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가톨릭대∙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마저 오늘(28일)부터 사직서 제출에 들어간 가운데 이른바 ‘빅5’의 진료 축소가 확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상임활동가(의사)는 “한국은 국민 한명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5.7회로 가장 많고 의사가 장시간 노동을 하며 ‘3분 진료’를 한다. 그런데 진료의 양만 많을 뿐 국민 개개인이 ‘내가 얼마나 건강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엔 ‘건강하지 않다’고 답한 국민의 비중이 높다”며 증원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전공의(인턴∙레지던트)와 교수들의 사직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의사는 거의 없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명분으로 ‘지역 의료 강화’를 내세우는데 대해선 “정부는 서울지역 의대엔 한 명도 증원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나 비수도권 의대 중 울산대처럼 사실상 서울에 있는 거나 다름없는 의대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내놓은 대책엔 비수도권 의대생이 지역에 남지 않고 향후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며 “정부가 지역 의대생을 늘렸다고 하지만 사실상 수치가 뻥튀기 된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상임활동가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상임활동가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의사 부족, 찬반 떠나 ‘사실’…전 정부와 달리 공공의료 정책 빠져 있어”

-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여야와 국민이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시민사회계에서도 같은 입장인지.

의사 부족은 찬반을 떠나 객관적 사실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때 현 정부보다 적지만 400명에 대한 증원이 추진됐다. 그런데 당시 의사들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기인데도 의료현장을 떠나 결국 의대 증원을 막았다.

문제는 전공의와 교수들의 집단사직 전에도 ‘응급실 뺑뺑이’와 시민들이 의료 취약지에서 겪는 의료 공백은 일상이었단 거다. 작년 어린이날에 한 어린이가 서울 한복판에서 급성 후두염에 걸렸는데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진 건 유명하고,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지역에 의사가 없어 사망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사 증원을 포함해 정부가 개혁안들을 내놨는데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며 지지율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데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이) 결국 허구라는 게 드러날 것이라 본다.

- 정부 정책이 왜 허구라고 생각하나.

역대 정부가 지금까지 거듭 실패한 정책을 살짝 바꿔 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사 증원을 다른 정부보다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런데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하고 공공의료처럼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공적인 개입 방식이 없다.

문재인 정부 땐 공공의대와 지역 의사제와 같이 공공의료에 대한 대책을 일부 포함해 증원책이 발표됐다. 그래서 현 정부의 정책에 허구가 있음을 깨달은 시민들이 나중에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재 지지율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 많은 국민들이 공공의대와 지역 의사제 같은 선진국들의 시스템에 대한 필요를 그다지 못 느껴 선거를 앞두고도 이번 정부의 정책에선 빠진 게 아닐까.

물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공공 의료에 대한 수요가 드러난 사례가 있다. 경남 양산시의 웅상지구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민간에서 만든 종합병원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마저 인구가 적어 돈이 안 되니 폐업했다. 그래서 지역에 공공병원이 생겨야 한다는 내용의 서명 운동이 한창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선 시민들이 공공병원을 설립하라고 주민 조례 발의 운동을 해 서명한 인원이 목표치를 훨씬 초과(약 8300명), 현재 시의회에 관련 서류가 제출됐다.

- 그런데 왜 전국적으로는 아직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가 미진한 걸까.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은 사실상 공공의료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니까. 한국의 전체 의료 기관 중 공공병원이 하지하는 비중은 5.72%에 그친다(OECD,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인 33.62%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병상 수 기준으로 놓고 봐도 8.8%에 머물러 있고 나머지는 다 민간병원이다. OECD 평균인 72.0%의 8분의 1밖에 안 된다. 한국은 일제시대 때 근대적 병원이 도입되기 시작한 이래로 공공병원이 다른 나라처럼 많았던 적이 없다. 반면 민간까지 포함하면 병상 수가 세계 1위(OECD 평균의 3배)다.

