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콘택트 렌즈 시장에 최근 큰 변화가 생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제34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6건의 규제 특례를 지정한 가운데 ▲도시가스 사용 가구의 비대면 안전 관리 플랫폼 ▲영상 정보 원본 활용 자율주행 시스템 고도화 ▲유휴 캠핑카 대여사업 중개 플랫폼(2건) ▲의료 마이데이터의 비대면 진료 활용과 더불어 ▲안경업소의 콘택트렌즈 판매 중개 플랫폼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콘택트 렌즈 시장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추후 상황은 입체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규제 샌드박스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규제 샌드박스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콘택트 렌즈 온라인 판매 잔혹사
현행법상 삽입형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콘택트 렌즈는 오프라인 안경점에서 안경사의 관리 하에서만 판매가 가능했다.

눈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착용해야 하는 의료 장구기 때문이다. 2017~2019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콘택트렌즈 관련 위해정보만 총 595건에 달하는 가운데 이중 96.2%에 달하는 572건이 콘택트 렌즈 오사용 및 부작용으로 집계될 정도다. 콘택트 렌즈 부작용은 심각한 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경각심은 더욱 크다. 오프라인 판매가 원칙이었던 이유다.

최근에는 기류가 달라졌다. 여전히 콘택트 렌즈 오사용 및 부작용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오프라인 판매는 물론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일상속에 깊숙히 들어온 콘택트 렌즈를 오프라인 판매로만 국한하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가격 인하 효과 및 사용자 편의성 등을 감안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기형적 판매 구조도 콘택트 렌즈 온라인 판매 허용에 힘을 더했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의 콘택트 렌즈 온라인 판매는 불법이지만, 사용자가 해외 업체로부터 콘택트 렌즈를 직접구매(직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아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국내 기업들은 온라인 판로가 아예 막혔지만 해외 업체들은 온라인 판로를 활발히 확장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이 벌어지며 국내 기업 역차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 시장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는 해외 업체들의 콘택트 렌즈가 버젓이 온라인으로 팔렸다. 이는 해외 기업의 국내 콘텍트 렌즈 시장 장악에도 일조하며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나빠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없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현지 업체로 위장한 후 온라인 판매에 나서다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법원은 2018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중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후 국내에 콘택트 렌즈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던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A씨는 중국인 B씨를 섭외해 현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후 국내 사용자들이 콘택트 렌즈를 주문하면 제조업체에 대금을 전달하고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최대 렌즈전문 체인점을 O 브랜드를 운영 하고 있는 S사도 관계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해외법인을 가장, 국내에서 콘택트 렌즈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정부, 드디어 움직이다
시장의 역차별, 나아가 가격 인하 효과 및 사용자 편의성 등을 고려해 콘텍트 렌즈 온라인 판매를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결국 정부도 나섰다. 지난해 11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에서 열린 제31차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민생 규제 혁신방안' 167건이 발표된 가운데 콘택트 렌즈의 온라인 판매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일회용 콘택트 렌즈부터 단계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한편 관련 실증 특례(제한된 조건에서 신기술·서비스 시험 검증)를 올해 1월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후속 액션플랜은없었다. 지난해 12월 21일 개최된 제32차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콘택트 렌즈의 온라인 허용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생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구매 편리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후 결과분석 및 제도 개선을 검토하려고 했으나 의미있는 진전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콘택트 렌즈 온라인 판매 여부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방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판매라는 디지털 전환이 늦어질 경우 기존 시장의 고착화된 그릇된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콘택트 렌즈 시장의 디지털 전환이 결국 흐지부지된 가운데 아이러니한 충돌도 격화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가격 및 편의성 문제에 왜곡된 판매 구조가 겹쳐진 상태에서 '가맹점'들의 어려움도 가중됐기 때문이다.

당장 국내에서 렌즈전문점으로 최대 가맹점을 확보한 모 기업의 경우 여전히 불법으로 치부되던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코노믹리뷰>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기업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에서 직구로 위장한 온라인 판매를 하다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사법 온라인 판매금지에도 위반되지만 일각에서는 외환유출, 법인세부가세 탈세 혐의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해당 기업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오프라인으로 판매하는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온라인 판매에 나서는 해당 기업이 새로운 경쟁자가 된 셈이다.

다행히 정부는 뒤늦게 판을 흔들 기회를 마련했다. 3월 과기정통부의 ICT 샌드박스를 통해 콘택트 렌즈 온라인 판매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규제 샌드박스는 지난 2019년 1월 ICT융합, 산업융합을 시작으로 혁신금융서비스, 규제자유특구, 스마트도시, 연구개발특구 등 6개 분야가 운영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과기정통부는 6건의 특례에 콘택트 렌즈 온라인 플랫폼을 포함시키며 실생활에 필요한 입체적인 소비 전략을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