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서울, 서울 브랜드 이야기 | 서울시가 도시브랜드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시민토크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를 지난 2월 27일부터 오는 5월까지 개최합니다. 서울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시민들과 분야별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서울의 핵심 정체성을 도출한다는 취지로 서울의 산 과 강, 수도, 만남, 시장, 노래, 맛, 문화, 거리, 서울 속의 세계 등 10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이 토크 콘서트에 이코노믹 리뷰 기자가 직접 참석해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알고 싶었던 ‘서울 브랜드’의 이야기를 지상중계 합니다.

| 서울 브랜드 만들기 | 서울의 표정은 어떨까.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시는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휘장과 ‘하이서울’, ‘해치’등 다양한 상징물을 써왔는데, 서울의 대표 얼굴이 되느냐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시민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통합 브랜드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79%)이 다수로 나타났다. 이에 시는 시민 주도형 서울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될 <시민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를 기획했다.

서울이야기의 구성은 한 명의 화자가 다수의 청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강연 형식과 달랐다. 시민들과의 대담이 혼합된 형식으로, 40분 동안 전문가 강의 이후 15분 동안 시민 발제가 이어졌다. 나머지 1시간은 전문가와 시민들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형 강의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이 콘서트에서 나눈 시민과의 소통 내용은 추후 서울의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 우리의 서울이야기 제 5화 | 서울, 노래를 이야기하다 : 서울의 서사와 욕망

지난 27일 저녁, 서울시민청 3층 대회의실은 <시민 토크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에 참여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콘서트에는 서울도시브랜드추진위원회 위원 및 관계자들과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한 서울 시민들, ‘서울 얼굴 가꿈단’ 단원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한편, 서울 얼굴 가꿈단은 서울의 브랜드를 만드는 전 과정에 참여해 시민의 목소리를 시에 전달하는 단체로 고등학교 1학년생부터 72세 어른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245명의 시민 단원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아카펠라 그룹 '위드'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제 5회 서울이야기는 아카펠라 그룹 ‘위드’가 경쾌한 아카펠라로 포문을 열었다. 

이번 콘서트에선 대중가요에 담긴 서울의 이미지를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서울살이의 다양한 풍경들을 읽어보는 자리로 꾸려졌다. 강연이 대중가요를 다룬 만큼 시대마다 추억의 노래들이 흘러나와 시민들은 따라 부르거나 생각에 잠기며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대중가요에 담긴 서사를 말해주는 연사로는 이영미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영미 교수는 대중예술평론가이자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다. 서울 동대문 밖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란 서울내기로 한국대중가요와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사회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다. 팟 캐스트 국민TV에서 대중가요와 관련된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요즘 왜 이런 드라마가 뜨는 것인가> 등이 있다.

 

대중가요, 인기 없으면 존재 이유 없다 

현재 서울을 테마로 만들어진 노래는 1140여곡 이며, 제목에 서울을 넣은 노래는 544곡이다. 이중 명동이 들어간 노래가 544곡, 한강이 85곡, 서울역이 70곡, 남산이 40곡 순이다. 가수 나훈아와 이미자는 각각 14곡으로 서울에 대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가수로 선정됐다.

▲ 강연 중인 이영미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사진제공=서울시

이토록 많은 노래에 ‘서울’이 반영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이영미 교수는 “대중가요를 구입해주는 첫 번째 사람들은 대도시 사람, 즉 서울 사람들이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에 감동하는 사람들은 여수 밤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관광지로 삼는 여수 외지의 사람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대중 예술 중 남녀노소불문 하고 가장 친숙한 대중가요, 그 본질의 유무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이 교수는 "두 가지 힘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자본, 다른 하나는 대중의 선택이다"라고 답했다.

이 교수에 의하면 이중 어느 하나도 결여되면 대중적 예술로 존재 할 수 없다. 자본에 의해 생산되더라도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 대중예술로서의 존재감을 갖지 못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는 대중가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사회 심리적 욕구와 욕망에 조응한 결과물 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가요처럼 본인이 태어나서부터 자연스럽게 즐겼던 것은 평생의 취향이 된다. 그렇기에 대중가요는 정치권력의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교수는 국내 대중가요에 대한 정부(혹은 정치권력)의 개입을 긍정적 방식보다 부정적 방식이 두드러졌고 영향력 또한 강했지만 대중가요 전반의 인기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대중가요를 정부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추동하는 쪽보다 검열과 심의로 걸러내는 쪽이 더 많았다" 더불어 이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관영방송(공영방송)부터 시작한 방송의 역사가 있다. 해방 후 경성방송국이 서울방송국으로 바뀐것이 국내 방송국의 시초 인데 이것이 60년대 까지 지속 되다가 50년대 중반 CBS방송이 만들어지며 민간 방송이 시작됐다"며 "이렇게 정부 방송 영향력이 큰 시기에도 이른바 확 뜨는 노래들은 대중이 기꺼이 선택할 만큼 당대 대중들의 사회 심리적 욕망에 부응 하는 노래들 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현인의 '럭키서울'(1949년),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1966년),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1988년)을 들 수 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정부의 추동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지만 당대 대중의 욕망에 조응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대중가요가 담고 있는 당시대 대중의 욕망에는 그 시절의 서사가 담겨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이 교수는 각 시대별 유행했던 노래를 들려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일제강점기~1960년대: ‘럭키 서울’에 담긴 모던 서울 '섬마을 선생님'으로 동경 

