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최근에 일어난 성북동 네 모녀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자의 첫 물음이었다. 서민금융과 채무조정 기관의 수장으로서 그가 비극적인 이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했다.
앞서 성북동에서는 네 모녀가 빚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일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이들은 무연고 장례를 치렀다. 이날은 또 인천에서는 일가족 4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기자의 질문에 주저 없이 "그건 우리 잘못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가 말한 '우리'는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다. 그는 서금원과 신복위의 수장을 겸임하고 있다. 한쪽은 저신용자의 대출을 돕고 다른 한쪽은 연체한 채무자의 빚을 조정한다.
서민금융제도와 빚 조정 제도를 알았다면 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이 원장은 "우리가 빚 조정제도와 서민 지원제도를 제대로 알렸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쩌면 그들이 신복위나 통합센터를 찾았지도 모른다''며'' 그렇다면 더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이런 서민 지원 제도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 매번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였을까?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그를 찾았을 때 이 원장은 부천 서민금융통합센터의 상담 현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상담에 앞서 민원인들에게 "통합센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가"라고 재차 물었다. 그에겐 민원인이 어떤 경로로 센터를 찾아왔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였다.
이 원장은 “민원인이 기관의 홍보로 센터를 찾는 경우는 아직도 매우 드문 일”이라며 “지인 소개로 통합센터를 찾아왔다고 말하면 제도를 알리는 일이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계문 원장은 ROTC출신이다. 제대와 동시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행정고시의 길로 들어섰다. 동국대를 졸업한 그는 엘리트들만 간다는 기재부에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기획재정부 국방 예산과장과 문화예술 예산과장을 거치면서 기재부 대변인과 정책기획관을 지냈다. 재경부 재직 당시 현장 중심의 예산지원을 원칙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 그의 변하지 않는 업무 철칙이다.
이 때문에 이 원장은 취임 이후 쉬지 않고 전국 28곳의 서민금통합센터를 찾았다.직접 다니면서 지역의 통합센터도 알리고 서민금융과 채무조정 제도를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빚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서민의 극단적 선택 이면에는 빚을 지면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창피해서 숨는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도움을 받기 어려워진다"며 "돈이나 빚 때문에 힘든 일이 있으면 ‘제발’ 통합센터를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는 서민의 자금지원, 채무조정, 취업연계 등을 한 곳에서 서비스 할 수 있는 창구다. 이 가운데 신용회복위원회는 빚을 조정하는 법정기구다.
이 원장이 현장 점검을 통해 빚 조정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생활고나 빚 때문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면 그의 이런 바람은 더 커진다.
◆ 복지 사각지대, 원인 알지만 해법 못 찾아...‘서민 지원기관끼리 네트워크 필요’
일각에서는 서금원의 원장이 신복위 위원장을 겸직하는 것을 두고 "한쪽에서 대출해주고 다른 한쪽에서 빚을 조정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일응 타당한 지적"이라면서도 "통합의 필요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 원장은 "더 이상 대출을 받지 말고 빚을 조정해야 할 사람이 길을 잘못 찾아 대출을 받는 것도 문제이고, 서민 대출로 개선될 사람에게 채무조정의 길을 안내하는 것도 문제"라며 "현재 서금원과 신복위의 통합센터가 하는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서민 금융소비자가 이곳 저곳 다니면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통합적 지원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통합센터를 찾아 빚 문제를 해결한다 해서 복지 사각지대로 생기는 비극을 미연에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원장은 누구보다 이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복지의 사각지대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제 각각 일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공간''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그는 "각 지역의 서민을 지원하는 기관이 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민이 어느 한 곳에 가서 상담을 하더라도 기관간 협의체로 네트워크가 되어 있다면 사각지대를 좁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가 말하는 기관 간 협업체는 ‘지역협의체’를 의미한다. 지역협의체는 지역에서 서민을 지원하는 기관을 한자리에 모아 서민에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다. 이곳에는 법률구조공단, 자활센터, 지역 금융기관, 복지부 산하 기관, 지자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들어, 권고사직으로 대출금이 연체될 위기에 있고 집도 쫓겨날 위기에 있는 한 가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통합지원센터를 찾아 빚 탕감만 해서는 회생이 되질 않는다. 주거, 빚탕감, 일자리, 건강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통합센터에서는 이런 서민을 위해 사전에 채무조정도 하고 고용복지플러스센터와 협업해서 실업급여는 물론 취업지원도 받게 한다.
자영업자의 경우 서금원이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 협의체 등과 연계해 사업컨설팅을 지원하는 것도 이 원장의 구상 중 하나다. 때로는 자살예방에 필요한 심리상담까지.
