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파버

미국 월가에서는 비관론자를 ‘닥터 둠’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장충동 족발 골목에도 원조가 따로 있듯 금융시장의 이 악명높은 독설가들 중에도 원조가 있다. 1987년의 블랙먼데이부터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2000년 닷컴버블 붕괴,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견한 ‘원조' 닥터 둠은 마크 파버 ‘글룸 붐&둠(Gloom, Boom & Doom) 리포트’ 발행인 겸 투자자문사 마크파버리미티드 대표다. 전날 유럽에서 날아와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파버 박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본지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특유의 유럽 억양 영어로 인터뷰를 속도감 있고도 노련하게 끌어갔다.

월스트리트의 큰 손이지만 그는 1970년대에 아시아로 이주한 후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다. “24살에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학을 공부한 것은 의학보다 짧은 시간 안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서였고 세계 어디를 가던 통용되는 학문인데다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 돈을 벌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효율성과 최적화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삶이 ‘경제’ 그 자체인 경제적 인간형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미국의 투자회사 화이트웰 컴퍼니(White Weld & Company)에 입사했고 1973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1978년 회사가 메릴린치에 합병이 될 때 화이트웰을 나와 정크본드 투자로 유명했던 드렉셀 번햄 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에 합류했다. 드렉셀의 홍콩·싱가포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1990년 회사가 파산하자 독립했다. 왜 아시아에 남았느냐고 물었다.

“아시아 여자를 좋아해서다(웃음). 사실 아시아에서 장기적 시각으로 매우 강한 성장 잠재력을 봤다. 당시 대만, 싱가포르, 한국, 홍콩 그리고 후에 개방된 중국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 IBM은 일본 전체 증시보다 시가총액이 컸다. 그러나. 20년 뒤인 1989년 일본은 글로벌 증시의 시가총액 중 50%를 차지했다.”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호주, 한국, 카자흐스탄, 몽고 등 아시아 지역은 40억 명의 인구를 가진 경제 블록으로 세계 경제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고 부연한 그는 "물론 현재 미국의 주식시장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지만 향후 20년간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증시의 불안정성에 대해 지적하지만 주가변동성은 모든 신흥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통화의 평가절하로 현재의 주식 가격은 적정 수준이라고 본다. 6개월 후를 본다면 미국 시장일지 몰라도 10년을 보고 투자한다면 아시아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시장) 사이클로 봤을 때 유리하다는 말이다.”

원자재가는 2008년 중순부터 약세였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의 경기 둔화로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 달러로 150 달러에 육박했던 국제유가는 2008년말에는 32 달러로 붕괴되다시피 했다. 1년 전까지 100달러까지 올랐다가 절반 정도 다시 떨어졌다.

그는 원자재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공급이 중단되거나 하지 않는 한 대단히 오를 것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평형 유가(equilibrium oil price)’는 40~70 달러 수준일 텐데 이보다 떨어져 수년간 지속된다면 관련업종의 부도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이다.

그는 “원유가가 언제 오를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에 강세장(bull market)은 이제 끝났다. 중국은 상당한 수준의 하락 압력을 받고 있고 유럽도 여전한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부채로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9년 중반 금은 온스당 250달러에서 거래됐다 2011년 9월 때 금은 온스당 무려 1921달러까지 올랐다. 현재 국제 금값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온스당 1100달러 아래로 떨어져 있다. 그는 금, 은, 백금은 원자재라기보다 돈을 대체하는 귀금속이라며 미국 시장에서 주식, 채권, 원자재, 부동산 중 금이 상대적으로 싸다고 주장했다. 특히 금 주식은 2011 이래로 가격이 80% 하락해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저렴한 수준으로 더욱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