들인 ‘수제’ 제품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고급 수제화에 지갑 여는 이유?

▲ 금강제화가 운영하는 고급 수제화 브랜드 헤리티지의 판매량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출처: 금강제화

소비자들은 패션, 뷰티, 라이프 스타일을 중시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또 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포미(For me)족’ 증가로 수제라는 키워드로 판매되는 제품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수제화에 관심을 갖고 지갑을 여는 이유다.

금강제화도 수제화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금강제화가 운영하는 고급 수제화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의 판매량은 2013년 4만8000켤레, 2014년 5만5000켤레, 2015년 6만2000켤레, 2016년 6만7500켤레로 매년 두 자릿수 판매율 성장을 보였다. 올해는 7만켤레 판매가 목표로,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회사는 예상하고 있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제화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라며 “SPA(제조, 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획일화된 트렌드와 디자인에 피로를 느낀 소비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투자 비용에 비해 타인의 주목도가 높은 고급 수제화를 구입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수제화 판매 증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금강제화의 최고급 수제화 헤리티지는 단순히 구두라는 도구적인 목적보다 가치에 의미를 두고 구입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에 장기 불황 속에서도 자신을 위한 소비에 과감해지고 있는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웰빙 시대와 맞물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낮아질 줄 모른다”라며 “다양한 방면에서 건강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신발도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면서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홈쇼핑에서도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CJ오쇼핑이 온라인몰 매출을 분석한 결과 수제화 전문 브랜드 상품 주문량은 2014년 3만5400켤레, 2015년 4만8700켤레, 2016년 5만7300켤레로 2년 동안 62%나 증가했다.

수제화의 경우 장인이 직접 수작업을 제작해 디자인이 독특하고 완성도가 높은 대신 가격이 높아 가치소비를 즐기는 포미족에게 인기가 좋다는 게 CJ오쇼핑 측의 분석이다.

오후석 CJ오쇼핑 e패션사업팀장은 “경기불황에도 나를 위한 선물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고품질의 수제화를 찾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디저트도 수제 찾는 2030 여성들

최근 디저트 열풍이 불면서 식품 기업에서는 경쟁적으로 관련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며 고객 모시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채널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은 다양한 해외 디저트 브랜드를 들여오면서 고객의 수요에 대응하기에 바빴다.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2030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커피와 함께 달달한 디저트 사진을 게재하는 게 요즘은 흔한 모습이다. 지난 11일 기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한 결과, 디저트 게시물은 343만7873개다.

여기에 튀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 층은 모양이나 색감이 독특하고 눈에 띄는 프리미엄 수제 디저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제디저트 게시물은 4만3000여개, #수제디저트카페는 3800개로 좀 더 독특하고 눈길을 끌만한 제품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는 색다른 메뉴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따라 익숙한 조각케이크, 쿠키 외에도 보틀케이크, 에끌레어, 마카롱 등 다양한 수제디저트 메뉴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울디저트쇼’에서 지난해 처음 선보인 ‘수제 디저트 컬렉션’은 2016년 총 8개 사 8부스가 참가했는데, 올해는 22개 사 총 25부스가 참여하며 규모가 3배가량 늘었다.

수제디저트 ‘제니앤디쿠키’를 운영하는 권지연 대표는 “커피와 함께 즐기기 좋은 쿠키, 마카롱, 미니케이크 인기가 높은데, 특히 특이한 모양과 예쁜 색감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수제 제품에 대한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수제디저트 인기에 대기업이 유명 수제디저트 가게와 협업한 사례도 있다. 롯데제과는 수제 캐러멜 등으로 유명한 수제디저트 전문점 ‘마망갸또’와 협력해 ‘더 디저트 몽쉘 치즈&캐러멜’을 선보였다.

‘더 디저트 몽쉘 치즈&캐러멜’은 제품 기획 단계부터 ‘마망갸또’의 파티시에들이 참여해 개발한 수제 디저트 파이다. 기존 몽쉘보다 크림 함유량을 37% 증가시켜, 더욱 부드럽고 진한 풍미를 주며 ‘마망갸또’의 특별 레시피로 만든 캐러멜을 삽입하고, 덴마크산 크림치즈를 사용하는 등 한층 품질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소규모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독특한 수제 디저트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압구정 가로수길 등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거리에서는 독특한 수제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정성이 들어간 수제 디저트의 경우 고급스러움과 맛, 보는 재미까지 더해져 제과제빵에 관심을 둔 창업주들에게 인기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면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SNS에 예쁜 디저트 사진을 올리는 것이 인기를 끌면서, 기존과는 다르고 좀 더 예쁘고 독특한 디저트에 열광하는 트렌드에 따라 관련 창업 문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제, 다양한 영역으로의 진화

새롭고 독특한 것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수요와 원하는 가치 충족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방면에서 수제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펫팸족(Pet+Family) 천만 시대에 접어들면서 반려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의류·잡화·식품 등을 구입하는 데도 까다롭다. 반려견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수제로 만든 간식은 물론 옷이나 방석까지도 맞춤형 수제 제품을 찾는다.

반려동물 용품 전문쇼핑몰에 따르면 핸드메이드로 만든 맞춤형 목걸이에서 수제 사료까지 기존보다 20~30% 높은 가격에 팔고 있는데도 문의가 많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 수제로 만든 우산. 출처: 슈룹

수제 우산도 있다. 프리미엄 수제 우산 브랜드 ‘슈룹(Shuroop)’은 고급 소재를 사용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우산을 제안하는 업체다.

슈룹 우산의 살대는 낚싯대나 골프채에 사용되는 가볍고 강도가 높은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로 만들어져 쉽게 부러지거나 녹이 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방수성이 뛰어나면서도 바스락거림이 없고 방수·방풍·오염 방지·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갖춘 것이 특징이다. 우드 소재의 손잡이 부분에 이름 등 간단한 글귀를 새겨주는 각인 서비스도 수제 우산의 매력이다. 제품 가격은 10만원대 초반으로 비싼 편이지만, 저가 우산과는 제품력으로 승부한다는 게 슈롭 측의 설명이다.

또한 섬세함이 더해진 수제 주얼리는 소비자의 탄생석이나 각기 다른 뜻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수제로 만든 펜은 100만원대까지 호가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지인을 위한 선물로 반응이 좋다.

맞춤형 우든펜인 펜우드를 만드는 박상태 나은디자인 대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펜이 아닌 단 한 사람을 위한 펜이자,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특별함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이 ‘나를 위한 가치 소비’에 중점을 두면서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라며 “기성제품 대신 소량 생산되고 명품보다는 싸지만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수제 제품에 매력을 느끼고 소비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제 소비가 소상공인을 돕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경제를 살리는 데 고무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수제로 만든 펜. 출처: 니은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