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기술 혁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웹2.0에서 3.0으로 가는 길목에는 화려한 인플루언서들이 춤을 추고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는 모빌리티 시대를 넘어 진정한 유비쿼터스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메타버스가 질주하며 블록체인, AI와 빅데이터가 축제를 벌이고 있다.

세계가 새로운 기술에 흥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있다. 이 그림자에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퇴행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항상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기술에 따른 파시즘 문제다.

"친절한 독재자"

ICT 기술이 발전하며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천라지망(天羅地網)'의 시대가 열렸다. 특정 조직이 구성원을 분초 단위로 감시할 수 있으며 추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인 명확한 안전보장체제가 필연적으로 빅브라더의 시대를 끌어낸 것일까.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며 천라지망은 정치사회권력에 당위성까지 부여했다. 이제 집단감염을 막아야 한다는 상수가 등장하며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친절한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초반인 지난 3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등을 집필한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 사안을 강조했다. 공동체의 생존을 지키는 친절한 독재자가 등장할 것이며, 이는 팬데믹이 끝나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하라리 교수는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24시간 감시하는 사회"라면서 "코로나19에 따른 시민에 대한 생체감시(국가의 빅브라더화)는 긴급한 상황에만 일시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피오누알라 니 알른 유엔(UN) 테러대응·인권보호 특별보고관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이 이어진다면, 전염병 팬데믹이 끝난 뒤 또 다른 ‘권위주의 팬데믹’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디지털 파시즘의 시대

팬데믹은 친절한 독재자의 등장을 더욱 유연하게 끌어낸 무대일 뿐, 사실 디지털 파시즘의 시대는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특히 9.11 테러 후 미국을 중심으로 테러에 대한 공포가 커지며 기술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행보는 종종 '첩보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해 왔다.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강력한 보안 인프라를 전국에 배치해 사실상 '전 인민의 감시체계'를 구축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등장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는 분석이다. 권력의 중앙집중화가 심해지며 감시사회, 디지털 파시즘의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다.

백미는 2015년부터 가동되는 톈왕(天網)이라는 감시 시스템이다. 직역하면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이며 AI CCTV를 중심으로 구축된 치안 강화 프로그램이다. 중국 전역에 흩어진 2000만대의 CCTV가 톈왕 시스템의 ‘눈’ 역할을 한다. 미국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공개된 안면인식관련 특허는 900건을 돌파했으며 CCTV 특허는 530건 이상으로 집계됐다.

톈왕의 경우 범죄자 추적이라는 명목이라도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특정 지역을 방문한 기자나 유학생들을 감시하는 고도의 시스템을 구축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지난달 30일 중국 허난성 정부가 200여쪽에 달하는 사업 계획서를 통해 특정 인물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보도했다. 기자를 ‘위험도’에 따라 빨강·노랑·초록으로 분류하는 등 체계적인 감시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단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세계에서도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 인물을 선택해 감시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곤혹을 치른 바 있다.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밝힌 '프리즘 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중국의 톈왕 시스템. 출처=갈무리
중국의 톈왕 시스템. 출처=갈무리

진영 싸움으로 번지다

디지털 독재자, 디지털 파시즘은 우리가 누리는 ICT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공포스러운 빅브라더로 변신할 전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나서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국제무대 차원에서는 진영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13일 중국의 AI 기반 안면인식 기술 기업인 센스타임이 홍콩 증시 상장을 전격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홍콩증시를 통해 7억6,700만달러의 자금을 모집하려던 계획이 무위로 끝났다.

미 재무부가 지난 10일 현지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센스타임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 타격이 됐다.

출처=센스타임
출처=센스타임

센스타임이 중국 군산 복합기업이라는 명목이다.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유린 가능성을 언급하며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한 미국이 센스타임의 안면 인식 기술을 문제삼았다. 센스타임의 안면 인식 기술이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에 활용되고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중국 당국이 센스타임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 상무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드론 기업인 DJI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역시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탄압에 협조하고 있다는 명목이다.

현 상황에서 신장 위구르에 인권탄압이 벌어지고 있는지, 벌어지고 있다면 어떤 수준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 독재자, 디지털 파시즘에 대한 논란이 미중 패권전쟁의 큰 흐름속에서 소비되는 점은 우려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빅브라더를 원하는 것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모든 나라며, 이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힘의 응축력을 만끽하면서 실제적인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진영 싸움에만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