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분쟁은 2020년 시작됐으나 사실 그 이전부터 망 이용료 분쟁의 씨앗은 잉태되고 있었다.

비록 8차 변론기일까지 열리며 양측의 주장은 2018년 5월 프라이빗 피어링 전환 당시의 지엽적인 전투에 머물러 있으나, 이 분쟁은 인터넷 세계 전체의 패러다임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전선의 '손 바뀜'
국내에서 망 이용료를 둘러싼 논란은 주로 역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17년 네이버와 구글의 분쟁이다. 당시 네이버는 구글 코리아를 향해 “구글은 세금을 내지 않으며, 고용도 없다”면서 망 이용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네이버는 당시 “우리는 2016년에만 734억원의 망 이용료를 지불했다”면서 사실상 통신사와 캐시서버를 통한 협력을 유지하는 구글을 비토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네이버 입장에서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순간이다.

최초 토종 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역차별 문제 중 하나였던 망 이용료 문제는 2019년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비롯해 구글, 네이버, 넷플릭스, 왓챠, 카카오, 티빙, 페이스북이 공동으로 돌연 "정부는 망 비용 구조의 근본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글로벌 기업 역차별 문제로 망 이용료 전선엣 대립하던 토종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갑자기 통신사 등 ISP를 겨냥하며 연합전선을 편 셈이다. 

"왜 토종 기업만 막대한 망 이용료를 내느냐, 글로벌 기업도 내야 한다"는 주장에서 "망 이용료 자체가 너무 비싸다"는 전선의 손 바뀜이다. ISP가 과도한 망 이용료를 받고있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며, 결국 이를 가능하게 만든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2016년 상호접속고시 개정 후 같은층위 ISP들의 무정산 원칙이 사라지며 트래픽 기반 정산이 시작된 상태에 대한 불만이 컸다. CP가 지불해야 하는 망 이용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9년 말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트래픽 정산에 있어 무정산 구간을 설정하는 한편, 대형 ISP간 트래픽 비율이 1대1.8일 경우 접속료를 상호 정산하지 않도록 하는 등 교통정리에 나서자 망 이용료 분쟁의 전선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찰라의 시간이었다. 페이스북(현 메타)과 SKB의 망 이용료 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원래 SKB와 LG유플러스는 KT를 통해 페이스북의 데이터를 받고 있었다. KT 고객은 이러한 KT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페이스북 데이터를 바로 끌어올 수 있고,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고객 서비스는 해외에 있는 페이스북 데이터가 KT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면 각 통신사들의 페이스북 캐시서버에 저장된 후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산은 없었다.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이 단행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데이터를 보내는 쪽이 비용을 내야했고 그 결과 KT의 부담이 커졌다.

KT의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그 결과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고객들이 사용하는 KT 경로를 홍콩, 미국 등으로 임의 변경했다. SK브로드밴드 대상이 2016년 12월, LG유플러스 대상이 2017년 1월 벌어진 일이다. 

다행히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과징금까지 부여할 정도로 치열했던 난타전은 일단 페이스북의 후퇴로 매듭이 지어졌다. 페이스북이 캐시서버 비용 일부를 충당하는 한편 과징금을 부담하고 ISP와 소통을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으며 확전은 피했기 때문이다. 망 이용료와 관련된 근본적인 불안요소는 해소되지 않았다.

페이스북 사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SKB와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 분쟁을 시작하며 불안은 현실이 됐다. 나아가 넷플릭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안이 나오기 전인 2020년 4월 SKB에 소를 제기하며 사태가 심각해졌다.

넷플릭스는 CP가 망 이용료를 ISP에 제공하는 현실이 왜곡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ISP가 당연히 망의 운영을 위한 책임을 지고, CP는 양질의 콘텐츠를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책임을 지는 상태에서 ISP가 CP에 망 이용료를 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다.

오픈 커넥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단방향 스트리밍 서비스에 특화되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회원들은 유튜브처럼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스트리밍해 즐기는 ‘한 방향' 형태로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이는 트래픽의 총량을 미리 예측하기 편리하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수년간 전 세계 통신 네트워크 사업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혁신적인 오픈 커넥트는 넷플릭스 카탈로그를 소비자와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 저장한다. ISP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소비자는 빠르고 고품질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윈-윈’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SKB도 반격했다. 반소를 제기하며 적극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했다. 나아가 넷플릭스가 현재 미국, 프랑스 등에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며 '왜 한국은 거부하는가'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SKB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서비스 속도 저하 문제와 망중립성 규제에 대한 FCC(연방통신위원회) 패소 판결 등에 따라 지난 2014년 미국의 컴캐스트, 버라이즌, AT&T, 타임워너케이블을 비롯해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Orange) 등 ISP 사업자들과 망 이용대가 지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거대 담론부터 여론전까지

망 중립성 논쟁 등 거대담론을 비롯해 망 이용료 부과 정당성 등을 둘러싼 충돌, 넷플릭스의 ISP 자임 논란에 이어 양측의 여론전도 불을 뿜었다. 지난해 2월 MWC 2022에서는 GSMA 의장사이기도 한 KT 구현모 당시 대표가 한국 기자들과 만나 GSMA 차원의 망 이용료 정책 가이드 라인을 수립하는 중이라 밝히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무임승차 방지법'이 대거 발의되며 SKB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런 가운데 법원의 1심 판결은 일단 SKB의 판정승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2021년 6월 25일 넷플릭스의 한국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B를 대상으로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다만 법원의 이번 판결이 ISP와 CP의 확고한 생태계를 정의내리기는커녕, 사실상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의견도 만만치않다. 법원이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확정하며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법원이 나서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 회사가 계약을 맺고 비즈니스를 하는 가운데 만약 문제가 생기면 계약을 종료하면 될 것을, 왜 논란이 생기자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법원에 판단을 묻느냐. 두 회사가 다시 논의하라’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넷플릭스는 물론 글로벌 CP들의 반격도 날카로워졌다. 지난해 10월 구글이 벌인 캠페인에 시선이 집중된다. 

당시 구글은 자사 채널과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나 일반 소비자들에게 망 이용료 부과 법안에 반대하는 서명을 광고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부사장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국회에서 추진되는 무임승차 방지법을 겨냥해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법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글로벌 최대 게임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국내 서비스 화질을 1080p에서 720p로 낮춘 배경에도 망 이용료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을 중심으로 넷플릭스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기류도 감지됐다. 넷플릭스를 통해 K-콘텐츠 전략이 강해지면서 '글로벌 CP를 무조건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