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다. 사진=연합뉴스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다. 사진=연합뉴스

13일 치러진 제16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다. 이로써 민진당은 창당 38년 만에 처음으로 '12년 연속 집권'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됐다. 다만 이번 선거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성격이 강했던 만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될 우려도 있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개표가 99% 완료된 이날 오후 8시45분(현지시간) 현재 라이칭더 총통·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555만9000표, 득표율 40.08%를 기록했다.

친중 제1 야당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자오사오캉 부총통 후보가 464만1000표, 득표율 33.46%를 기록했다. 제2 야당인 중도 민중당 커원저 총통·우신잉 부총통 후보는 366만7000표, 득표율 26.44%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는 당초 각기 미국과 중국을 등에 업은 라이칭더와 허우유이 간 박빙 접전으로 예상됐으나, 오후 4시 투표 종료 직후 개표를 시작한 이래 라이칭더가 줄곧 선두를 유지한 끝에 대권을 따냈다.

허우유이 후보는 개표 94%가 진행 중이던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지지자들 앞에 나와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접전이 예상됐던 대로 1위와 2위의 표 차이는 약 92만표로 100만표에 미치지 못했고 라이칭더 득표율 역시 40% 대에 머물렀다.

직전인 2020년 선거 때는 차이잉원 현 총통이 817만표(57%)를 획득해 약 264만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3위 커 후보가 최종 개표 결과 360만표 이상을 얻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지난해 11월 성사됐던 국민당과 민중당간 후보 단일화 합의가 이견으로 인해 끝내 불발된 것이 허우 후보에게는 치명타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 ‘반중·독립주의자’ 라이칭더 당선...양안 관계 격랑 예상

민진당의 정권 재창출로 인해 대만은 반중·친미 기조를 유지하게 됐지만, 중국의 군사·경제 압박이 강화되며 대만해협에 격랑이 예상된다.

우선 라이 당선자가 중국이 노골적인 당선 방해 '작전'을 벌일 정도로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도 더 강경한 반중·독립주의자라는 점에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양안 긴장 수위는 차이잉원 집권 8년 기간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중국 당국은 그간 라이칭더가 당선되면 양안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위협을 가해왔다.

"독립은 곧 전쟁"이라며 원색적인 말 폭탄을 퍼붓고 대선이 임박해서는 '정찰 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이라고 주장)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지속해 대만해협 중간선 너머로 띄우고 군용기를 동원해 무력 시위성 비행을 계속해 왔다.

대만을 상대로 한 무역장벽 여부 조사를 선거일 직전까지 연장한 데 이어 대만산 폴리카보네이트(PC)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도 연장하는 등 경제적 강압 조치 수위도 높여왔다.

중국의 노골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가장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온 만큼, 대만을 겨냥한 보복 조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식이 치러지는 오는 5월 20일까지 중국이 군사훈련 등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무력시위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 또 경제적 타격을 노리고 세금 감면 중단, 특정 제품 수입 중단 등의 보다 더 강력한 경제 제재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상황 전개에 따라 한동안 가라앉았던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다시 언급되는 분위기가 올 수도 있다. 중국-대만간 공식 대화채널 복원도 기약 없이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만 담강대 창우에 교수는 대선 직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민진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더 많은 경제적 강압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만 매체들도 선거 직전 보도에서 라이칭더가 당선될 경우 시진핑 주석이 대만에 대한 '행동'에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전망한 바 있다.

◇대만, 중국 보복 조치에 미국과 밀착 가능성…미중 갈등도 고조될 듯

라이칭더 당선인은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대만 수호' 기조를 토대로 안보 불안 등을 이유로 미국과 더욱 밀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라이 당선인이 반중·독립 성향 강경파라 하더라도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만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전망이다.

미국도 대만 친미 정권을 '지원'하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면서 대만해협 현상 변경을 막으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라이칭더 당선인도 선거 나흘 전 국제 기자회견에서 "차이 총통의 안정적·실용적이며 일관된 양안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대선 결과로 인해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관계 갈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이번 대선에서 미국 측의 '암묵적 지지'를 받은 라이칭더가 당선됨으로서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싼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 측에 힘이 실리게 됐다.

친미 정권 연장으로 대만 민심을 확인한 미국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수송로인 대만해협과 서태평양에서의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할수록 무기 수출 확대 등으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공산도 커 보인다.

다만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중 관계를 첨예한 갈등 상태로 몰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고, 최근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으로 중동 확전설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대중 관계까지 악화일로로 치달을 경우, 11월 대선 가도에 작지 않은 악재가 될 수 있다.

시진핑 주석도 중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또다시 가파른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경제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도 민진당 라이칭더 당선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친미 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으로 미·중 갈등이 더 고조되면서 한국도 대만 문제에 더 선명한 입장을 취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중국과 미국·대만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높아져 한반도 안보와 한·중 관계에도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