일제 강점기에 불린 대중가요 속 서울은 다소 향락적인 '모던 경성'으로 묘사 됐다. 김해송의 '꽃서울'을 보면 당시의 대중이 욕망하던 서울의 분위기를 엿 볼 수 있다.

“수박 냄새 흩날리는 노들강 꽃잎 시든 비단 물결 으스름 임 찾는 고운 눈동자 고운 눈동자 마셔라 마셔 사랑의 카페 (후렴) 오색 꽃 뿌려서 춤추는 꽃서울 꿈속의 파라다이스여 청춘의 불야성(不夜城)...” 김해송 <꽃서울>(1936, 박영호 작사, 고가마사오 작곡)

1930년대부터 만들어진 대중가요 속 화려한 경성의 이미지는 6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 교수는 “당시 서울의 모습은 화려한 서양화된 도시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서울은 뉴욕 동경 파리처럼 돼야 한다는 것과 같은 욕망 이었다”라고 설명했다.

▲ 서울이야기 강연 현장. 사진제공=서울시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대중가요 속 서울은 서양적인 도시 자체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지명이 가장 가시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시기이며, 구체적으로 특정 지역을 연상 시키거나 다소 과장된 서양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노래가 인기를 얻었다.

이 교수는 "이때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서울의 분위기는 모두 남촌이 핵심지역 이었지만, 지방에서 보기에는 다 서울로 인식됐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특히 해방 후 당시 대중은 나라가 후진국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됐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은 대중가요에 투영되며 서울은 희망이 넘치는 이상 사회로 그려졌다. 이는 현인의 '럭키서울'과 이시스터즈의 '서울아가씨'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 현인 앨범 이미지(좌), 이미자 앨범 이미지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는 웃음이 솟네..." 현인 '럭키 서울'(1949,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서울의 아가씨는 멋쟁이 아가씨 서울의 아가씨는 맘 좋고 슬기로워 / 서울의 아가씨는 명랑한 아가씨 남산에 꽃이 피면..." 이시스터즈 '서울의 아가씨'(김남석 작사, 박선길 작곡)

특히 노래 ‘럭키서울’에는 ‘SEOUL’이라는 철자로 노랫말을을 만들어 ‘에스오이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서울...’이라는 가사가 두드러졌다.

이 교수는 “1949년까지 서울의 고유명사는 ‘경성’이었다. 그 당시 대중은 해방된 서울로서 자주 독립 국가를 넘어 미국과 같이 잘사는 나라, 서양적인 모습으로 대표되는 현대화 되고 멋있는 서울에 대한 이상향을 갖고 있었다”며 “또 이시스터즈와 같은 중창단의 무대는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를 연상시켰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엔 희망이 넘쳤고, 영어 단어도 넘쳤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결국 서양 선진국의 이미지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6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 대한 동경과 서울에 대한 그리움에 관한 노래가 주를 이뤘다. 이 교수는 “60년대에는 '무작정 상경의 시대'라 불릴 만큼 시골에는 먹고 살게 없어서 남부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속 가사가 대표하듯이 서울을 동경하는데 서울에 가지 못한 마음을 그리는 노래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왔다간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사람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이미자 <섬마을 선생님> 1절 (1966,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 시기 ‘단장의 미아리고개’, ‘전우야 잘자라’ 등 전쟁 속의 서울이 등장하기도 하고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마포종점’처럼 서울 도심에서 좀 벗어난 지역이 등장하기도 한다.

 

 

1970년~80년대: '아파트'를 욕망하지만 '제주도의 푸른밤' 부르며 서울살이 탈피 꿈꿔 

1970년대 산업화를 맞이한 서울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적 삶에 대한 욕망이 주를 이룬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구로와 성수동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노래들은 다뤄지지 않아 ‘민중가요’로 탄생했다. 80년대 이후 대중은 도시 생활의 각박함에 대해 벗어나고자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휴식에 대해 동경하기도 했다.

