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만든 수제향수. 사진= 이코노믹리뷰 김수진 기자

#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지훈(34) 씨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서울에 있는 수제 식빵 전문점에서 식빵을 사 먹는다. 원래 빵을 그렇게 즐겨 먹지 않았던 김 씨였으나 지인의 추천으로 한 번 맛본 수제 식빵의 맛에 매료됐다. 김 씨가 구입하는 수제 식빵은 일반 식빵보다 크기도 작고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특유의 쫄깃함과 식빵 속을 채운 다양한 토핑은 일반 식빵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낸다.

# 직장인 박수진(28) 씨는 요즘 수제 향수를 직접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거니와 잘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브랜드 향수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팔면 쏠쏠한 용돈벌이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친구가 있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박 씨의 향수는 기념일이나 생일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수제? 손으로 만들다?

수제(手製)라는 표현을 한자어 그대로 풀면 ‘손으로 만든’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표현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 중에서 사람의 손을 쓰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굳이 왜 수제라는 표현을 물건 이름 앞에 따로 붙여서 그 속성을 구별하는 것일까. 우리가 인지하는 ‘수제’라는 말의 의미는 한자 직역과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손으로 만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제조 공정에서 수작업 비중이 높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공산품(工産品)과 확연한 품질 차이가 나타나는 제품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제 제품들은 공산품에 비해 제조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상품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의 행태를 고려하면 전혀 매력적인 품목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수제 제품들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수제 제품과 브랜드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제 제품 선호 트렌드 = 가치 소비

수제 제품이 공산품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품질’이다. 수제 제품은 수작업의 비중이 높아 생산은 느리지만 공장들이 효율을 위해 빨리 제품을 만들면서 간과하는 품질을 높이는 데 그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제 제품은 가격이 다소 비싸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과거에 수제 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성비, 가치소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취향이 소비에 반영되는 ‘취향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수제 제품은 더 많은 이들에게 그 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있다.

수제 제품의 재평가를 가장 잘 드러나는 소비 영역은 바로 ‘식품’이다. 영국의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캐네디언(Canadean)은 2015년 이후 글로벌 식품업계의 트렌드를 5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맞춤형 생산 ‘수제 식품(Handmade Food)’이었다.

캐네디언은 “소비자들은 그들이 먹는 음식의 품질검증과 선택하는 상표와의 친밀한 연결을 원하면서 대량생산보다는 소규모로 생산된 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 수제 맥주(Craft Beer)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전체 맥주 시장의 3%에 불과했던 수제 맥주 점유율은 2014년 전체 시장의 11%까지 확대됐다. 미국의 주류업계에서는 수제 맥주의 점유율이 2022년이면 22%까지 그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역별 향토 맥주를 포함한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된 수제 맥주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동경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매년 1~8월 출하량 기준 2012년 약 5866㎘에서 2015년에는 약 8693㎘까지 확대되며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의 주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 취향 변화에 따라 수제 맥주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발표한 ‘맥주산업에 대한 시장분석’을 통해 2015년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를 출고금액 기준 2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같은 기간 일반 맥주(약 4조원)나 소주(약 2조원), 와인(약 4500억원)의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아직 그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2014년 이후 약 400억~500억원 규모의 투자 자본이 유입됐고, 신세계(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 오픈)와 진주햄(독일 수제맥주 브랜드 카브루 인수) 등 대기업들의 진출로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건강한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햄버거와 만나 ‘홈메이드(Homemade)’를 내건 수제버거 브랜드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수제버거는 패티부터 빵, 소스 등 햄버거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이 아닌 직접 만든 수제품을 활용해 만드는 햄버거다. 미리 만들어진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닌 주문을 받는 즉시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급 식재료를 이용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드는 수제버거는 간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요리로 인식되면서 햄버거 하나를 먹더라도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가치소비 성향의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 SPC 쉐이크쉑 버거 1호점 강남점.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가맹사업정보 거래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에 가맹사업자로 등록된 수제버거 업체의 브랜드 수는 약 30개에 이른다. 이 중 16개 업체가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생겨났다. 업계에서는 각 지역 소규모 수제버거 전문점의 수까지 합치면 매장 수는 약 1만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기업 SPC그룹은 미국의 수제버거 브랜드 쉐이크쉑(Shake Shack)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에 1호점을 연 이후 총 4개 매장(청담, 분당, 동대문, 스타필드 고양)을 추가로 열어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한국 1호점인 쉐이크쉑 강남점은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전 세계 120여개 쉐이크쉑 매장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2015년 기존 햄버거 제품과 차별된 공정과 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든 수제버거 브랜드 ‘시그니처 버거(Signature Burger)’를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초기에는 시범 판매 차원으로 일부 매장에 한정해 판매되던 시그니처 버거는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올해 4월부터 전국 맥도날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편, 사진공유 SNS 인스타그램 에서는 예쁜 식빵 사진을 올린 게시물들이 인기리에 공유되고 있다. 이렇게 공유되는 사진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주문받은 수량만큼만 만들어 파는 소규모 식빵 전문점에서 만든 식빵이다. 최근 젊은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반 식빵과 비교되는 맛과 예쁜 디자인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 각지에 많은 식빵 전문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 서울의 한 수제식빵 전문 매장에서 식빵을 사기 위해 줄서 있는 소비자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서울 연남동 ‘미소식빵’, 이촌동 ‘교토마블’, 화곡동 ‘식빵공작소’ 등 소규모 식빵 전문점들은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줄 서서 기다려야 빵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식빵 하나를 사 먹더라도 더 맛있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면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수제 식빵 제품이 앞으로도 계속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 패션 분야에서도 수제 제품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특히 패션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 고급 남성 패션 제품이 나홀로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남성 수제화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제화시장의 규모는 2005년 2조원에서 2015년 1조2000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같은 기간 고급 수제화 시장 규모는 600억원에서 720억원으로 20% 성장했다.

직접 만드는 ‘수제 제품’ 향수부터 담배까지

정성이 들어가는 수제 제품의 매력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제품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DIY(Do It Yourself)라고 해서 주로 가구나 과자 등을 직접 만드는 것에 국한된 개념이었다면 요즘에는 직접 만들 수 있는 수제 제품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수제 제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내 온라인 마켓에서는 직접 수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의 판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직접 만들어 피우는 담배 '튜빙 타바코'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한편 최근에는 직접 만들어서 피우는 ‘수제 담배’가 많은 애연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 담배를 만드는 방법에는 담배 외피가 되는 종이에 건조 담뱃잎을 넣고 이를 김밥처럼 돌돌 말아 만드는 롤링 타바코(Rolling Tabaco), 튜브(Tube)형 종이 담배에 장비를 이용해 담뱃잎을 채워 넣는 튜빙 타바코(Tubing Tabaco) 등 2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수제 담배를 만들 수 있는 공방형 매장들이 생겨나면서 제품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 수제담배 시장규모의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담배 업계에서는 국내 수제담배의 시장 규모를 약 6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