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업계가 IP(지식재산권)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당한 노력을 통해 창출한 IP를 통해 적법한 콘텐츠 플랫폼 전쟁이 벌어지는 이면에는, 여전히 훔치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더 글로리.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더 글로리. 출처=넷플릭스

피해액 최소 4조9000억원 "이제 못 참아"
방송사(KBS·MBC·CJ ENM·JTBC)를 비롯해 영화 제작·배급사로 구성한 한국영화영상저작권협회와 방송·영화 제작사 SLL(옛 JTBC스튜디오), OTT 플랫폼 콘텐츠 웨이브·티빙, 불법복제 대응조직 ACE가 콘텐츠 저작권 침해에 칼을 빼들었다.

이들은 영상저작권 보호협의체를 출범시키고 9일 영상물 불법 제공 사이트 '누누티비'를 형사고발했다.

누누티비는 영상 콘텐츠 업계 공공의 적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서버를 두고 한국 드라마와 예능 및 영화를 불법적으로 스트리밍했기 때문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플랫폼에 가입해야 하는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열려있다.

방식도 대범하다. 네이버와 구글 등 포털 사이트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누티비는 이렇게 모은 이용자들에게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를 노출시켜 그 수익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는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누누티비의 불법적인 스트리밍으로 정당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콘텐츠 플랫폼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일 기준 누누티비의 총 동영상 조회수는 15억회를 넘겼고 운영되고 있는 가변 채널의 누적 방문자는 3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OTT 업계 1위인 티빙의 1400만명, 2위 웨이브의 1000만명을 압도하는 수치다.

안상필 MBC 법무팀 차장은 "누누티비로 인한 국내 영상 업계의 피해 규모는 조회수와 VOD를 고려해 단순 계산했을 때 4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콘텐츠 부가판권과 해외 수출 등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밤토끼 로고. 출처=갈무리
밤토끼 로고. 출처=갈무리

IP 불법 탈취...오래된 전쟁
타인의 IP를 탈취해 이득을 올리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열리며 콘텐츠의 무한한 복사가 가능해지자 관련된 IP 탈취 논란은 업계의 오래된 논란이 되는 중이다.

특히 웹툰의 인기와 더불어 IP 불법 탈취 논란은 자주 벌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벌어진 밤토끼 사건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레진코믹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는 웹툰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가져와 버젓이 공개했다. 

밤토끼가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인 2017년 12월, 닐슨코리안클릭 기준 월 페이지뷰를 분석한 결과 밤토끼는 무려 1억3709만건으로 당시 1억2981만건의 네이버를 추월하기도 했다. 가짜와 불법의 온상이 정식 플랫폼을 누른 기형적인 현상이다. 

밤토끼 운영자들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유령법인을 설립한 후 한 오피스텔에 자체 시스템을 구축,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를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콘텐츠를 무료로 게시하며 도박 사이트 등으로부터 배너 광고료를 챙겼고, 미국에 서버와 도메인을 두고 영업을 했다. 엄연히 자본을 들여 만들어지는 웹툰을 불법으로 복사해 자기들의 사이트로 연결, 막대한 트래픽을 확보하는 부당이득을 취한 셈이다.

출처=넥슨
출처=넥슨

최근에는 게임업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게임 제작사 ‘아이언메이스’가 최근 넥슨의 미출시 프로젝트 P3를 무단 반출해 게임 ‘다크앤다커’를 개발했다는 의혹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성남시 분당구의 아이언메이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넥슨이 밝힌 정황은 이렇다. 먼저 P3는 2020년 7월 신규개발본부에서 시작한 신규 프로젝트다. 그리고 당시 P3 프로젝트를 이끌던 A씨는 소스코드와 빌드 등을 포함한 수천개의 파일과 대부분의 개발정보를 외부서버에 무단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아 경찰수사를 받았다. A씨가 P3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동료들에게 외부 투자 유치건이 있으니 집단 퇴직 후 새롭게 게임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 넥슨의 설명이다.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넥슨은 일단 2021년 7월 관련 자체 조사에 착수, A씨를 징계해고했다. 그리고 같은해 8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형사 고소했다.

석연치 않은 대목은 이후에 벌어졌다. P3 관련자들이 대거 회사를 나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P3를 폐기하고 P7을 새롭게 시작한 넥슨은 지난해 8월 아이언메이스가 P3와 유사한 다크앤다커의 알파 테스트를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아이언메이스의 대표는 A씨가 퇴사하던 시절 기획파트장이었으며, 함께 퇴사한 직원들 중 상당수가 아이언메이스에서 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넥슨은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설명이다. 넥슨은 "공지를 통해 “‘P3’에서 함께 게임을 개발하며 땀과 열정을 나눠왔지만 전 동료들의 비양심적인 행위로 인해 결국 해당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사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시는 전 P3 팀원들이 느끼고 계실 마음의 상처와 분노는 가늠할 길이 없다”라며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전 P3팀원 분들과 모든 임직원 분들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A씨뿐 아니라 프로젝트 정보 유출 및 활용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법인에 대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끝까지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임을 알려 드린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아이언메이스는 넥슨의 이러한 주장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의 유사성 등에 선을 그으며 여러차례 'P3와 다크앤다커는 다른 게임'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식 디스코드 채널을 통해 “게임을 만드는 데 도난당한 애셋이나 코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면서 내달 예정된 5차 테스트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생태계 뿌리 흔드는 위험한 일탈, IP 탈취
국내 디지털 플랫폼 업계의 큰 약점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었다.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빅테크 플랫폼 업계들이 장악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판이 흔들린 것은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벨트 전략'의 중심 아래에서 콘텐츠가 활로를 뚫는 역할을 했다. 북미와 유럽, 동남아시아 시장을 강타한 네이버웹툰을 비롯해 픽코마 신화에 이어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성공 배경에도 콘텐츠가 있다. 

'만국공통'인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국내 디지털 플랫폼 업계는 염원하던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심지어 넥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오징어게임> <더 글로리> 등을 통해 K-콘텐츠의 힘도 더욱 강해지는 중이다.

불법으로 탈취되는 IP는 이러한 '좋은 흐름'을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는 대형악재다. 특히 콘텐츠의 정당한 생산에 따른 정당한 수입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 등을 통해 불법 IP 탈취 등을 잡아내는 기술도 등장하는 한편, 예정보다 IP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있다"면서도 "무한한 복제가 '쉽게'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 IP와 관련한 법적 가이드 라인을 더욱 강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