초창기 대중가요는 서울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을 담고 있는 김정애의 '앵두나무 처녀'와 같은 노래가 나왔던 반면 이촌 향도의 흐름을 타고 사람들은 서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윤수일의 '아파트'와 같은 노래가 유행하며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적 삶에 대한 욕망이 산재했다.

▲ 윤수일 앨범 이미지(좌), 최성원 '제주도의 푸른밤' 앨범 이미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윤수일 <아파트>(1984, 윤수일 작사․작곡)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대중가요는 아파트는 다루되 공장은 다루지 않았고 명동과 종로처럼 번화된 지역은 다루되 구로와 성수동처럼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던 지역은 다루지 않았다.

이에 이 교수는 "당시 대중 가요의 세계는 매우 솔직하게 대중들의 경험과 욕망을 담아 내는 듯 했지만, 정작 산업화된 서울의 그늘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 교수의 지적처럼 서울의 그늘은 대중가요에서 다뤄지기 보다 이른바 '민중가요'에서 공백이 채워졌다. 이는 한돌의 ‘못생긴 얼굴’과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에서 볼 수 있다.

"너네는 큰 집에서 네 명이 살지 우리는 작은 집에 일곱이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너네는 집 많아서 좋겠다..." 한돌 <못생긴 얼굴> (한돌 작사·작곡)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이제는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 마을 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 다른 고향...“ 김민기 <공장의 불빛> (김민기 작사·작곡)

이렇듯 산업화에 따른 도시문제가 불거지자 빈부격차도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대한 욕망 반대편에선 도시 대신 시골에서 소박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이 표출되기 시작됐다.  양희은은 '가난한 마음'에서 "나는 돌아가리라 쓸쓸한 바닷가로 그곳에 작은 집을 짓고 돌담 쌓으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리라"라고 노래했다.

이는 80년대에 들어서며 서울 생활에 대한 권태로 나타났다. 그 권태는 다른 지역으로의 떠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담긴 대중가요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 시기 화려한 도시로서의 서울에 대한 욕망이 조금씩 사라졌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일터와 집을 오가며 텔레비전으로 위안 삼던 사람들은 지쳐갔다"며 "현재도 인기가 많은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밤', 김현철의 '춘천가는길', 양희은의 '한계령'과 같은 노래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90년대~2000년대: 강남은 ‘향락’을 노래하고, 강북은 ‘추억’을 담아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가요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노래하는 거시적 관점에서 서울 내 구체적 지역을 노래하는 미시적 관점을 취했다. 대중가요 노랫말의 주 무대가 과거의 종로, 한강, 무교동에서 명동, 광화문 등으로 옮겨지며 거론되는 지역들이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강남의 개발이 가속화 되면서 강북과 강남은 대중 가요속에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강남은 '향락'의 장소로 강북의 구도심은 '추억의 공간'으로 반영됐다.

이 교수는 "풍요의 시대였던 1980년대 향락의 분위기는 강남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신사동은 전형적인 향락가였는데 이 시기에 유행하던 노래는 유흥에 치중돼 있거나 다소 노는 분위기의 노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 주현미 '신사동 그사람' 앨범 (좌), 이문세 앨범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찾아오세요. 아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문희옥 <사랑의 거리> (1989,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아, 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봐..."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반면, 강북 지역을 노래한 대표적 노래인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1989)를 보면 모두 세월을 따라 변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 대한 향수가 나타난다. 이 교수는 이를 '서울 옛 도심 강북이 갖는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광화문 연가'가 인기를 얻었던 것은 70년대 초충반 학교를 다니던 이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 했기 때문이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에는 학생수가 증폭 했었다. 지금의 베이비부머들이 인문계 고등학교가 모여 있던 북촌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떠올린 것. 지금의 한옥에 대한 향수도 여기서 비롯된 심리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문세 <광화문 연가>(1987, 이영훈 작사․작곡)

90년대 대중가요 속에서 그리움과 추억의 장소로 나타나던 강북은 2000년대 이후 하나의 독립적 이미지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강남은 향락적 측면과 화려함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교수는 "2000년대 이후 대중가요 속 강남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대표 되는 화려함과 유흥적 측면을 담고 있다. 한편 브라운아이즈의 ‘비 오는 압구정’ 압구정동에도 순정적인 사랑과 그리움이 있다. 땅장사로 개발된 도시, 부박하고 영혼 없는 도시,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나 신사동 룸살롱이 아닌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싸이 '강남스타일' 앨범(좌), 서태지 '소격동' 앨범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싸이 <강남 스타일>(2012, 싸이 작사·작곡)

이어 이 교수는 “그에 반해 강북은 강남에 대한 부러움과 소외감이라는 반사적 이미지를 벗어나 강남 못지않은 세련됨을 지니면서도 좀 더 운치 있고 소박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며 달라진 대중가요 속 서울의 모습을 설명했다.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널 떠나는 날 사실 난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 거예요.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서태지 <소격동>(2014, 서태지 작사·작곡)

 

시민이 노래하고 싶은 서울의 모습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 

이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시민들과 함께하는 ‘집중 토크’ 시간이 이어졌다. 이 시간에는 시민들이 전문가와 어우러져 함께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서울 이야기 강연 장면. 사진제공=서울시

진행자 이제이 교수는 “지금 서울의 노래를 만든다면 어느 지역 혹은 풍경을 담았으면 좋겠다 싶은걸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집중토크의 서문을 열었다.

