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우려되면 사람들은 힘을 합쳐 둑을 쌓는다. 둑을 쌓지 않으면 너나 구분 없이 모두 수해를 입는 탓이다. 하지만 가뭄이 들 땐 상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우물도 파 농경지에 댈 물을 찾지만 그래도 부족하면 강물을 끌어다 대야 한다.

그러다 강물마저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넉넉할 땐 이웃사촌이지만 부족할 땐 경쟁관계가 되기도 한다. 강(river)에서 라이벌(rival)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이유다. 

강은 라틴어로 리부스(rivus), 강을 같이 쓰는 이웃을 리발리스(rivalis)라고 했다.

로마 제국시대 프랑스 남부 론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밀로 풍족하게 살던 하류민들이 있었다. 그런데 강줄기가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농사는커녕 마실 물도 찾기 힘들어졌다. 도대체 강줄기가 메말라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중류마을 사람들이 하류마을 사람들의 밀농사를 시기해 강줄기를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중류마을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강의 이권을 놓고 상류마을 사람들까지 가세하면서 물줄기를 둘러싼 분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무려 90년이나 이어졌다. 한 세기 가까이나 지속된 이 분쟁은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어렵사리 해결됐지만 이 분쟁은 강을 같이 쓰는 이웃인 리발리스를 경쟁관계인 라이벌로 변하게 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웃에서 파생된 라이벌은 그냥 적의로만 가득 찬 관계이거나,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원수관계, 즉 에너미(enemy)와는 의미가 다르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경쟁을 하더라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공존의 관계다.

1955년생 동갑내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전혀 다른 경영 스타일과 정보기술(IT) 철학을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 PC와 인터넷 혁명을 앞당겼다. 피카소와 마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경제학자 케인스와 슘페터 등도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예술이나 경제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강(river)을 나눠쓰던 이웃이 물 다툼을 벌이면서 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사진은 스페인 프로축구의 최대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
강(river)을 나눠쓰던 이웃이 물 다툼을 벌이면서 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사진은 스페인 프로축구의 최대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

사람만이 아니다. 기업과 스포츠 세계에서의 라이벌은 인류를 풍요롭게 하고 흥미롭게 한다. 애플과 삼성전자,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등의 경쟁이 그렇다. 만약 축구에서 스페인의 명문클럽 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 테니스에서 조코비치, 페더러, 나달 등이 없었다면 이들 스포츠가 과연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는 게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이런 라이벌의 존재가 얼마나 값진 지를 잘 알려주는 것은 스포츠경기에서의 ‘더비(Derby)’다. 잉글랜드 더비 백작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 이 말은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 라이벌 축구팀 간 경기’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는 축구뿐 아니라 야구, 농구 등 스포츠 전 분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지역내 라이벌 경기를 의미할 정도로 확장됐다. 

스페인 프로축구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인 ‘엘 클라시코 더비’가, 영국 프로축구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맨체스터 더비’, 토트넘과 아스널이 치르는 ‘북런던 더비’ 등이 유명하다. 단지 이들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사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LG와 두산간 대결인 ‘잠실더비’가 잘 알려졌다. 라이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 인기에 관련 스포츠도 발전했다.

문제는 이런 경쟁관계가 도를 넘어 에너미 관계로 변할 때다. 에너미는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기보다는 상대에 비수를 꽂아 파멸시키거나 스스로 무너져야 결론이 난다.

공교롭게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에 강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이 갈등도 자칫 잘못하면 경쟁관계 이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서로 끌어 쓰지 말아야 할 강물을 갖다 쓰거나 넘지 말아야할 강을 넘어서고 있는 게 이유다.  

여당에서의 갈등은 ‘지역주의의 강’이다. 양강 주자인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 간의 ‘백제 발언’ 충돌양상이 심화하자 급기야 송영길 당 대표가 “다시 지역주의의 강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섰을 정도다.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선 이제 지역주의는 더 이상 끌어다 쓸 강물이 아니다.

야당의 내홍은 ‘탄핵의 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흐리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당시 탄핵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이 가시화하자 탄핵 논쟁이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이준석 당 대표가 “탄핵의 강에 들어가는 쪽이 진다”며 강력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그래서다.

아무리 대선후보 경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지만 경쟁관계인 라이벌이 에너미로 바뀌어서는 안될 일이다.   <편집국총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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