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처음 구글에 입사했다. 어떻게 했냐고? job@google.com(웃음)!”

구글의 초기 멤버이자 구글 최초의 해외 비즈니스 파트 임원인 전 아시아퍼시픽 디렉터 데이비드 리, 그는 구글에 입사해 6년 동안 처음으로 해외 광고 서비스를 론칭하고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등에 구글 지사를 세운 구글 글로벌 진출의 지휘관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리(David Lee)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미국 <비즈니스위크> 등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업인 구글을 이끌어온 인물로 꼽히는 그의 현재 본업은 투자다. 구글을 떠난 후에도 그는 실리콘밸리에 남아 XG캐피털을 공동으로 창업하고 벤처 투자자가 됐다. 미국에 진출한 SK텔레콤벤처스 고문도 맡고 있다.

한국계인 그는 한국에서도 ‘케이스타트업(Kstartup)’을 설립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을 지원·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을 이어 사업전략, 마케팅 등 1대 1 멘토링과 초기투자 등의 분야에서 조언을 얻을 수 있게 돕는다. 케이스타트업에는 구글, SK 플래닛 등이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는 “이번 방문도 한국에서 투자할 스타트업들을 물색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6개 기업을 선정해 각각 4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e-커머스”라고 전했다. 한국의 e-커머스 마켓은 경쟁이 심하다는 기자의 말에 “경쟁은 심하지만 한국의 e-커머스 환경은 건강하고 아직 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구글 동료 “나 창업하니 투자해”… 페이스북이 인수, 투자에 눈 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처음 잡은 직장은 투자은행(IB)이었다. 3년쯤 일을 하는데 고객사들 중에 IT 회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서 가고 금융사는 뒤를 따라갈 뿐이라고 느꼈다. 시카고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굉장한 컴퓨터광이었다. 14살에 컴퓨터 잡지에 나왔고 라디오 쇼에 출연해 당시의 기술 트렌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IT 업계로 가기로 했다.

당시 구글은 200명 규모의 작은 검색엔진 회사였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직접 면접을 봤다. 입사를 하고 보니 구글은 정말 ‘이상하고 귀여운 회사’였다. 그는 “제일 좋았던 것은 정말 스마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후에 AOL의 CEO가 된 팀 암스트롱과 현재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나의 동료였는데 에릭 슈미트도 나보다 뒤에 합류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구글에는 관료주의도 사내 정치도 없었다. 창업자들이 만든 이 문화에서는 누구에게나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구글에서 6년 동안 엔지니어링 빼고 대부분의 일들을 해봤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직원을 채용하고 매출을 예상하는 일도 모두 했다. 구글에 접속하는 해외 트래픽은 많았는데 해외 진출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본사의 지원을 받아 광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섰다.

원래는 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보수적인 성격으로 타고난 투자자들이 투자할 기회를 놓칠까봐 두려워한다면, 나는 돈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구글을 떠났을 때 구글의 시니어 엔지니어였던 전 동료가 창업을 한다고 했다. 그는 맥락 검색(Contextual Search)을 위한 알고리듬을 개발했는데 구글이 그 기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글 동료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투자했는데 회사가 1년 안에 페이스북에 인수됐어요. 처음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죠.”

 

한국 창업자에 투자하는 이유

주로 투자하는 업종은 IT, 미디어, 모바일 관련 사업인데 실리콘밸리에서 이들 사업은 레드오션이 됐다.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게 매겨졌다. 그래서 미국 내 LA나 한국, 중국 등에서 기회를 찾고 있었다.

특히 한국 창업자들의 인상이 남달랐다. 그들은 볼 때마다 달라졌다. “한국 사람들이 워낙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한국에 사는 내 친척은 70대인데 카카오톡을 씁니다. 미국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죠. 한국 창업자들은 계속해서 배우고 달라졌어요.”

그래서 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가로막은 언어 장벽, 문화 장벽을 치워주고 싶었다.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 ‘올라웍스’가 있다. 창업자인 카이스트 출신의 류중희를 만났는데 용감한 사람이었고 네트워크에도 열심이었다.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기술도 용기도 실리콘밸리 수준이라고 느꼈다. 올라웍스는 독창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 인텔캐피털 등에서 투자를 받았고 후에 M&A를 통해 인텔에 합병됐다.

구글 코리아를 처음 한국에 론칭했을 때도 깜짝 놀랐다. 이미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의 검색엔진들이 무섭게 경쟁하는 중이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시장에 경쟁이 많아서 더 강한 것 같다”고 한국 산업의 첫 인상을 기억한다. 대기업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전략적이라는 강점이 있다면 한국의 작은 기업들은 ‘정신’이 좋았다. 그들이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투자는 이성적? “그러면 초기 구글도 놓친다”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을 물었다. 그는 대상 사업의 진전 단계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진전이 된 사업의 경우 기록을 검토한다. 하지만 초기 단계의 기업을 볼 때는 사람을 먼저 본다. “창업자가 가진 잠재력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아이디어입니다. 왜냐면 아이디어는 가변적이고 경험상 처음에는 이상한 아이디어도 큰 사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버처럼요.”

비키(Viki)를 창업한 호창성이 처음 자막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데이비드 리는 ‘누가 자막을 좋아할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각국 사용자들이 번역 작업에 참여해 자막을 제공하도록 하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시스템의 비키가 사업화되자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호응했다.

투자는 이성적이어야만 할 것 같지만 첫 느낌(Gut Feeling) 같은 감성적인 요인도 중요하다. 초기의 구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투자를 거절했다. 그는 그것이 야후 알타비스타 등 이미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이성적 판단에서였다고 평가했다.

그가 투자하고 싶은 미래는 ‘콘텐츠의 시대’다.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고용했던 유명 감독을 알게 돼 친해졌고 최근 작은 영화사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좋은 스토리를 찾고 있다. 뜨거운 창업자들의 이야기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