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항소심을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한동안 칩거모드에 돌입했으나, 지난 22일 유럽으로 떠나며 경영 활동을 사실상 재개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45일만에 첫 외부 일정에 돌입한 이 부회장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대외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이사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당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 사장, 황성태 화성시 부시장, 권칠승 국회의원(화성시병), 지역주민 등 약 300명이 참석했던 경기 화성 EUV(극자외선)라인 기공식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 23일 열렸던 삼성전자 주주총회에도 이 부회장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로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을 자축하는 한편, 액면분할 등으로 '젊어진 삼성전자 주주'의 데뷔전이던 주총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재계는 이 부회장의 다음 행보에 커다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부회장이 첫 대외행보로 유럽을 택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 2016년 9월 인도로 날아가 모디 총리와 만난 것이 마지막이다. 약 1년6개월만의 해외출장을 통해 해외 사업부 점검은 물론 각 지역 거래선과의 스킨십을 통해 경영공백을 메우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과거행보에 힌트가 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 와병 직후 경영일선에 투입되어 야심찬 글로벌 전략을 구사했다. 등판 직후 이 부회장은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를 연이어 만나 당시 문제가 되던 특허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연이어 회동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번 출장을 통해 이 부회장은 단순 CEO가 아닌, 재계 총수가 직접 손을 내밀어야 성사될 수 있는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 집중할 전망이다.

대형 인수합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미래 삼성전자 전략을 짜왔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주도해 2014년 8월 스마트싱스와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를 인수했고 같은해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손에 넣었다. 2015년에는 브라질 문서 출력관리 기업인 심프레스, 삼성페이의 초석인 루프페이, 예스코일렉트로닉스까지 인수했다. 2016년에도 조이언트, 비브랩스를 연이어 인수했고 지난해 인공지능 비브랩스 인수까지 완료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11월 글로벌 전장장비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후 특별한 인수합병 전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이 부회장이 구속된 후 삼성의 인수합병 전략 자체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이번 유럽 출장을 통해 피아트의 자동차 부품 사업부문인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을 타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2016년 전장사업팀을 구성하며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를 타진했고, 마그네티 마렐리는 차량 조명 및 엔터테인먼트, 텔레매틱스(차량 무선인터넷 기술)의 강자로 평가받는다.

이 부회장은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주회사 엑소르 그룹 이사회의 사외이사였으며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항상 이사회에 참석하곤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사외이사에서 물러났으나 삼성전자는 전장사업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으며, 이 부회장이 이번 유럽 출장으로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 타진을 위한 물밑작업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그 외 다양한 ICT 기술 기업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도 살아있다.

한편 이 부회장의 유럽출장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통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이라면서 “어느 국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오랜 기간 해외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서 직접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