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한때 화장품 업계를 풍미했던 모 브랜드의 슬로건을 기억하는가. 

최근 국내 석유 화학 업계의 동향이 이를 떠올리게 한다. 옥수수·사탕수수·콩·목재 등 식물 자원을 원료로 해 화학 제품이나 연료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 바이오' 기술이 화학 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 석유 화학 사업부의 새로운 활로

LG화학(051910)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석유 화학 사업 부문에서 친환경 양대 축 가운데 하나로 '바이오 합성 수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5일 세계 최대 바이오 디젤 업체인 핀란드 네스테와 바이오 기반의 친환경 사업 및 관련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MOU)을 맺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네스테는 자체적인 바이오 디젤 공정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전체 영업 이익의 80% 가량을 바이오 원료와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친환경 제품들에서 창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바이오 디젤은 폐식용유와 팜오일 등의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연료를 말한다.

바이오 원료는 화석 원료 대비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현저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화석 연료를 바이오 원료로 대체하면 동일한 양을 기준으로 연소 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존의 약 50%로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즉, 바이오 원료으로 만드는 화학 제품은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할 수 있다.

LG화학은 네스테로부터 공급 받는 바이오 원료를 기반으로 고부가 합성 수지(ABS)·고흡수성수지(SAP)·폴리염화비닐(PVC)·폴리올레핀(PO)·폴리카보네이트(PC) 등을 생산할 계획이며, 내년 하반기 안에 상업 생산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또 LG화학은 바이오 원료 비율을 점진적으로 늘려 나갈 방침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양 사가 함께 개발할 제품의) 구체적인 수량과 협력 기간 등은 협약에 따라 밝힐 수 없으나, LG화학은 (네스테로부터) 향후 수년 동안 친환경 합성 수지 생산에 필요한 바이오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을 전망"이라 언급했다.

이번 MOU를 통해 양 사는 바이오 원료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화학 제품들의 상업화를 타진하는 동시에, 아시아와 유럽 등 글로벌 시장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바이오 기반 제품들을 개발하는 데에도 협력할 계획이다. 네스테 입장에서는 바이오 원료 사업을 석유 화학 분야로도 확대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

LG화학이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와 이가 활용된 시제품. 출처=LG화학
LG화학이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와 이가 활용된 시제품. 출처=LG화학

앞서 LG화학은  지난달 19일 세계 최초로 합성 수지와 동등한 수준의 기계적 물성을 구현하는 생분해성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신소재는 옥수수 성분의 포도당과 폐글리세롤이 활용된 바이오 함량 100%의 생분해성 소재로, 단일 소재가 폴리프로필렌(PP) 등 합성 수지와 동등한 기계적 물성 및 투명성을 갖추기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기존 생분해성 소재의 경우 유연성 및 물성 강화를 위해서는 다른 플라스틱 소재나 첨가제를 섞어야 해, 공급 업체별로 물성과 가격이 달라지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LG화학의 생분해성 신소재는 단일 소재로서 고객이 원하는 품질과 용도별 물성을 갖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소재는 특히 유연성 면에서 기존 생분해성 소재 대비 최대 20배 이상 개선돼, 가공 후에도 투명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생분해성 소재가 주로 쓰이는 친환경 포장재 업계에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LG화학은 보고 있다. 기존 생분해성 수지 경우 혼합 소재 특성상 불투명한 포장재 제품으로 쓰이는 등 다소 제한적으로 활용돼 왔기 때문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강화되면서 생분해성 소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 신소재는) 비닐봉지·에어캡 완충재·일회용 컵·발포 제품·마스크 부직포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LG화학은 생분해성 핵심 물질과 관련해 고유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현재 국내외에서 생분해성 소재 중합체·조성물·제조 방법 등에 대한 총 25건의 특허 보유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들에 따르면, 생분해성 소재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4조2000억원에서 오는 2025년 9조7000억원 규모로 연 평균 15% 가량씩 성장할 전망이다.

또 LG화학은 바이오 합성 수지에 대한 ISCC(International Sustainability and Carbon Certification) 인증도 추진한다. 약 250개의 친환경 원료 제조 업체와 비정부 기구(NGO), 연구 기관 등으로 구성된 국제 인증 기관인 ISCC는 바이오 원료 구매·투입 양을 기준으로 탄소 배출 저감 효과를 산정해 제품에 인증을 부여한다. 

LG화학은 오는 2021년 상반기 내 ISCC 인증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탄소 배출은 줄이고 물성은 기존과 동일한 친환경 합성 수지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8년 전 선구안이 결실로

지난 2012년부터 바이오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를 생산해 온 롯데케미칼(011170)은 약 8년 만에 그 성과를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롯데케미칼 바이오 PET는 1500톤 가량으로, 지난 2017년 기록했던 100여톤에서 3년여 만에 15배 가까이 급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시현하고 있다.

