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이 바로 저희 센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입니다. 채무상담은 빚을 조정하거나 정리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에요. 더 큰 빚을 지게 하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거나 빚을 지게 된 원인을 물어 복지와 연계할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채무자를 돌봄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이 필요해요"

'돌봄'이라는 추상적인 말은 금융채무자들의 삶을 직접 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구체화된다. `길을 안내해서 온전히 살 수 있게 하는 것`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의 김미선 센터장(44)은 "채무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성남시청 9층 성남금융복지센터에는 9명의 상담사들이 매일 사회적 약자인 채무자들의 상담을 받고 있다.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는 다른 지방자치단체 상담센터의 롤모델로 알려져 있을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증가하는 가계부채에 대해 상담시설을 늘리겠다는 정부 대책과 맞물려 대표적으로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의 역할이 재조명받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어 "센터의 상담사들 역시 스스로가 돌봄의 대상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채무자들을 상담하다보면 상담사까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릴때가 있는데, 때문에 이들 역시 돌봄의 대상이 될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미선 성남금융복지센터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채무 상담사,  금융업 종사자의 일자리 아니다"

지난 10월 24일 가계부채 대책에서 정부는 현재 지자체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상담사들을 양성하고 증원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김 센터장은 "상담사를 양성해 채무자들의 부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상담사가 전문성과 돌봄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만큼 단순히 금융종사 경력자들의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사용되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금융복지에 관한 복지 개념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상담직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무를 조정하고 감면하고 탕감하는 상황은 전체 채무상담의 10% 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문제는 대체로 개인파산과 회생이라는 법적 문제로 넘어가는 사안입니다. 채무자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복지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상담의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때론 재무설계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요. 상담사들의 역할에 채무조정이 주가 된다면, 법률구조공단의 지원과 같은 게 됩니다."

그는  "결국 상담센터는 채무자의 채무문제에 선제적으로 다가가 해법을 주려는 것이며, 법률구조공단의 하부조직처럼 되길 원치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채무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이들이 장기간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데 상담사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자부했다.

김 센터장은 "채무자들이 개인회생 또는 파산절차를 진행하다가 '도덕적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면서 "이들에게 단순히 법적 절차를 도와주는 개념에서 벗어나 삶의 지속성을 위해 도움을 주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미선 센터장은 "상담센터는 채무자의 채무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다가가 해법을 주는 역할이며, 법률구조공단의 하부조직처럼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재성기자

그의 이같은 상담 철학은 과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김 센터장은 불문학을 전공한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나 보험회사에 이직하면서부터 빚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센터장은 2008년 외국계 보험회사인 PCA생명의 보험설계사 일을 했다. 이후 2009년 보험회사 교육 연수중에 에듀머니 대표였던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빚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보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자꾸 빚 이야기를 듣게 됐다. 빚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곳에서도 취약계층만 찾아다녔다. 이후 제 의원과 인연을 통해 상담사의 길을 걷게 됐어요."  김 센터장과 상담사가 소속된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는 금융소비자운동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희망살림'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채무자 상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센터에서 채무자를 위한 가장 좋은 일은 이들의 부채를 완전 면책받도록 해주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아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센터를 통하더라도 빚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비율이 80~90%이기 때문에 상담센터의 역할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 그렇기에 채무자의 고민을 최대한 들어주고 상담사끼리 방법도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센터장은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가 성과나 실적 위주 중심이 아니라, 채무자 상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상담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담사가 겪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정책, 자영업자에 대한 부분 미흡해 아쉬워

문재인 정부의 가계부채 정책과 관련, 취약차주를 분류해 맞춤형 대책을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했다. 다만 자영업자의 부채문제 대책은 아쉽다는 평가다. 

김 센터장은 "자영업자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실 수령액은 100만원에서 200만원도 채 가져가지 못한다"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단한 뒤 자영업자로 전락했다는 사실 자체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지만 사업이 풀리지 않자 불법사채까지 손을 대면서 회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고 안타까워했다.

또 일자리 정책에 좀 더 집중해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주장이다.

딸 둘을 키우느라 경력 단절 경험이 있기도 한 김 센터장은 "금융회사가 단순히 자영업자들에게  대출해준 뒤 회수에만 열을 올리는 방식 대신,  운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컨설팅해줄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는 자영업자에게 대출만 해줄게 아니라, 운영 컨설팅도 해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김미선 센터장.사진=이코노리뷰 박재성 기자

채무자에게 좀 더 다가가는 사회적 인식 필요

우리 사회가 채무자들에 인식을 바꿔야한다는 지적도 있지 않았다. 

그는 "사실 이 일을 해본 사람이면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채무자들은 굉장히 오랜기간 동안 삶을 유린당했어요. 은행에 대출받은 돈을 갚기 위해 또다시 대출받고, 사실상 노예 상태인 사람이 많습니다"

이어 사법부도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금융상담센터의 역할도 확대되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센터에서 직접 협상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프랑스는 중앙은행 산하에서 과다 채무자에 대한 채무조정위원회가 있어 민간에서 채무조정을 할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성남시금융상담센터가 만들어지는데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관심이 기폭제가 됐다. 금융상담센터는 지난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자,  지방정부에서 우선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2013년 서울시금융복지센터가 가장 먼저 설립됐고, 이 시장도 여러차례 제안 끝에 2015년 설치했다.

특히 이 시장은 정책을 정치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특히 채무 약자들에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해 성남시가 강력하게 추진했다.  서울시가 금융상담센터는 먼저 생겼지만 특화 지원해 운영하는데서는 성남시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 시장은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상담센터의 재량권을 인정해주고 성남시가 운영에 필요한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