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안평 중고차 시장 전경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경기가 어렵다. 살얼음판이다. 산업생산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소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 물가는 계속 치솟는다.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질병부터 최순실 사태, 국제유가 상승, 트럼프 리스크까지 온통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리는 뉴스들만 가득하다. 자동차를 구매하려다 ‘중고차나 사야지’라고 생각을 바꿀 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방향성을 좌우하는 가장 큰 포인트는 가격이다. 훌륭한 재화도 가격이 비싸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금액이 저렴하다면 고객에게 어느 정도 만족도를 선사할 수 있다. 바야흐로 ‘가성비’의 시대다.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재화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상 ‘필수재’로 분류되고 있다.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경차·소형차부터 대형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미니밴, 트럭, 캠핑카, 이륜차 등. 구매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다.

시야를 조금 더 넓게 가지면 더욱 많은 경우의 수가 보인다. 다른 사람이 타던 차인 ‘중고차’를 구매 리스트에 넣었을 경우다. 집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무조건 새로 지은 집만 찾아다니지는 않는 법.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가장 효율적인 것이 중고차 구매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기술이 발전하며 자동차 수명도 늘었다. 운전자들은 수년 사이 유연하게 차를 바꿔 타는 문화에 익숙해졌다. 리스, 장기 렌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시대다. 우리나라는 매년 180만여대의 신차가 팔려나가는 곳이다. 중고차 시장 거래는 연간 370만여대에 달한다. 약 20조원의 규모를 지녔다.

레드오션이면서 동시에 블루오션이다. 이미 상당히 큰 몸집을 지녔지만 앞으로 ‘뉴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진정한 ‘가성비’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며 소비 패턴이 바뀔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은 허점이 많다. 허위·미끼 매물에 이미 지쳐버린 소비자가 많다. 많은 이들이 ‘투명화’가 절실하다고 외친다. 사기를 당할까 염려스럽다. 매매업자들의 양심과 정부 당국의 확실한 잣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이르다. 온라인 마켓이 우리 일상생활과 가까워지며 개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오픈마켓,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중고차를 사고 파는 일이 더욱 익숙해질 전망이다. 고객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빠르게 제공되고 있다. 몇몇 혁신가들은 이 시장에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소비자들도 트렌드의 변화를 인지해야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의 현주소를 짚고 미래를 예측해본다. 중고차를 사고파는 ‘노하우’를 배운다면 현명한 고객이 될 수 있다. ‘남의 차’를 탐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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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씨는 3년 차 직장인이다. 최근 ‘생애 첫 차’ 구매를 마음먹고 중고차 사이트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사고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점에 마음이 끌려서다. A 씨는 한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차량을 발견, 반차를 내고 직접 매매단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방금 차가 나갔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판매원은 좋은 차가 많다며 그를 단지 안쪽으로 유도했다. A 씨는 “말로만 듣던 허위·미끼 매물에 속으니 화가 나고 많이 허탈하다”며 “차라리 돈을 더 투자해 신차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 B 씨는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다. 최근 10년 넘게 타던 자동차를 팔고 새 제품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특정 모델을 점찍어둔 상태. B 씨는 중고차 사이트를 통해 출고된 지 1년여가 지난 차량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주행 거리가 2000㎞밖에 안 된 좋은 매물이 신차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B 씨는 “발품을 팔면 좋은 차를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중고차 시장의 장점”이라며 “앞으로도 조건이 맞는다면 중고차 거래를 계속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자동차 선진국 대한민국

A 씨가 경험이 없어서일까? B 씨가 운이 좋아서일까?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자동차가 처음 출시되면 브랜드는 해당 신차에 가격을 매긴다. 출고가격이 동일한 상태에서 소비자들은 옵션 등을 추가해 제품을 구매한다. 쉽고 편리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투명하다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은 다르다. 다른 사람이 타던 차다. 가격을 책정하는 데 굉장히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하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얼마나 많이 탔는지, 얼마나 정비를 깔끔하게 했는지 등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계산된다. 그 어느 시장보다 투명성이 절실한 곳이다.

대한민국은 자동차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신차 판매 글로벌 5위에 빛나는 현대차그룹의 힘이 상당하다. 생산량 기준 한국은 글로벌 5~6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큰 시장이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000만대를 넘어섰다. 아시아에서 4번째, 세계에서 15번째로 이뤄낸 성과다.

 

이에 발맞춰 중고차 시장도 외형 성장을 거듭했다. 국토부 집계 기준 한국 중고차 시장 규모는 2009년 196만대 수준이었다. 이후 2012년 328만대, 2013년 330만대, 2015년 366만대 등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신차 시장(약 180만대)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봐도 20조~30조원에 이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차 시장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중고차 거래량·거래금액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인구, 신차 시장, 도로 상황 등을 감안했을 때 한국 중고차 시장은 이미 외형적 성장을 충분히 마친 상태로 판단된다고”고 언급했다.

“내실이 빈약하다”

문제는 내실이다. 몸집은 큰데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것은 시장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중고차 매매상가에서 사기를 당하고 오는 사람이 많았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격에 대한 투명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하나,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2011~2015년 5년간 접수된 중고차 매매 관련 피해 구제 신청건수는 2228건에 이른다. 특히 이들 중 인천광역시의 신청건수가 450건으로 전체의 20.2%에 이르렀다.