바이오 PET는 사탕수수 등 식물에서 추출한 바이오 에틸렌글리콜로 만들어지는 친환경 소재로,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일반 PET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20% 적고 100% 재사용·재활용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이오 PET는 일반 PET보다 2배 정도 비싸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롯데케미칼이 생산하는 전체 PET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재의 미래 성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친환경 및 가치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착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롯데케미칼은) 이에 부응해 선제적으로 바이오 PET를 비롯한 친환경 소재들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바이오 PET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롯데케미칼 역시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통해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음료수 병과 샴푸 용기 등에 들어가는 PET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합성 수지 중 하나로, 이를 대체할 바이오 PET의 활용 폭도 광대하기 때문이다. 또 바이오 PET를 생산하는 업체는 전 세계에서 롯데케미칼 포함 3곳 밖에 없으며, 국내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유일하다.

CJ제일제당, 비비고를 넘어설 새 트레이드마크? 

CJ제일제당이 해양에서 100% 생분해되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를 활용해 만든 제품들. 출처=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이 해양에서 100% 생분해되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를 활용해 만든 제품들. 출처=CJ제일제당

화이트 바이오 사업은 전통적인 식품 대기업도 뛰어들게 했다. CJ제일제당(097950)은 화이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이달 3일 선언했다.

CJ제일제당의 무기는 바닷물에서 100% 생분해 되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다.

CJ제일제당은 내년 인도네시아 파수루안에 있는 바이오 공장에 PHA 전용 생산 라인을 신설해 연산 5000톤 규모의 PHA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해당 공장의 주력인 아미노산 및 PHA 생산에는 '미생물 발효 기술'이 공통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이미 유럽과 일본 등의 기업들이 초기 양산 물량을 뛰어 넘는 5000톤 이상의 PHA를 선주문했다. 주요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에서는 이미 PHA가 친환경 플라스틱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소재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젖산(PLA)은 특정한 공정을 거쳐야만 분해가 가능한 반면, PHA는 토양과 해양 등 모든 환경에서 분해돼 PLA의 단점을 극복할 소재로 꼽힌다.

화이트 바이오 사업에서 PHA를 첫 주자로 선택한 것도 PHA가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해양 생분해 소재이기 때문이다. 100%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 기술은 현재 CJ제일제당을 비롯해 극소수 기업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CJ제일제당은 올해 1조원에서 향후 5년 내 3배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글로벌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은 PHA 외에도 친환경 소재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화이트 바이오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춘 자사의 바이오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 개발(R&D)을 계속하고,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설명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친환경'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서 "(CJ제일제당은) 현재까지 '비비고'와 '햇반'으로 식문화 트렌드를 선도해 왔듯, (이제는) 'CJ PHA'로 세계 산업 소재 시장의 패러다임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버려질 때에도 '친환경'일 것인가

화학 업계가 바이오 플라스틱 등을 통해 친환경 및 지속 가능 경영을 타진하고 있으나, 이는 '생색 내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제품에 바이오 원료가 들아가면 함량이 100%가 아니더라도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바이오 플라스틱 경우 물론 제품 생산 과정에서는 확실히 탄소 저감 효과를 볼 수 있어 석유 화학 업계가 1차적으로 당면한 탄소 배출 절감 과제에 부합한다.

그러나 문제는 생산이 친환경적이라 해서 소비와 폐기 과정 또한 친환경적일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폐기 처리 관련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한 예로 LG화학은 100% 바이오 원료로 만들어져 땅에서 생분해 되는 신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알린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해 "(해당 소재는) 땅에 묻지 않으면 그저 안 썩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개발 취지는 좋지만, 향후 폐기 처리 방식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출처=한국폐기물협회
출처=한국폐기물협회
출처=한국폐기물협회
출처=한국폐기물협회

쓰레기를 땅에 묻는 매립 방식은 쓰레기 처리 최종 단계로,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로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폐기물 처리 방법 중 매립은 7.3%에 불과했고,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반면 폐기물 처리 방법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활용은 매년 증가세를 거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안 그래도 매립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매립지 유치·운영 등을 둘러싼 지역 사회 간 갈등까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시는 30년 가까이 서울·경기 지역의 쓰레기를 함께 처리해 왔으나, 최근 2025년부터 인천 지역 쓰레기만 매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다른 수도권 지역 자치 단체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매립 시설이 충분치 않으니 생분해 소재의 보편화에 맞춰 국가 차원으로 해당 소재 전용 매립지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업계는 바이오 소재 사업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친환경을 꾀했고, 폐기물 처리에 대한 친환경적 접근은 재활용 플라스틱 사업에서 따로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바이오 소재가 바이오 원료로 만들어져 붙은 이름인 만큼, 폐기물 처리에 있어 친환경 여부를 따지는 접근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도 폐처리시 환경 오염에 일조할 여지가 있다면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냐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업체별로 거창한 슬로건을 걸며 친환경 기업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겉 핥기 식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바이오 플라스틱 포함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들이 대부분 아직 상업화 전의 기술 개발·시제품 생산 단계에 있는 가운데, 제품의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친환경을 꾀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 경영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