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기술 혁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웹2.0에서 3.0으로 가는 길목에는 화려한 인플루언서들이 춤을 추고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는 모빌리티 시대를 넘어 진정한 유비쿼터스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메타버스가 질주하며 블록체인, AI와 빅데이터가 축제를 벌이고 있다.

세계가 새로운 기술에 흥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있다. 이 그림자에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퇴행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항상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 중 하나가 바로 책임광물, 코발트다.

코발트 원석. 출처=갈무리
코발트 원석. 출처=갈무리

아이들이 죽어간다

지난 2017년 8월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프리카 콩고 민주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 코발트 광산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권탄압 사례를 보도했다.

심각한 내전이 벌어지며 많은 아이들도 고통받는 가운데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8살 소년 도산의 이야기다.

내전 중 가족을 잃은 도산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반군이 지배하고 있는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고 있으며 하루종일 노동을 착취당한다. 자기 키보다 큰 바위를 옮기거나 위험한 절벽에 매달리는 것도 서슴없이 해내야 한다.

일이 잠시라도 지연되면 반군 감독관에게 구타당하며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다. 평화로운 한국의 8살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친구들을 사귀고 놀이터에서 놀며 TV 시리즈에 열광한 후 하루가 끝난 저녁이 되면 엄마의 품에 안겨 따스하게 잠들어 갈 무렵, 아프리카 콩고 민주 공화국의 동년배 소년 도산은 매일매일 흙과 땀으로 범벅된 끔찍한 노동을 감내한 후 홀로 차가운 광산의 숙소에서 몸을 떨며 잠든다.

그럼에도 어린 도산이 손에 넣는 돈은 고작 하루 2달러 수준. 대부분의 수익은 반군이 챙긴다는 것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폭로다. 콩고 민주 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 생산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전은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받고 있다. 출처=갈무리
아프리카 내전은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받고 있다. 출처=갈무리

하얀석유

코발트는 주기율표 9족에 속하는 철족원소(鐵族元素)로 은백색을 띈 광물이다. 하얀 석유로 불린다. 석유처럼 쓰이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중세유럽의 천재 과학자이자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주로 사용한 광물이기도 하다.

코발트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필수적인 요소며, 최근 전기차 시대가 열리며 더욱 가치가 높아진 광물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연료기 때문이다. 양극, 음극, 전해질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전기차 리튬 배터리에서 음극에는 흑연이 들어가고 양극은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2)이 사용되는 가운데 여기에 코발트가 다수 활용된다.

최근 가격 등의 문제로 코발트를 배제한 전기차 배터리가 다수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대체하는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문제는 이 코발트가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보도처럼 석연치않은 과정으로 채굴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4대 분쟁광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채굴 과정에서 인권탄압 등의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전기차 시대에 흥분할수록 한 켠에는 고통받는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깔리고 있다. 불편한 그림자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의 코발트 광산을 장악한 반군들과 결탁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개선의 목소리

다행히 코발트는 물론 4대 분쟁광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ESG 경영이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더 이상 '피의 다이아몬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실제로 UN은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광물을 '분쟁광물'로 정의하며 특히 주석, 텅스텐, 탄탈륨, 금에 대한 감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모든 상장사들은 분쟁광물을 사용했을 때 즉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를 당할 수 있다. 2010년 제정된 도드 프랭크법과 2012년 SEC 분쟁광물 시행령 확정 덕분이다. 유럽연합도 2017년 5월 분쟁광물과 관련된 규제를 개정하고 올해 1월 시행하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호주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에서 광물 공급망 전략 합의에 나서면서 분쟁광물 운영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원산지 및 광산, 제련소에 대한 정보를 확보, 제공, 관리할 수 있는 내부 정책을 수립하고 분쟁광물의 공급망 전체를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도록 지속 관리할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RMA 행동규범(구: EICC 행동규범)을 기반으로 공급망(협력사) 관리 기준을 수립하고 협력사에게 관리체계 구축 및 관련 데이터를 수집 및 관리하는 한편 공급망내 제련소 및 정련소 등 다양하고 복잡한 공급망으로부터 취합되는 데이터들의 관리와 분쟁광물 보고서 (CMR: Conflict minerals Reporting)를 작성해 공유하고 있다.

기업들은 RMI, RCI(Responsible Cobalt Initiative) 등의 국제 기구들과 협력해 제련소 정보 확보 및 정보 제공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성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및 LG전자, LG화학과 포스코 등은 분쟁광물 관리에 있어 엄격한 내부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공표했으며 닛산은 아예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 출시에 나서는 중이다. 테슬라도 분쟁광물과 관련해 공급망 관리를 통한 원천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분쟁광물 관리에서 유럽연합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유럽연합 공급망 실사법 제정이 내년 상반기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은 RBA 산하의 RMI(Responsible Minerals Intitiative)에도 2019년 가입한 후 철저한 광물 관련 ESG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8년 코발트 산지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소규모 영세 광산을 직접 실사해 아동노동 실태를 점검하고 결과를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서정규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배터리 산업은 원재료 특성상 분쟁 광물 이슈가 있고, 윤리적이고 투명한 공급망 관리가 다른 산업보다 중요하다”며 “코발트 공급망의 아동노동 이슈가 제기된 이후 책임 있는 공급망을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에서 이제 분쟁광물은 책임광물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추세다. 물론 모든 공급망이 양지로 나온 것은 아니며 중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군벌 결탁 문제는 고차원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조금씩 이 문제를 무겁게 여기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