이 원장은 "지역협의체는 단순히 각 기관의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이벤트가 아니"라며 "일단 기관장들이 한 곳에 보여 인식을 공유하면 이후 실무자간 협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산화와 시스템의 공유가 중요 연결고리가 된다고 봤다. 이 원장은 “임기가 다하더라도 협의체 간 전산화가 이뤄지면 지역협의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해진다”고 부연했다. 통합센터가 현재까지 구축한 지역협의체는 모두 36곳. 이 원장은 이 가운데 28곳의 현장에서 협의체 네트워크를 끈끈하게 묶었다.
◆ 신복위 실적 경제지표와 무관..."신복위 위축 될 일 없다. 채무조정 실적 더 늘릴 것"
한때 신복위의 늘어난 실적이 악화된 경제지표로 해석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복위는 당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일로 곤욕을 치렀다.
이 원장은 신복위 빚 조정은 '경기 후행지표'일 뿐 이 같은 해석에 '신복위의 위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전체 금융채무자의 약 1900만명의 10%인 190만명이 3개월 이상 연체 속에서 추심과 압류의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채무조정 문을 넓혀 주지 않으면 숨어서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오히려 신복위가 지금보다 채무조정 실적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이 원장은 "신복위에서 빚을 조정하는 서민 금융소비자들은 연체발생 시점부터 평균 3개월이 지나야 오게 된다"며 "신복위에서 채무조정을 받는 채무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현재 경기동행지표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3년간 신복위를 찾은 채무자는 연간 평균 10만6000명이다. 연체 채무자 190만명의 5.5% 수준.
그는 되려 “서민금융 신청실적과 빚 조정 실적이 늘어난 것은 제도의 홍보 못지않게 상담 시스템을 개선한 탓”이라고 강변했다.
최근 서금원과 신복위는 ‘종이 없는 신청서’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상담시간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뭘 쓰다보면 시간이 다 간다. 행정의 비효율성이다. 비대면 온라인 상담시스템은 그 자체로 서민 고객에게 편리함을 주고 상담시간을 더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상담예약대기 시간은 지난해 평균 2주에서 올해 8.8일로 3일이 줄었다. 자연히 빚 상담에 할애하는 시간도 늘었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방문자 수도 급증했다. 올 상반기 방문자는 전년 동기 대비 24.1% 늘어난 20만7000명에 달했다. 대출 연계실적도 지난 3분기까지 3만3979명에게 3941억원을 지원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 "신복위, 채무조정 아닌 신용회복 시키는 곳 돼야“ ... "신용상담사 활동 시장 만들겠다"
그는 190만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채무조정 서비스업에 대해서도 신복위의 역활론이 강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신복위를 선진적 체제로 변모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이 원장은 “빚을 회수하려는 시스템으로는 원활한 채무조정이 될 수 없다. 채권자도 힘들고 채무자도 힘들다''며''채무자에게 살 방안을 주면서 빚을 갚도록 해야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이 원장은 “여기에는 미국의 NFCC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을 나타냈다.
1951년에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상담기구 NFCC(The National Foundation for Credit Counseling)는 채무조정과 함께 지속적으로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는 교육과 관리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 재미동포 신용회복지원 현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NFCC본사를 찾아 여러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 원장에게 NFCC는 향후 도입될 ‘채무조정 서비스업’의 롤모델인 셈이다.
이 원장은 “신용회복위원회의 본래 기능은 채무조정이 아니라 신용회복에 있다. 채무조정만 하고 끝이 아닌 금융활동이 가능한 구조로 신복위를 개선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실은 이 원장 말에 가깝다. ‘신용회복위원회’라는 기관 명칭에도 불구하고 신복위는 채무조정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다. 빚을 조정한 후 빚을 안 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구상이다.
이 원장은 이를 개선할 구체적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신용상담사를 적극 활용하고 시민단체와 소통을 확대해 금융소외 지역에 ‘신용회복 사업화’를 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그는 “병이 생기면 치료를 하고 끝나지 않는다. 약을 처방해 주고 질병을 관리한다”며 “정부의 채무조정 서비스업 도입과 더불어 채무조정 후 채무자의 신용회복을 위한 관리체계에 신용상담사가 활동할 수 있도록 시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실행 의지를 밝혔다. 또 이 원장은 "과거 재경부도 있었고 다른 부처들도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보람 있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면서 “임기 내에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하는 것과 같이 서민들이 빚 고통을 받으면 무조건 통합센터 1397번을 떠올리게 하겠다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