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전기차 배터리, 특히 이차전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폐배터리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낮다. 그러나 지금이야 당장의 산업에 주력하더라도 언젠가는 폐배터리 문제에 유연한 대응을 보여줘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영하 60도에서도 작동하는 리튬이온전지. 출처=카이스트
영하 60도에서도 작동하는 리튬이온전지. 출처=카이스트

폐배터리 문제, 당장의 문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리치에 따르면 2030년, 글로벌 기준 약 90GWh가량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폐배터리 문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이 발간한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도 개화시킨다' 보고서는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이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수도 당연히 늘어나게 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된 배터리 또는 사고 등의 이유로 폐차를 하게 된 전기차에서 나오는 배터리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해당 배터리를 회수하여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새로운 수익사업으로서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GM과 현대가 폐배터리로 ESS를 활용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GM과 현대가 폐배터리로 ESS를 활용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방법 하나, 재사용

현재 폐배터리 활용 사업은 크게 수명이 다한(EOL, End of Life) 배터리를 ESS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재사용(reuse)’하는 시장과 여러 방식을 통해 배터리를 구성하는 재료들을 회수해 새로운 배터리 제조 등에 투입하는 ‘재활용(recycling)’ 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배터리 재사용은 성능이 저하된 배터리를 말 그대로 재사용하는 방식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cell), 셀을 외부 충격과 열 등에서 보호하기 위해 일정 개수의 셀을 프레임에 넣는 모듈(module), 모듈에 BMS(battery management system)와 냉각 시스템 등의 제어 및 보호 시스템을 장착한 팩(pack)을 나눠 재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듈 형태로 재사용려면 배터리 팩을 분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다양한 형태로 배터리 재활용에 나설 수 있어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는 시장이다.

재사용되는 배터리들은 자제품용 배터리, 고정형 또는 이동형 전기차 충전기 등에 재활용되며 특히 ESS에 가장 많이 활용된다. 전력이용 최적화 및 이에 따른 이용료 절감, 주요 설비의 무중단 운영을 위한 백업 전력에서 폐배터리 재활용이 간편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GM이 스위스의 전기회사인 ABB와 협력해 ‘쉐비 볼트(Chevy Volt)’ 전기차의 배터리 팩을 재활용해 ESS로 재활용한 사례도 있다.

물론 전기차용 배터리로 재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고서는 "수거된 전기차 배터리의 검사 과정을 거쳐 잔여 용량이 충분한 배터리 팩과 셀을 기반으로 새로운 배터리를 제조해 저렴한 가격에 이른바 ‘리퍼브(refurbish) 배터리’로 판매하는 것이 대표적"이라 말했다.

이 외에도 폐배터리는 자동차 이외의 다른 전기 모빌리티 수단에 활용되거나 전기차를 위한 이동형 충전기, 드론, 전동휠체어는 물론 사실상 배터리를 이용하는 다양한 기기에 활용될 수 있다.

배터리 재사용은 주로 완성차 업체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체 과정을 모두 담당하는 전문적인 업체들이 사실상 현장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창업한 미국의 SNT(Spiers New Technologies), ITAP(IT Asset Partners), 시베스마 일렉트로닉스 (Sybesma’s Electronics), 배터리MD(Battery M.D.)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감은 아니지만 조금씩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배터리를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안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하다. 제조사가 아닌 다른 비공식 재활용 업체 등이 제공하는 리퍼브 배터리의 경우 적절한 BMS가 없으며 품질을 100% 보장할 수 없기에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전규격 개발 및 인증 업체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이 2018년 10월 ‘배터리 재활용 평가 표준(Standard for Evaluation for Repurposing Batteries)’인 ‘UL 1974’를 발표한 이유다. 배터리 재활용이 완전히 시장에 안착하려면 역시 '안전'이라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배터리 재활용 프로세스 및 주요 업체들의 도입 방식. 출처=갈무리
배터리 재활용 프로세스 및 주요 업체들의 도입 방식. 출처=갈무리

방법 둘, 재활용

재사용이 가능한 배터리가 아닌, 말 그대로 재사용할 수 없는 폐배터리 활용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다행히 배터리의 구성요소를 고려하면 배터리 재활용은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근 전기차에 많이 이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물질(cathode), 음극물질(anode), 분리막 및 전해액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양극물질에는 코발트, 리튬 등의 희소 금속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음극물질에는 천연 흑연, 인조 흑연, 저결정성 탄소, 금속 음극제 등이 들어있다. 이들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안은 전기차 원가 중 가장 많인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수익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배터리 재활용은 어떻게 전개될까. 수거된 배터리의 분리, 기계적 파쇄, 그리고 화학처리 등을 통한 금속회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크게 건식제련(Pyrometallurgical), 습식제련(Hydrometallurgy), 직접 재활용(Direct Recycling) 방식을 통해 배터리에서 금속을 추출하며 현재 배터리 재활용 업체에 따라 활용 기술이 각각 다르다.

기술 장단점도 뚜렷한 가운데 박테리아를 이용해 금속을 회수하는 생물학적 재활용(Biological Recycling) 기술도 존재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말도 나온다.

한편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고도화되며 상당한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으나 몇몇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배터리 재활용 그 자체는 ‘친환경’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각각의 기술들을 보면 상당한 양의 전기나 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등 친환경 요소와 멀어지는 점이 눈길을 끈다.

친환경 시대에 필요하다는 전기차의 배터리가 오히려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폐배터리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현성되는 이유다. 전기차가 친환경 이동수단이라 하지만 전기를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제조사에 따라 배터리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의 구성이 서로 다르며, 배터리 모듈과 팩의 디자인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