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싱글족 직장인 김씨는 지난해 2살된 몰티즈 양이를 입양한 '집사'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외로움이 부쩍 많아진 탓이 컸다. 김씨가 양이에게 들이는 사료와 간식 등 고정비는 약 14만원. 7월부터 사무실 출근을 앞둔 김씨는 양이의 분리불안 걱정에 최근 8만원을 주고 '홈 CCTV' 2개를 구입했다. 다음주에는 자동급식 급수 도구도 살 생각이다.
#. 블랙핑크 멤버 로제는 입양한 유기견 행크에게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명품 브랜드 생로랑 반려견용 식기와 이동장을 선물해 주목받았다. 해당 제품 가격은 각각 76만원과 360만원. 명품으로 멋부린 행크는 '인프루언견'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다.

반려동물이 만든 경제 '펫코노미(Pet+Economy, 반려동물 산업)' 시장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서 반려동물과 여가시간을 보내는 '펫콕족(반려동물+집콕)'이 증가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된 모양새다. 밥그릇, 사료만 구비하던 시대는 사라졌다. 오늘날 반려동물은 사람과 같은 인격체로 대우받으며 호텔, 택시, 장례 등 서비스를 누리고 영양제를 맞으며 보험도 가입한다.

반려인구 1,500만시대, 4명 중 1명은 '집사'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반려가구는 604만가구로 전체 29.7%를 차지했다. 반려인은 1,448만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중이다. 시장규모 역시 급성장세다. 농촌경제연구원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은 펫코노미 시장이 지난 3년간 연평균 14% 성장하며 지난해 3조4,000억원 수준을 기록했고, 올해는 3조8,000억원대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지난해 펫코노미 성장세는 가파랐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동안 판매된 반려동물용품은 2015년 대비 24%, 2017년보다 15%, 2019년 대비 8% 증가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바깥 외출(산책)을 시키지 않고 관리가 용이하다고 알려진 고양이용품 판매량이 급증했다.  유로모니터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식이나 여행에 제약이 걸리면서 펫케어 소비로 옮겨갔으며 주로 프리미엄 펫케어 소비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며 전환 시점이 크게 앞당겨졌다고 평가했다.

특허청에 애견 및 애묘 등 '반려동물 상품'과 관련된 상표 출원은 2014년 7,546건에서 2019년 1만3,256건으로 늘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가 늘면서 자녀를 낳는 대신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키우는 '딩펫(Dink+Pet)족'까지 등장, '펫밀리(Pet+Family,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해 아끼고 사랑하며 기르는 가정)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펫코노미가 커진 배경으로 '펫 휴머나이제이션(Pet Humanization, 인간화)'를 꼽는다. 1인 가구 증가와 자녀 독립 후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 일명 '펫부머'가 늘면서 반려동물을 소중한 가족 일원으로 여기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사료 등만 챙기면 됐지만, 가족을 넘어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늘면서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반려가구의 월평균 총양육비는 14만원으로, 이들은 지난 2년간 평균 47만원을 치료비로 지출했다는 게 KB금융지주의 조사 결과다.

'펫 휴머나이제이션' 트렌드에 따라 반려동물이 누리는 삶은 인간의 삶과 닮아가고 있다. 펫코노미 시장이 동물병원 등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음식, 주거환경, 건강, 입는 것까지 전문화되고 세분화됐다는 이야기다. 펫코노미 시장 확대는 신조어를 통해서도 체감할 수 있다. '펫밀리'와 '딩펫'에 이어 ▲펫티켓(Pettiquette) ▲펫테크(Pet+Tech) ▲펫금융 ▲펫케어(Pet+Care)까지 등장, 대한민국은 '펫코노미 시대'를 맞았다.

500만원대 몽클레어 패딩 입은 '우리 댕댕이'

이 때문에 펫코노미는 성장하는 산업군으로 자리잡았다. 눈에 띄는 것은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브랜드 행보다. 명품 패딩으로 잘 알려진 몽클레어(MONCLER)는 반려견을 위한 고가의 패딩조끼와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고, 버버리도 트렌치코트와 방수 누빔자켓, 에르메스 루이비통도 고가 애견 목걸이·목줄 등을, 구치는 침대와 순은제 고급 밥그릇을 내놨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몽클레어 패딩조끼류가 30만원~90만원, 프라다목줄은 30~60만원, 루이비통 도그 캐리어는 300~400만원 대에 달한다.