소비자 피해 사례 분석 결과 성능·상태 점검내용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지역 구제 현황을 두고 봤을 때 이 같은 경우는 총 305건으로 전체의 67.8%를 차지했다. 특히 성능 불량이 144건(32%)으로 가장 많았고 사고정보 고지 미흡(82건, 18.2%), 주행거리 상이(36건, 8%), 침수차량 미고지(22건, 4.9%) 등 사례도 있었다.

특히 이들 450건 접수 중 소비자원의 합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된 경우는 161건(3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책임을 전가하거나 근거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들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떠넘겼다. 국토부는 2011~2015년 중고차 불법매매 범죄를 총 902건 적발하기도 했다.

칼 빼든 정부, 가능성 열릴까

결국 정부는 지난 2016년 ‘중고자동차 시장 선진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규모만 커진 시장의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국토부는 이를 위한 제도 개선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고차 거래 시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시장의 육성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게 국토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중고차 정보제공을 통한 소비자 피해방지를 위해 중고차 평균 시세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자동차이력관리 정보 제공항목에 대포차, 튜닝 여부, 영업용 사용이력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자동차 매매업자가 판매 목적으로 보유한 차량에 대해서는 매매업자의 동의 없이도 정비이력 등 차량의 상세 내역을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동시에 매매업 자질 향상을 위해 매매종사원이 사원증을 발급받으려는 경우 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장기적으로는 전문교육과정 및 자격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 등에 만연한 허위 미끼매물 방지를 위해 행정처분 기준 및 단속도 강화하고 홍보영상 등을 통해 소비자 주의사항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국토부는 또 모바일을 통해 중고차 시세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2016년 12월부터 제공하기 시작했다. 앞서 대국민포털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 데 이어 모바일을 통해서도 정보를 공유, 시장 활성화와 투명화를 위해 손을 뻗은 것이다.

소비자가 중고차 시세를 알지 못해 과도한 가격을 지불하고 중고차를 구매하거나, 낮은 가격의 허위 미끼매물에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구매하고자 하는 차량의 전월 기준 거래가격 정보를 제공, 그간의 비정상적 관행이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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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지금

중고차 시장은 일반 유통시장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제품의 경우 제조사에서 도매, 소매, 소비자로 이어지는 판매 경로를 확보하고 있지만 중고차는 첫 시작점이 소비자다. 즉 고객이 소매업자, 소매업자가 도매업자로 차를 올려 보내고 다시 그 차가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순서를 지닌 것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부작용 등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차량 상태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선진국으로 유명한 미국, 일본 등은 중고차 시장 역시 선진화된 것으로 유명하다. 수십년간 성숙기를 거쳐 안정감을 추구한 덕분이다.

미국의 경우 특정 업체들이 시장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질서를 바로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맥스’라는 대형 회사가 유통 방식 등에 혁신을 거듭하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카팩스’라는 업체가 상세한 차량 이력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투명성을 끌어올린 것도 특징이다.

중고차 구매에 절대적인 강점을 지닌 회사의 출현이 시장 질서를 바로잡은 셈이다. 절대적인 선택지가 있는 까닭에 후발주자 혹은 경쟁자들이 건전한 기업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신차 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 한국보다 어린 나이에 운전이 가능해 중고차 시장이 일찍 활성화됐다는 특징도 있다. 차량 리스 비율도 한국보다 4배가량 많아 상대적으로 중고차 매물로 나오는 차가 많다.

영국 등도 중고차 가격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대적으로 매물 공급이 원활해 유동성이 많다 보니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국민 1인당 차량 보유 대수가 높다 보니 중고차-신차로 이어지는 폭넓은 구매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신차 시장이 과도기에 있는 중국은 중고차 시장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15년 기준 약 810만대의 중고차가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신차 시장(2500만대)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산업 성숙기에 진입한 국가들의 중고차 시장 규모가 신차의 2~3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더욱 폭발적인 상승세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신차가 많이 팔린 이후 5~6년 후라는 교체 사이클이 도래하고 신세대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을 보여주고 있어 가능성이 더욱 큰 상황이다. 중국 정부 역시 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만드는 작업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걸리버인터내셔널’이라는 업체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는 매매단가가 비싸더라도 고품질의 차량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 중고차 시장의 인식을 바꾸는 데 선봉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이 아닌 품질을 최우선에 내세운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를 통해 쌓은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도매·소매업에 진출, 일본 유일의 전국 단위 중고차 판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시장이다. 국내에서 현대·기아차의 신차 판매 비율이 압도적인 것처럼 일본 역시 도요타·닛산·혼다 등 자국 브랜드 판매 비중이 높다. 중고차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신차의 그것과 그 궤를 같이 하기 마련이다. 유통 구조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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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일본 중고차 시장의 가장 큰 특징으로 품질 제일주의를 꼽는다. 한국 고객들은 ‘더 싼 가격’을 찾는 반면 일본 소비자들은 ‘더 좋은 차’를 원한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중고차 시장은 ‘허위 매물이 왜 있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명화돼 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고객들과 판매사원 모두 제품의 품질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한국에서는 고객은 저렴한 차를 원하고 판매사원은 더 많은 값을 받길 원하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중고차 판매·매입의 무게추가 온라인 쪽으로 옮겨가면서 시장이 급성장하고 동시에 안정화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국도 중고차 시장도 현재 이와 같은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