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정민 기자] "옷은 다른 브랜드로 바꾸면 그만이지만 콘솔 게임은 다르죠. 일본이 압도적으로 독점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요? 민주주의 시대에 불매운동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서울 거주 대학생 윤 모씨·22세)

"불매운동 난리 났을 때도 (일본산) 담배는 잘 팔렸어요. 아무래도 담배 피는 사람들은 한 브랜드만 애용하니 바꾸기 쉽지 않죠."(담배 상점 주인 박 모씨·58세)

'노재팬(No Japan)' 불매운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택적 불매운동' 성격이 강해지면서 같은 일본 관련 산업 내에서도 극명한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냄비근성' 예측은 빗나갔지만, 불씨가 일부 브랜드에만 치우쳐 있어 실질적 효과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온라인을 주도하는 2030세대에게 타겟이된 의류, 주류 업계는 시장 철수까지 감행한 한편, 게임 등 대체제를 비교적 찾기 어려운 분야에선 타격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가 이러한 양극화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본 관련 패션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야외활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본 골프 브랜드 수요는 급증했다.

불매운동 쓰나미...日 패션·맥주 시장 초토화

SPA 절대강자였던 유니클로는 불매운동 주요 표적이 된 대표 사례다.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결산 발표 자리에서 한국 불매운동은 일시적일 것이라 발언하면서 첫번째 타겟이 된 것이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SNS에 "순찰 중, 이상 무"라는 게시글을 올리는 등 '유니클로 단속반'까지 등장했고, 불매운동이 시작된지 불과 1개월만에 종로 3가점이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니클로의 첫해 성적표는 처참했다. 2019년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 매출은 9,749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하락했고, 순이익 또한 2,383억원에서 19억원 손실로 적자전환했다. 불매운동이 지속된데다 코로나19까지 겹친 지난해 매출은 5,746억원으로 전년 대비 41.1%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은 129억원으로 전년(19억원) 대비 6배 넘게 폭증했다.

맥주 시장도 불매운동으로 초토화된 분야 중 하나다. 매대 대다수를 차지했던 일본 수입 맥주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2019년 일본 맥주 수입액은 3,975만6,000달러(443억2,794만 원)를 기록했다. 아사히·삿포로·기린 등 일본 맥주는 한때 연간 수입 7,830만달러(873억450만원)를 돌파하는 등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작년에는 일본 맥주 수입액이 566만8,000달러(63억1,982만원)로 전년 대비 86% 감소하면서 9위로 추락했다. 일본 맥주 브랜드 중에서도 국내 수입 맥주 부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롯데아사히주류는 2019년 623억원 매출을 기록해 전년(173억원) 대비 70% 넘게 급감했다. 영업손실은 198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지난 2018년까지만 해도 매출 1,248억원을 찍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1년만에 반토막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173억원으로 전년보다 72.2% 줄었으며,  영업손실은 124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일본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는 16년만에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유니클로 자매회사로 알려진 'GU'와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키즈'(영애슬릿)도 국내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행업계에서도 2019년 일본행 항공권 예약이 64% 감소했으며 토요타, 혼다, 인피니티 등 일본차 브랜드의 불매운동 첫 해 판매량은 50% 넘게 급감했다. 이로인해 '닛산' 자동차는 지난해 12월 한국 시장에서 백기를 들었다.

일본산 게임·담배 등 무풍지대도 많아

하지만 같은 일본 관련 기업임에도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닌텐도, 담배, 골프의류, 무인양품 등 대체품이 없거나 매니아층, 개인 기호와 직결된 브랜드가 대다수다. 지난 3월 일본 대표 콘솔게임 전문업체 닌텐도가 선보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출시 이후 품귀 현상을 빚었다. 출시 당일 매장 앞에는 긴 대기줄이 형성되며 대란이 일었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두 배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닌텐도를 유통하는 대원미디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48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1.8% 증가했다. 

일본산 담배 또한 불매운동 '무풍지대' 중 하나다. 일본 담배는 불매운동 시작 이전보다 국내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담배 시장 특성상 기호식품이라는 성격이 강해 소비자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업계 분석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필리핀에서 국내로 들여온 담배와 제조한 담배 대용물 수입량은 4,532톤(t)을 기록했다. 이는 불매운동 이전이었던 2019년(2,862톤) 대비 37% 늘어난 규모다.

국내 담배 사업자 중 필리핀에서 수입하는 업체는 JTI 밖에 없어 일본 브랜드임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셈이다. 2017년부터 필리핀 공장으로 생산 물량을 옮긴 일본 담배회사 JTI는 해당 공장에서 대표 상품 '뫼비우스', '카멜' 등을 생산해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일본 골프용품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서는 노재팬 불매운동 영향이 일본 골프용품 수입에는 거의 없었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면서 일본산 골프 브랜드는 호황기를 맞았다. 지난해 일본 골프용품 수입액은 2억4,835만달러(2,771억3,376만원)로 전년보다 14.6% 늘었다. 골프용품 수출액이 875만달러(97억6,412만원)로 4.6%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 골프 브랜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불매운동이 장기화되면서 대체제가 없는 경우 원하는 소비를 포기하는데 한계를 느끼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매니아층이 형성돼 있거나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 일본 외 다른 대안적 선택지를 찾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여 의사는 있어 맥주나 의류 등에선 쉽게 대체 브랜드로 바꾸면서도 특정 분야에 있어선 소비의 자유를 제약받기 꺼리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가적, 국민의 자존심 차원에서 항의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등 과도하게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경계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대체제가 없는 분야를 불매해야 실질적 효과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불매운동이 지속되면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매하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마련이기에 이러한 기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행의 일환으로 변질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