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고층 빌딩에 위치한 오피스, 잘나가는 외국계 IT 기업의 한국 지사라 그런지 사무실 풍경도 달라 보였다. 전면의 커다란 부엌에는 회사 셰프가 분주히 이국적인 음식을 만들어내는 중이고 스포티한 차림의 직원들이 사무실 곳곳에서 노트북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어리둥절한 기자에게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더니 휠체어에 앉은 독일 출신 엔지니어 마크를 소개해준다. 그의 이름은 정세주(33). 그가 창업한 회사는 ‘구글 플레이 건강 카테고리 매출액 1위’, 전 세계 3200만이 사용하는 글로벌 다이어트 앱 개발사 ‘눔(Noom)’이다. 뉴욕 본사에서 날아온 정세주 대표를 여의도에 위치한 눔 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사 좋아하던 여수 촌놈, 뉴욕에서 사업가 되기

 

여수에서 태어나 자란 여수 토박이였다. 의대 진학에 실패한 후 병원장 아버지에게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첫 사업은 헤비메탈 음반을 수입해 파는 일이었는데 장사가 제법 잘됐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누나를 불러 “세주가 무엇을 하려 하든 쉽게 판단하지 말고 밀어주라”고 했다. 2005년 재학 중이던 학교를 자퇴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당시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미국에 가지 않았을 거다”는 그는 모든 것이 운명에 정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뉴욕 생활은 어려웠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공연 사업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라면을 끓이면 면발만 건져먹고 국물을 남겨 다음 끼에 먹을 정도로 배고픈 날들이었다.

그러면 눔의 개발자이자 공동 창업자인 아텀 페타코프(Artem Petacov)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사촌동생이 지인의 결혼식이 있다며 맨해튼에 온다더라고요. 사촌 동창들의 모임에서 페타코프를 처음 만났어요. 프린스턴을 나온 구글 출신 엔지니어였지만 다른 친구들과 달리 거들먹거리지 않고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고 정 대표는 첫 만남을 기억했다. 페타코프도 우크라이나 난민 가정 출신으로, 타국에서 좌충우돌 고생하고 있는 정 대표에게 연민과 가능성을 느꼈다. 이틀 뒤 다시 만나 새벽 4시까지 함께 놀았다. 금방 절친이 됐다.

페타코프와 창업을 하려고 마땅한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창업 당시 인기가 있던 게임이나 온라인 카지노 사업보다는 나이가 먹어서도 싫증이 나지 않는 산업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헬스 케어와 e-에듀케이션 두 가지 업종을 남겨두고 고민했다. 지금의 병원 시스템은 질병 관리이지 엄밀히 말하면 헬스 케어는 아니라고 안타까워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의사 입장에서 만성질환은 발병 전에 이미 차트로 추적 가능할 정도인데 평소의 생활습관을 교정하지 못해 결국 다시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치료가 아닌 예방 차원의 헬스 케어는 가능할까.

당시 미국에서도 헬스 케어 업계는 ‘라이프 피트니스’라는 러닝머신 제조업체가 독점하는 단순한 시장이었다. 2년 동안 프로토 타입 피트니스 장비에 붙이는 센서를 만들었는데 고생하고 돈을 날렸다. 수중에 딱 2000달러 남았을 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2010년 10개월을 준비해 앱을 만들었다. 눔의 초기 모델이었는데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앱 등록번호가 6번째, 6번 앱이 됐다.

 ‘밍글링’이요? 아 저 되게 싫어해요

한국에서 창업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창업은 사실 별 일 아니다. 한국에서 창업이 어려운 것은 바이어 마켓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가 드물다. 한국은 회사를 사는 문화가 없는 나라다. 그는 “일전이전(一錢二錢) 아껴 회사를 키운 한국 회장님들이 스물 몇 살짜리가 키보드 ‘깨작’ 대며 만든 회사에 400억씩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정서가 안 되는 겁니다”고 소리를 높였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돈 싸들고 기업을 사려 찾아드는 시장이다.

하지만 기업가에게 ‘기회의 땅’이기도 한 미국에서 사업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어도 서툴렀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가볍게 섞여 친분을 쌓는 일명 ‘밍글링(Mingling)’ 문화도 불편했고 미국식 끼리끼리 네트워크인 ‘이너써클(Inner circle)’로 인한 스트레스도 컸다.

하지만 그는 “손정의 회장이 영어 잘합니까? 하지만 그가 입을 떼면 모두가 경청합니다. 그는 성공을 증명한 사람입니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유창한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과 성과라는 말이다. “영어 못하면 더듬더듬 말하세요. ‘이 앱은… 2000만… 번 다운로드… 됐다’ 바로 투자받을 수 있습니다.”

▲ 출처=눔 공식 홈페이지

그는 눔이 특허도 많이 얻고 독점적 기술력도 가졌지만 어떤 기술도 베껴 만들 수 없는 기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중시한 것은 시장을 선점하고 이후에는 네트워크 이펙트, 그러니까 바이럴하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정 대표는 “현대는 시장이 계속해서 변해 진화 속도는 빠르기 때문에 기술 회사의 사업가는 너무 늦어도 안되고 반 발짝만 빨라야 한다”고 말한다.

눔의 수익 모델은 ‘원격 의료 모니터링’이라는 B2B 서비스다. 현재 미국에서는 디지털 헬스 케어로 고객-보험사-병원을 연결해 공공 건강을 구현하는 이 ‘반 발짝 빠른’ 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눔은 미국 질병관리국(CDC)와 함께 당뇨 예방 프로그램(DPP, Diabetes Prevention Program)에 최초로 모바일 솔루션으로 인가받아 진행하고 있다.

투자는 부동산과 같다?

공식 학력은 고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비즈니스는 거리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에게 후배들에게 ‘거리에서’ 배운 창업의 팁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투자 유치는 부동산 거래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투자자는 사모펀드 같은 또 다른 곳에서 투자를 유치해온 사람 아니냐”며 그들은 다시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청담동 판교 신도시, 구로 공단 부동산 성격이 다르지 않나”고 하는 그는 투자 유치하고 싶으면 반드시 그 펀드의 성격을 알고 가라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사업가는 서비스나 제품을 잘 만들어야지 투자자만 찾아다니면 사업이 망가집니다”고 한다. 사업가는 사업이 주업이듯 투자자는 투자할 대상을 물색하는 게 일이다. 기본에 충실해 그들이 찾아다니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부동산 사려는 사람이 중개인한테 접대하고 불편 감수하나요?”

정 대표는 특히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막상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 미국까지는 와도 스스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쪽팔리고 싶지 않아서’ 다음을 기약한다고요? 그러면 그 기회는 영영 없어져 버리죠.” 생전에 아버지는 자주 “죽기야 하겄냐”고 하셨다. 실수해도 괜찮다. 아니 누가 실수를 정의하나.

요즘도 한국 창업가들에게서 ‘도와 달라’, ‘멘토가 돼 달라’, ‘투자자 연결해 달라’는 메시지 많이 온다. 소개를 해줘도 준비가 안 됐다고 뒤로 빠져버리곤 했다. 글로벌 사업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한국 속담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계속해서 에너지 넘치게 인터뷰를 끌어가던 그는 좋은 상사는 인생이 멘토이자 커리어 성장을 위한 가이드, 또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하면서 진지해졌다. “저희는 용병을 쓰는 회사가 아닙니다. 용병은 시급 몇백 원만 더 줘도 옮길 것 아니에요?”라고 하는 정 대표는 눔이 유기체와 같이 성장 발전해 모바일 헬스 케어 기술력을 고객사들에게 인정받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