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 22부재판부) 417호 법정. 선고 초반, 확실히 분위기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가는 듯 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신 회장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은 김세윤 재판장은 지난 5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한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답습이나 하듯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이름 최순실), 하수인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 문제가 된 각 재단에 출연을 한 기업인들은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이 아닌 ‘요구형 뇌물죄의 피해자’에 불과했다. 

특히 신 회장이 추가 70억원 출연으로 뇌물공여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K스포츠 재단 부분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 당시 이 부회장이 이미 무죄 판단을 받은 적도 있어, 세간에서는 신 회장이 단순히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수준을 넘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결국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법정구속까지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과연 신 회장, 더 나아가 이 부회장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설상가상'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회장이 근래 형사판결에서 선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 등 일가 5명을 포함한 경영비리 사건으로 크게 홍역을 치른 바 있는데, 당시 신 회장은 ‘재벌 봐주기’라는 국민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경영공백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현재 검찰과 롯데그룹 측의 쌍방 항소로 항소심 계류 중인 이 사건은 신 회장이 1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법)상의 횡령, 배임 등으로 징역 10년형을 구형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과연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신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을 뿐더러, 여러 정황에 비추어 이 부회장의 경우와 달리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제3자 뇌물공여죄’가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전향적인 국면 전환도 쉽지 않은 상태다(관련기사: 선고 D-1, 롯데 신동빈 판결 장담할 수 없어).

결론적으로 신 회장은 경영비리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유지하는 한편,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최소한 집행유예 또는 무죄를 받아야만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고,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기까지 신 회장 구속의 장기화로 경영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당분간 롯데그룹의 운명에도 암운이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노심초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이 부회장으로서 이번 판결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기까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의 간접증거라 할 수 있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한 증거능력이 부인되고, 정유라 승마지원 부분 중 말에 대한 소유권, 마필과 보험료 등 36억 여원 상당의 무상사용 이익을 뇌물 및 횡령액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항소심이 이와 같은 부분을 모두 뇌물 및 횡령액으로 인정했더라면,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서는 특경법 상 횡령으로 징역 5년형 이상의 법정형이 적용돼 법원으로서는 작량감경을 한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까지 선고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양형일 수 있었다. 현재 이 사건은 특검과 이 부회장 측 쌍방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이지만, 최소 1년 이상 대법원에서 심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바, 만약 그 사이 이번 판결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내려지고 뇌물 및 횡령액에 대한 판단이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 내용과 달라진다면 대법원으로서도 어느 항소심 판결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이 부회장은 항소심 승리로 처벌의 위험으로부터 모두 벗어났다고 방심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인하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상황이 돼버렸다. 행여나 유탄이 날아오지나 않을지, 이 부회장의 잠못드는 밤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