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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경제] ‘잡식주의’ 기자의 5일 완전 채식 체험기

‘채식주의자’는 어딘가에 존재하되 실제로는 본 일이 없는 지극히 ‘사전적인’ 인간형인 줄만 알았다. 외국에서 잠깐 생활할 때였는데,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이럭저럭 일고여덟 명만 한 자리에 모이면 꼭 그중 하나는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음식점에서는 다소 까다로운 손님이었겠지만 실제 그들은 건강강박증 환자이거나 열렬한 동물보호 운동가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지적이고 사려 깊은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한국에도 최근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생겨났지만 이들이 배려받기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으로 보인다. 한식은 채소를 많이 쓴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대 직장인들이 먹는 한식 식단 중 고기가 빠진 것을 찾기는 어렵다. 육류가 들어간 식단은 조리가 간편하면서도 입에 붙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직 한국에서 종교나 민족성,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한 다양한 식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도 이들을 배척하는 이유가 됐다.

채식이 주는 건강상의 이로움이나 동물 살육에 대한 반감보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채식주의자 중에도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의 식생활을 5일간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 남매는 사실 ‘계란이라도 하나 구워놓아야 밥을 먹는다’는 어머니의 핀잔을 들으며 자랐다. 육식을 즐기면서도 가리는 채소는 한둘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 첫날

채식을 시작한 첫날 아침을 회사에서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때우고 점심시간에 동료와 근처 식당을 찾았다.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덮밥, 국밥 같은 간편식 위주의 한식집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뺀 비빔밥을 주문하고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맑은 국과 반찬을 내온 종업원에게 ‘국물을 어떻게 냈느냐’고 물었더니 난처한 표정이다. 주방까지 들어가 확인을 하고 나오더니 멸치나 황태를 넣지 않고 콩나물과 마늘만으로 끓였다고 한다. 동물성 조미료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만으로도 적잖게 안심이 됐다. 반찬 중에 멸치 볶음이나 어묵 조림, 젓갈로 담근 배추김치 등을 제외하니 집어들 것이 없었다. 비빔밥을 남기지 않고 다 비운 다음 간식은 먹지 않았다.

저녁은 집으로 돌아와 간장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삶은 소면에 간장과 마늘,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을 버무려 들기름을 부어주었다. 양파와 상추도 곁들여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을 먹었는데도 금방 허기가 지는 기분이었다.

 

   
 

#도전에 대한 부담 둘째 날

둘째 날은 술 약속이 있는 금요일이었다. 아침은 잡곡밥에 시판 조미김, 젓갈을 넣지 않은 무채 나물, 매실 장아찌를 먹었다. 점심도 같은 메뉴로 도시락을 쌌다. 선택지가 적으니 안전한 메뉴로만 먹으려 했던 것인데 실제로는 지겹고 입맛이 돌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밥을 다 먹고도 허전해서 두유 한 개와 바나나 두 개를 먹었다.

저녁 시간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와의 술자리는 일본식 선술집에서 있었다. 일본식 꼬치구이와 사케가 주력 메뉴인 집이라 꼬치에 꿰어 구워주는 안주만도 수십 가지가 넘었다. 주로 닭고기나 얇게 저민 삼겹살을 다른 재료와 같이 양념해 구워낸 것이었다.

일행들이 오기 전에 도착해 직원을 불렀다. 메뉴에 있는 버섯 구이 샐러드를 크림치즈와 마요네즈를 빼고 조리해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은 곧장 당황해 한다. “사실 제가 채식주의자라서요”라고 했더니 꼬치집 어린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서 묘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른다. 소주와 사케를 먹고 2차로 자리를 옮겼다. 2차 장소에도 평소 좋아하는 고기류 안주들이 많았지만 석류 와인만 나눠 마셨다. 그랬어도 술자리는 즐거웠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피부가 희고 깨끗해졌다고 말한 탓도 있었을 거다.

 

   
 

#히스테리와 친해지기 셋째 날

삼 일째 되는 날은 주말. 보통 주말엔 친구들과 어울려서 푸지게 브런치를 먹거나 짜장면이나 치킨같이 기름진 배달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종일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면서 과자를 먹는 것이 한 주의 피로를 잊는 나름의 ‘의식’이었다.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평소에 즐겨먹던 과자와 초콜릿을 다 뒤집어 깨알같이 쓰인 성분표를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판 과자 중에는 동물성 젤라틴이나 탈지분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팝콘 대신 강냉이를 사고 젤리 대신 말린 망고를 먹었다. ‘먹방’이 트렌드 중 트렌드이다 보니 TV에서는 밤낮으로 삼겹살과 양념통닭이 등장했다. 보는 것만도 고통스러워 짜증이 났다. 계속해서 허기에집중도 안 되고 잠도 얕게 들었다.

