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악마의 탈을 쓴 인간, 표리부동한 인간 등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 야누스(Janus)다. 그 전형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헨리 지킬 박사는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사람으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그는 인간이 잠재적으로 가진 선과 악의 모순된 이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새로운 약을 만들어 복용한다. 그랬더니 포악한 괴물인간 하이드씨로 변했다. 

이후 낮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학식이 높은 점잖은 신사인 지킬 박사로, 밤에는 폭력· 강간· 살인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하이드씨로 이중인격의 삶을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로버트 스티븐슨이 1885년 발표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런 야누스의 의미는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일 뿐 신화에 나오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대부분 겹치지만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만 있는 몇 안 되는 신 중 하나다. 경계선을 지키는 신이자 ‘문(門)의 신’이다.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재한다.
안과 밖, 각기 반대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 만큼 얼굴이 두 개다. 공간적으로는 문의 앞과 뒤를,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기 위함이다. 과거를 통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의 신이 바로 야누스다. 영어 ‘1월(January)’과 ‘문지기(janitor)’라는 단어가 야누스에서 왔다.

로마인들은 1월을 ‘야누스의 달’로 정해 새해 첫 날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한 얼굴은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또 한 얼굴은 새로운 해를 내다보는 그런 달이기 때문이다. 야누스가 허락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간다고 믿었다.
야누스는 전쟁의 신인 동시에 수호의 신이기도 했다. 로마의 초대 왕인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이 로마를 공격하자 야누스가 나타나 뜨거운 샘물을 뿜어내 적들을 쫓아냈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부터 로마인들은 평상시에는 야누스신전의 문을 닫아놓았다가 전쟁이 터지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야누스가 나타나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는 과거를 통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의 신인데 현대에 와서 표리부동한 이중적 행태를 나타내는 말로 변색됐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는 과거를 통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의 신인데 현대에 와서 표리부동한 이중적 행태를 나타내는 말로 변색됐다.

이런 고상한 의미의 야누스에 대해 철학자나 정치학자들이 단지 두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중성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변색됐다. 야누스가 실재(實在)했다면, 그리고 옛 로마인들이 들었다면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다. 

최근 각종 비리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박영수 전 특검에게서 좋지 않은 의미로 평가절하된 야누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특검 단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어 감옥에 가게 한 장본인이다. 특검을 맡았을 때에는 도덕적 고결함을 갖춘 인물인 줄 알았는데 최근 드러나는 실체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박 전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포르셰 차량을 공짜로 빌려 탔다는 비리의혹이 불거지며 특검 직에서 물러나더니 대장동게이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김수남 전 검찰총장, 권순일 전 대법관, 곽상도 전 의원 등과 함께 대장동 게이트 ‘50억 약속클럽’중 한명으로 지목됐고 그의 딸은 대장동게이트의 핵심인 화천대유가 보유한 아파트를 시세의 절반 가격에 분양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국정농단 재판에서 재판부를 향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던 그의 모습은 진실이었을까. 
진위여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를 둘러싼 부패가 하나 둘 드러나면서 그의 야누스적 위상도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편집국총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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