한국은 건강보험 보장성도 낮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전체 의료비 지출 중 공공에서 얼마나 지원되는가를 말하는데,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1년 기준 64.5%다. OECD 평균보다 10% 이상 낮고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다. 이렇게 공공의료 시스템 혜택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으니 공공의료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쉽게 상상하고 요구할 수 있겠나.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높은 수능 성적=좋은 의사’ 아냐…환자에 대한 태도가 중요”

-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선진국처럼 공공의료를 했다간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질이 낮아질 거라고 주장한다. 같은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문재인 정부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어떤 카드뉴스를 만들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공공의대를 만들면 착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의사가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 진료받고 싶냐는 내용이다. 저도 의대를 나왔지만 높은 수능 성적이 좋은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요건이 아니다. 환자의 얘기를 성실히 잘 들을 줄만 알면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의대가 입시 경쟁의 끝판왕이 됐을까.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은 자격을 갖고 있는데 왜 돈 안 되는 시민단체 활동에 집중하나.

문재인 정부 때 의사 증원 반대를 위한 의사들의 파업이 있을 당시 본과 4학년, 그러니까 졸업 학년이었다. 주변에서 ‘마지막 학년이니 국가고시를 거부해 파업에 동참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명분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만 시험을 치렀다. 결국 정부가 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응시 기회를 줘 동료들은 제때 인턴과 레지던트가 됐지만.

파업에 동참하자는 흐름이 생긴 뒤부터 이들을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할까’에 대해서 말이다. 보통 의대에선 공통 과목으로 예방의학에 대한 수업을 하고 이 때 OECD같은 국제 지표가 언급되며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교수가 이걸 가르친다. 그런데 이 수업을 같이 들은 동료들이 언젠가부터 의협이 만든 이상한 수치를 근거로 제시하더라.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생각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생기더라. 그래서 레지던트(의사가 전문의가 되기 위해 밟는 과정)에 일단 들어가지 말고 ‘진짜 필요한 의료의 대안이 뭔지 고민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보자’는 생각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김연정 객원 기자
사진=김연정 객원 기자

“증원 반대 이유로 ‘세계 최다 진료’ 말하지만…필요 없는 진료도 포함”

- 많은 의사들이 ‘한국은 세계에서 진료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이미 이걸 해내고 있으니 증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의사로서 동의하나.

세계 최다라는 사실은 맞다. 한국은 국민 한명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5.7회로 가장 많고 의사가 장시간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안에 질이 담보돼 있을까. 그리고 의료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고 있을까. 또 모든 의료 행위가 다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게다가 3분 진료라는 말도 되게 많이 언급되지 않나. 병원에서 대기는 길게 하는데 정작 진료 시간은 굉장히 짧다. 우리 의사 집단의 불친절에 환자 불만이 쌓여 있다. 그러니 진료량이 많은 게 자랑이 아니다.

그리고 양이 많다고 해서 국민의 주관적인 건강 수준 평가 지표가 그에 비례해 세계 최고인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건강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건강하지 않다’고 느낀 국민들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의료 서비스의 질 때문이다. 한국도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믿음직한 의사와 계속 상담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면 이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 의사들은 국민을 돌보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

- 최근 정부가 지역 의대에 증원분을 많이 배분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이를 지역 의료 강화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다. ‘서울에 한 명도 증원하지 않았고 대부분 비수도권에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수도권 의대들 중 사실상 서울에 있는 거나 다름없는 의대들이 많다.

-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게 진짜 웃기는 얘기인데 예를 들어 울산대 의대가 이번에 120명으로 증원됐다. 여기는 행정구역상으론 울산에 있다.

- 이제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지역에 의사가 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지역에서 전공의로서 수련을 받는 거다. 그런데 울산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울산에서 수련 받고 싶을까,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 받고 싶을까. 거의 서울아산병원에서 받는다.

이밖에 가천대∙한림대∙건국대(충주) 등 서울 밖에 있는데 서울에서 수련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는 의대가 많다. 한림대는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줄여서 성심병원이라고 불리는 곳들 대부분이 해당된다.

한림대는 강원도에 있지만 성심병원은 거의 서울 등 수도권에 있다. 강원도에 있는 성심병원은 전공의로 둘 수 있는 정원이 굉장히 적고 관련 예산도 부족하다. 지역에서 수련할 수 있는 병원을 확충하는 게 아닌 이상 의대생만 늘린다고 해서 지역 의료가 강화되지 않는다.

-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수도권에서 대규모의 분원 설립을 계획하거나 추진하고 있다더라.

지금 대책으로는 지역 의대를 졸업한 학생 대부분이 그런 곳의 전공의로 가게 될 거다. 그러니 정부가 말하는 지역 의대 증원은 사실상 뻥튀기 된 수치가 많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정부가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