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 조달자금 중 차입금 상환을 제외한 전액을 해상풍력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국책과제로 추진되는 8MW급 설비 개발 선제 투자로 세계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트랙 레코드(이행실적) 확보를 위한 국내 해상풍력 단지 확장이 필요한 중에, 정부가 부지 확보를 위한 갈등조정 지침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어 나름의 기대감도 피어나고 있다.

다만, 관련 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2년 후에나 가시화될 전망이며, 그 외 실질적인 정책도 아직까지는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라 당장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6084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4879억원은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 상환에 투입되고, 나머지 1206억원은 해상풍력 관련 사업 확대에 지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된 신사업 비중도 올해 36%에서 2023년 48%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 두산중공업의 중장기 포트폴리오. 출처=두산중공업

매출 80%를 차지하는 화력 및 원자력발전 설비 수주잔고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파워부문 신규수주는 3조8245억원으로 2016년의 51%에 불과했다. 그 영향으로 수주잔고도 지난 2016년보다 1조5261억원 감소한 16조4022억원을 기록했다. 단, 수주잔고는 아직까지 매출액의 3배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다.

정부의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영향을 받은 탓이다. 지난해 국내 원전 가동률은 65.9%로 37년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오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로 확대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의 새로운 무기 ‘해상풍력’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 달성을 위해 신규 증설할 신재생에너지 설비(48.7GW) 중 약 25%(12GW)를 해상풍력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 해상풍력은 0.61GW에 불과하다.

해상풍력 균등화발전비용(LCOE)도 점점 하락하는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해상풍력의 2017년 LCOE는 지난 2012년보다 약 25% 내렸으며, 2030년까지 30% 이상 하락할 전망이다. 2017년 해상풍력 LCOE는 MWh 당 120~140달러 사이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도 유상증자 금액 중 913억원이 5.5MW 및 8MW 해상풍력 모델 개발에 투입한다. 나머지 293억원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투자 재원 확보에 사용된다. ESS는 해상풍력 등의 최대 문제점인 에너지 생산 편차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세계 풍력발전시장에서 선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8MW급 풍력발전설비 투자 확대에 본격 나설 방침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11년부터 풍력발전에 투자해왔다. 현재 탐라해상풍력단지에 설치된 3MW 설비와  실증화 단계에 있는 5.5MW급 설비기술은 국내 선두 수준이다. 다만,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대체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진입이 다소 늦은 탓이다.

▲ 제주도 탐라해상풍력단지에 설치된 두산중공업의 3MW급 풍력발전 설비. 총 10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두산중공업

반면 8MW 급은 이제 막 태동하는 사업이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8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국책과제로 주도하는 550억원 규모의 사업을 따내면서 관련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프로젝트는 약 48개월간 수행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같은 바람으로 보다 많은 전력량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화’가 추세”라며 “8MW의 경우 현재 세계 최대 풍력발전회사 베스타스 등만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8MW 시장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관련 기술 개발이 잘 이뤄진다면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도 “8MW의 경우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세계적으로 많이 없기 때문에 향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부, 부지 확보를 위한 갈등 조절 지침 마련 중

두산중공업의 해상풍력 투자가 실적으로 이어지려면 우선 정부의 구체적인 해상풍력 지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해상풍력의 경우 통상 부지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정부가 계획입지제도 등을 도입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협의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담긴 구체적인 매뉴얼은 이제 막 마련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해상풍력 발전의 경우 풍량 등에 따른 부지선정이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어업을 영위하는 지역주민 등과의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타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사업 지연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2000MW 규모 단지 조성이 예정된 서남해해상풍력단지는 인근 어민과의 갈등 등으로 사업 시작이 무려 6년이나 늦어졌다. 지난 2011년 첫 계획이 발표됐지만 2017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첫 삽을 떴다.

현재 정부는 ‘2019년 1차 전력정보화 및 정책지원사업’에 따라 계획입지제도의 안정적 도입을 위한 과제 해결 참여 기업을 공모하고 있다. 과제에는 ▲관련 법령 연계성 검토 ▲부처간 갈등요인 도출 및 협의방안 검토 ▲사업추진 인허가 영향 분석 ▲전담기관 역할 및 효율성 제고방안 검토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경쟁력 늘릴 '트랙 레코드' 확보될까

계획입지제도 관련 지침이 마련되면 국내 풍력 발전의 고질병이었던 ‘트랙 레코드’ 확보 기대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랙 레코드’란 이행실적을 의미한다. 국내 풍력 설비가 세계 시장에서 납품경쟁력을 갖추려면 제품의 하자가 없다는 검증 등을 위한 1~2년간의 가동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국내 풍력 단지의 부족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실적 자료를 쌓을 곳이 부족했고, 이는 수주경쟁력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현재까지도 실제 운영되는 상업용 해상풍력단지는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는 탐라해상풍력단지가 유일하다. 두산중공업이 지분 36%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골드윈드는 선진국과의 기술 제휴를 기반으로 내수시장에서 트랙 레코드를 쌓아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했다. 조윤택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세계 풍력발전 설비 시장의 12%를 차지하는 골드윈드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풍력발전 기술을 폭발적인 내수시장에 접목해 기술자립화를 이루었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산업부 측은 “선 풍력단지 조성 후 사업자 개발방식을 도입하면 사업 지연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민간투자도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국내 단지라 해서 꼭 국내 제품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수가 늘어나면 국내 제품 투입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나 트랙레코드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실제로 이뤄진 국내 해상풍력 사업이 현재까지 거의 없는 만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