펫케어 기능을 탑재한 가전제품 '펫테크(Pet Tech)'도 뜨고 있다. '펫테크'는 반려동물과 기술의 합성어로, ICT기술을 활용해 편리하고 안전한 반려동물 양육에 도움을 주는 상품 및 서비스를 의미한다. 로봇청소기에 펫 케어 기능을 넣어 외출했을 때 집안에 홀로 남은 반려동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도록 하는가 하면 반려동물 전용 욕조와 알레르기 물질을 제거하는 무선청소기도 나왔다.

사계절 온풍과 공기청정이 가능한 펫 전용 공기 청정 온풍기와 반려동물의 행복, 불안, 분노 등 감정과 건강을 수시로 체크하는 서비스도 있다. 일례로 소변검사 키트를 앱을 실행해 스마트폰에 대면 반려동물 당뇨, 방광염, 요로감염, 신부전 등 질환을 확인 가능하다. KB금융지주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반려가구 64.1%는 펫테크 기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향후 이용 의향이 높은 펫테크로는 ‘GPS 위치추적기’(40.4%)와 ‘홈 CCTV’(39.1%)을 꼽았다.

 

펫보험 들고 유산 상속하고...치매도 고친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기에 최적화된 인테리어인 '펫테리어(Pet Interior)'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퍼시스그룹 생활가구 전문 브랜드 일룸은 2019년 11월 펫가구 시리즈인 '캐스터네츠'를 론칭하고 책장 캣타워, 계단형 숨숨집, 펫소파 테이블 등을 선보였는데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약 2배 상승했다. 심지어 채식 사료, 임신한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와 펫호텔, 펫택시, 펫유치원, 펫장례 등 새로운 서비스도 각광받고 있다.

'펫금융'도 쏠쏠하다. 산책이나 운동 중 반려동물이 다칠 것이 우려된다면 상해의료비를 보장하는 '펫보험'을 들면 되고,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다면 목돈마련 상품 '펫사랑 적금'에 가입할 수 있다. 사망 후 홀로 남겨질 반려동물이 걱정되는 집사는 '펫코노미 신탁'으로 상속하면 된다. 맡긴 자금에서 치료비, 장례비 등 지속적인 보호와 관리를 한다.

치매약도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반려견 인지기능장애증후군 치료제 ‘제다큐어’를 출시했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은 사람으로 치면 알츠하이머 치매와 비슷한 동물 질환으로, 이 약은 국내 첫 인지기능장애증후군 치료제로 치매 동물 시험에서 뇌신경세포 사멸이 줄고 인지 기능이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반려동물의 항암면역 치료 백신과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DNA 백신, 장내 미생물 헬스케어 등 '펫 케어' 제품 등도 개발되고 있어 곧 만나게 될 전망이다.

 

어르신 일자리도 지키는 댕댕·냥냥이

펫코노미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진흥원은 오는 2027년 6조원 규모로 성장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잠재적인 펫족도 많다. KB금융지주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0세 이상 남녀 1,000명 중 현재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가구를 대상으로 '향후 반려동물 양육 의사'를 조사한 결과 47.8%가 '양육 희망'으로 답했다.

이커머스 시장 확대에 온라인 판매가 쉬워진 영향도 한몫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한국 펫케어 시장은 온라인 판매 비중이 58.7%를 기록했다. 올해는 6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모니터는 오는 2026년까지 글로벌 펫케어 유통의 3분의 1가량이 온라인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커져가는 펫코노미 시장은 일자리창출 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5일까지 50세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반려동물택시(펫택시) 드라이버 양성 교육을 진행했고, 강남구도 '반려동물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중이다. 대구 남구는 지난달부터 '반려 길동무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며 가톨릭상지대과 세명대는 각각 올해와 내년 '반려동물과', '동물바이오헬스학과'를 신설한다.

한국 펫케어 시장조사를 진행한 문경선 유로모니터 연구원은 "지난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높아진 반려동물과의 유대감이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며 "반려동물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향후 한국 펫케어 시장은 건강 기능성에 초점맞춰 질적 성장이 주를 이루는 성숙한 펫케어 시장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