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는데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땅을 치며 억울해 할 일이다. 이솝우화의 양치기소년이 그랬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가 그랬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양치기소년은 진실을 말하기 전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 그는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며 거짓말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 동네 어른들은 이 말에 속아 무기를 들고 뛰어오지만 번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이 소년은 이런 거짓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어느 날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문제가 터진다. 양치기소년은 또 소리쳐 외치지만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았다. 결국 이 소년이 키우던 양은 모두 늑대에 잡혀 먹힌다.

카산드라는 정반대다. 처음부터 진실만 말했는데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줄거리는 이렇다.   
트로이의 공주였던 카산드라는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신들마저 그녀의 아름다움에 현혹될 정도였다. 올림포스의 신들 중에 최고의 미남이었던 아폴론 역시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무리 미남이어도, 권력이 많아도 얻을 수 없는 게 사랑인지, 아폴론의 거듭된 구애에도 그녀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도 카산드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폴론은 신의 영역인 예언능력을 주겠다는 미끼를 내건다. 이때부터 사달이 난다. 카산드라가 예언 능력만 받고 아폴론의 사랑을 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과의 약속을 어기면 큰 형벌이 내려지는 법. 아폴론은 그녀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는 척하면서 그녀의 입술에서 예언자의 무기인 ‘설득력’을 빼앗아 버렸다. 

카산드라의 기구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면 미래를 본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목마’가 조국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고 설득하고 호소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가 패망한 뒤 그리스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차지가 된 그녀 역시 아가멤논의 부인에게 살해당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아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여기서 탄생한 용어가 ‘카산드라 콤플렉스’다.
카산드라 콤플렉스는 명백한 진실이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를 말한다. 종종 혁신 아이디어가 너무 세상에 일찍 나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질 때 사용하기도 한다. 

카산드라는 늘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아 ‘카산드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낳았다. ‘트로이의 목마’를 성내로 들이면 안된다는 카산드라의 경고도 무시당해 결국 트로이는 패망했다.
카산드라는 늘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아 ‘카산드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낳았다. ‘트로이의 목마’를 성내로 들이면 안된다는 카산드라의 경고도 무시당해 결국 트로이는 패망했다.

이 말이 만들어진 이유는 카산드라가 단지 신화 속 얘기가 아닌 탓이다. 이 시대에도 많은 곳에서 카산드라가 진실을 얘기하며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단지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가 그런 경우다. 

대선을 앞두고 양당 대선후보들이 본격적인 표심잡기에 나섰다. 두드러지는 것은 포퓰리즘 공약이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0조원을 풀어 자영업자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고 의욕에 넘친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돈을 준다니 좋기야 하지만 재원이 화수분도 아닌데 그 많은 돈이 또 어디서 나올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다른 곳에 쓸 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빚을 늘리거나 세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여당 대표는 “국민한테 25만원, 30만원을 주는 것에 벌벌 떨면 되겠느냐”고 항변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35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을 결코 허투루 들을 얘기가 아니다. 

고대 로마는 시민들에게 빵과 콜로세움 입장권을 무료로 배급해 주며 환심을 샀다. 이를 두고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빵과 서커스’로 버티는 제국이라고 비판했다. 권력자가 무상으로 음식과 오락을 제공해 로마 시민을 정치적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쓴 약에 단 맛을 입힌 ‘당의정(糖衣錠)’ 포퓰리즘에 취해 정작 진실을 외치는 카산드라의 절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편집국총괄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