한 시민은 서울시 서소문 청사에 있는 ‘정동 전망대’를 꼽았다. 그는 “고궁과 현대건물이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을에는 기와에 쌓은 낙엽이 아름답고 겨울에는 서울 스케이트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보는것도 즐겁다”라고 말했다.

또 ‘한옥마을’, ‘청계천’, ‘남대문 시장’, ‘서울 둘레길’이 뒤를 이었으며 ‘이웃간의 화목을 다루는 노래’가 나오면 좋겠다는 시민의 의견에서 이웃의 존재가 층간소음 유발이 아닌 화목한 정을 나누는 존재로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서울이야기 1·2회 사회를 봤던 김민웅 교수는 이날 시민 관객으로 참여해 “서울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노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라지는 책들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동의하듯 콘서트에 참석했던 정지영 영화감독은 “ 피맛골이 갖고 있던 정감과 정서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층 빌딩화 되고 도시화 되는 서울 속에서 사람들이 삭막해져 가는데 오히려 옛 지역이 갖고 있던 정감과 정서가 필요한 것 같다. 도시 재생처럼 노래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재생 시키며 사라짐에 대한 슬픔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 질문에 대답하는 정지영 감독. 사진제공=서울시

시민들의 의견을 듣던 이 교수는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다...’하고 바라는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것들이 노래로 만들어 졌을 때 인기를 얻어 대중가요가 된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 노래는 내면의 은밀한 그 무엇을 건드려 줄 때 뜬다. 우리도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심리와 욕망을 딱 잡아서 건드려주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당위나 아이디어를 넘어 밑바닥에 있는 그 무엇을 자극하는 노래가 명작으로 탄생한다”며 설명을 덧 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 살이의 삭막함과 피로함을 담아 대중의 공감을 얻은 노래가 있다. 창작 뮤지컬 <빨래>에서 등장하는 ‘서울살이 몇핸가요’라는 노래다.

이 교수는 “ ‘서울살이 몇핸가요’라는 노래에는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한다. 노부부의 적금 통장 이야기도 동장한다. 고단한 서울살이에도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진정성’ 하나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뮤지컬 빨래의 한 장면

"서울살이 몇핸가요 서울살이 몇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언제 어디서 무슨일 있었는지 마음에 담고 살아가나요. 서울살이 십년 세번째 적금통장 해지. 어디어디 살아보셨나요. 봉천동, 석관동, 미아리, 옥수동 그리고 다니다 깨진건 적금통장 그리고 부부금실. 서울살이 6년 네 번째 직장. 최저임금에 78만원이면 말 다했죠. 생리휴가, 육아휴직 그런것들 없어요. 짤리고 짤리다 늘어난건 술 담배, 변비..." 뮤지컬 '빨래' <서울살이 몇핸가요>

이 교수는 덧 붙여 서울살이의 애환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노래 한곡을 소개했다. 헤라의 ‘가리베가스’ 라는 노래다. 가리베가스는 중국 동포 및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가리봉동에 오면 라스베가스처럼 특별한게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이 교수는 이 노래를 “이주노동자들의 독특한 욕구와 욕망이 맺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리베가스 가리베가스 아름다운 노래 가리베가스. 가리베가스로 오세요 꿈을 찾아 모두 오세요. 가리베가스로 오시면은 희망 노래 꿈이 있어요. 사진속에 웃고있는 가족을 보며 저 태양을 바라 봅니다.어제보다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참고 다시 참고 살아가지요. 가난한 내 청춘아 힘을 내 힘을 내. 언젠간 한바탕 웃으며 씩씩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자...” 헤라 <가리베가스>

이 교수는 끝으로 “자랑질 하지 말자” 라고 말했다. 이유인 즉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고 억지로 인위적인 것을 만들며 도시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의하면 우리의 욕망과 정부의 요구가 만났을 때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더불어 “지금 시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서울을 만들고 싶은지가 중요한 것이지, 억지로 그것을 만들어 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서울에 관한 노래를 의뢰해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억지로 서울에 대한 희망과 꿈을 만드는 노래에 대중은 호응하지 않는다”라며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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