저녁에는 한남동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멋쟁이 채식주의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TMI’바를 찾아 머쉬룸버거와 맥주를 시켰다. 튀긴 새송이버섯을 패티로 해 양상추와 식물성 치즈를 곁들인 채식 버거다. 채식을 하는 동안 거의 즐기지 못했던 기름기와 짭짜름한 치즈, 바질 페스토까지 먹었더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잃어버린 포만감 넷째 날

일요일에는 말로만 듣던 도시장터 ‘마르쉐’에 갔다. 한 달에 한번 도심에서 열리는 농부들과의 직거래 장터 마르쉐는 채식주의자들과 유기농 식품 소비자들에게는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느꼈는데 상인들은 날씨가 흐려 보통 때보다는 적은 편이라고 했다. 우유나 버터를 넣지 않은 비건식 재료에 오븐도 사용하지 않은 로푸드 디저트는 한 조각을 남기고 모두 팔려버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마르쉐에서는 꽤 신선한 경험도 했다. 채식 식빵이라고 이름 붙은 빵을 사려고 우유나 버터같은 부산물도 전혀 들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상인이 대뜸 사과를 하는 거다. 풍미를 위해 버터는 조금 넣었다면서. 타인의 채식주의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과 경멸의 대상인 동시에 다른 이에게는 존중하다 못해 지켜줘야 할 성스러운 것인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건과류와 곡식으로만 만든 간식과 빵, 식재료가 많아 생각보다는 두 손 무겁게 골라 나왔다.

점심은 유기농 가게에서 사둔 새롬식품의 ‘우리쌀로 만든 채식자장면’을 끓였다. 콩고기가 들어간 채식자장면은 쌀 면이라 면발이 더 쫄깃한 것 말고는 평소에 먹던 짜장 라면과 다르지 않았다. 그간 먹은 것이 탄수화물 위주인 것 같아 두부를 계란 옷을 입히지 않고 부쳐서 같이 먹었다. 허기라고 느꼈던 기분에 좀 익숙해졌다. 어쩌면 과거에 포만감이라고 여겼던 것이 고기가 소화되지 않아서 생긴 더부룩함이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체중은 줄지 않았지만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콩고기의 등장 다섯째 날

그간 혈관 건강을 위해서 오메가3를 장복해 왔는데 체험 기간 동안은 생선 지방에서 추출한 오메가3는 물론 식물성 보조제도 먹지 않았다. 어류나 돼지 지방으로 만든 젤라틴 캡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화장품도 벌꿀이나 스쿠알렌, 우유 등 묵직한 동물 성분을 제하고 액체 형태의 비타민 세럼만 발랐더니 살짝 건조했지만 피부톤은 더 밝아졌다.

쇼핑몰에서 주문한 콩고기가 배달돼 왔다. 양념된 콩불고기와 일명 ‘콩고기 돈까스’ 베지 커틀렛, 그리고 육포를 대용한 베지 맛포를 주문해 봤다. 과거의 소시지 형태 콩고기 외에도 만두나 육포, 삼겹살 등 일반 정육에 버금가는 다양한 식재료가 구비돼 있어 고르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식감이 꼭 고기와 같지는 않았지만 나름 씹는 맛을 즐길 만은 했다. 어묵이나 유부같기도 하고 아주 연한 쇠고기 같기도 했는데 콩으로 만들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쌈채소와 양념을 곁들여 같이 먹으니 포만감도 있고 육식에 대한 그리움도 다소 해결이 되는 듯 했다.

닷새 동안 꼬박 완전 채식을 했지만 의외로 체중은 줄지 않았다. 다른 채식주의자들 말이 초기에는 몸이 조금 불기도 한다니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데 다만 수면시간이 늘었고 입맛이 다소 예민해졌다. 전과 달리 두유에서 콩 비린내를 맡거나 다른 사람의 옷에 밴 고기 냄새를 역하게 느끼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는 끝나자마자 직화 돼지고기나 생선회를 먹겠다고 별렀는데 막상 막바지가 되니 크게 욕구가 들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사실 시작할 때에는 ‘혼자 고기 안 먹고 버티기’ 정도가 가장 어려운 일일 줄 알았는데 계란이나 우유, 버터 등 부산물도 모두 배제하니 그 엄격함에 스스로 지쳐가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대부분의 시판 음식에 경고등이 켜졌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주위의 시선이나 그로 인한 소외감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완전 채식을 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론이다. 다만 더는 따지고 분석하는 데만 시간을 쏟지 않고 전보다 가볍고 즐거운 채식 생활을 즐겨볼 작정이다.

 

 

 

이윤희 기자  |  stels.lee@econovill.com  |  승인 2016.03.23  1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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