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서울, 서울 브랜드 이야기 | 서울시가 도시브랜드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시민토크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를 지난 2월 27일부터 오는 5월까지 개최합니다. 서울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시민들과 분야별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서울의 핵심 정체성을 도출한다는 취지로 서울의 산 과 강, 수도, 만남, 시장, 노래, 맛, 문화, 거리, 서울 속의 세계 등 10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이 토크 콘서트에 이코노믹 리뷰 기자가 직접 참석해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알고 싶었던 '서울 브랜드'의 이야기를 지상중계 합니다.

 

| 서울 브랜드 만들기 | 서울의 표정은 어떨까.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시는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휘장과 ‘하이서울’, ‘해치’등 다양한 상징물을 써왔는데, 서울의 대표 얼굴이 되느냐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시민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통합 브랜드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79%)이 다수로 나타났다. 이에 시는 시민 주도형 서울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될 <시민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를 기획했다.

서울이야기의 구성은 한 명의 화자가 다수의 청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강연 형식과 달랐다. 시민들과의 대담이 혼합된 형식으로, 40분 동안 전문가 강의 이후 15분 동안 시민 발제가 이어졌다. 나머지 1시간은 전문가와 시민들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형 강의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이 콘서트에서 나눈 시민과의 소통 내용은 추후 서울의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 우리의 서울이야기 제 3화 | 서울, 만남을 이야기하다 : 도시공간의 공공성

지난 13일 저녁, 서울시민청 지하2층 태평홀에는 <시민 토크콘서트, 우리의 서울이야기>에 참여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3회째 진행되고 있는 콘서트에는 서울의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알고자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불금’의 열기가 느껴졌다. 이 콘서트에는 서울도시브랜드추진위원회 위원 및 관계자들과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한 서울 시민들, ‘서울 얼굴 가꿈단’ 단원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한편, 서울 얼굴 가꿈단은 서울의 브랜드를 만드는 전 과정에 참여해 시민의 목소리를 시에 전달하는 단체로 고등학교 1학년생부터 72세 어른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245명의 시민 단원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지난 13일 서울이야기 시민 콘서트 현장. 사진=서울시.

도시가 성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공간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 공원, 카페 같은 곳이다. 이런 장소를 가리켜 ‘도시의 공공공간’이라 부른다. 제 3회 서울이야기에서는 도시 공간의 공공성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의 미래상을 그려봤습니다. 이 시간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과 연결 지어 우리의 서울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이제이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의 능숙한 진행으로 서울 이야기의 본 강연이 시작됐다.

이번 이야기는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정윤수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정윤수 교수는 문화비평, 인문예술, 축구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기획하고 글을 쓰는 전방위적 문화평론가 이다. <인공 낙원>이란 책을 통해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등 도시의 공간과 도시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으며 저서로 <클래식, 시대를 듣다>,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공장> 등이 있다.

▲ 강연을 진행하는 정윤수 교수. 사진=서울시.

정윤수 교수는 도시의 공공공간 중 ‘광장’과 ‘공간 조성’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는 “우리는 인공낙원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인공낙원은 무엇일까. 정 교수에 따르면 인공낙원은 현대 도시 공간을 이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의 장소다. 도심 속 광장·극장·모델하우스·모텔·카지노·백화점·테마파크·경기장·박물관·공항·기차역 등을 포함한다.

정 교수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쇼핑몰에 들어가 쇼핑한 뒤 우리는 또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다른 건물로 이동한다”며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로부터 일탈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조물에서 살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공간들을 직접 취재하고 여러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라며 정조교양학을 연구하는 다소 낯선 학문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강연의 서문을 열었다.  

 

서울은 ‘구경거리’의 도시인가 ’삶과 기억과 문화‘의 도시 인가?

도시는 어떤 공공공간을 추구해야 할까. 정 교수는 “단순히 보기 좋은 구경거리로 만들기 보다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 기억이 공존하는 우리 삶의 터전으로 여겨야 한다”고 답했다.

정 교수는 도시를 우리 삶의 터전과 공간으로 여기기보다는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예전의 서울은) 자랑할 거리가 크게 없었다. 그래서 길을 뻥 뚫고 촌락구조를 벗어나 63빌딩과 같은 현대적 건축물을 새웠다. 놀 거리의 부재로 테마파크나 공원도 들어섰고 88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유치하며 방한 관광객이 오기 시작하니 급격하게 구경거리로서의 도시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서로의 삶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해 공공의 공간에 오는 것인데, 이웃나라에 자랑 혹은 비교하기 위한 도시전체를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 붙였다.

 

▲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왼쪽), 시인 정지용 동상. 사진= 정윤수 교수 제공.

그렇다면 구경거리의 도시에서 벗어나 삶과 기억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공간은 어떤 요소가 스며들어야 하는 걸까. 정 교수는 위인을 기리는 기념비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저작 <죄와 벌>로 유명한 러시아 대표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을 보면 우리가 이 소설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그 소설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동상들은 그 인물의 위대함과 개성과는 무관하게 돌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비슷한 모습만 보여준다”며 “왜 이작가를 기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엿 볼 수 없는 동상을 보면, ‘이 위인은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야!’라는 구경거리로서, 자랑거리로서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  김원일 문학비(왼쪽), 김현 문학비. 사진= 정윤수 교수 제공

이어 정 교수는 “경남 진해에 있는 김원일 선생의 문학비를 보면 그가 살았던 가난, 전쟁, 분단이 느껴진다. 또 문학평론가 김현의 문학비는 평생을 원고지와 싸웠던 그의 삶이 피부에 와닿는다"며 기념비만 봐도 해당 인물의 지난 이야기가 느껴지듯이, 공간에도 그 공간의 지난 이야기와 기억이 느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과거의 역사가 보존되며 현재 삶과 어울어진 대표적 공간으로 서울의 ‘선유도 공원’을 꼽았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선유도는 육지에 이어진 해발 40m가량의 언덕이었다. ‘신선이 노닐던 언덕’이라는 의미로 선유봉이라 불리며 뱃놀이 하기 좋은 아름다운 공간 이었다. 그러나 선유봉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강 정비와 도로 건설을 위해 채석장으로 이용되어, 봉우리가 깎여 나가 한강 위에 떠 있는 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 선유도 공원 내 '시간의 정원' 사진=한국관광공사.

그 후 1970년대에는 정수 공장으로 쓰였다. 2000년 정수장이 폐쇄된 후 선유도는 ‘물’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설계로 옛 정수 공장의 흔적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우리나라의 산이나 들에 자라는 자생식물 200여 종이 둥지를 틀었다.

녹색 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등의 구조물에서 옛 정수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음미할 수 있는 선유도공원은 2011년 전문가들 뽑은 ‘한국의 대표 건축’ 1위에 선정됐고, 세계조경가협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조경 작품상'을 수상할 정도로 예술미가 도드라진다.

해외의 도시는 어떻게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기억할까. 정교수는 가장 먼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설명했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의 역사와 문화가 집중되는 세레모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제로 세계의 근대화를 견인했음을 보여줬다.

▲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중 '굴뚝 퍼포먼스' 장면. 사진= 정윤수 교수 제공.

정 교수는 런던 올림픽 세레모니 중 ‘굴뚝 퍼포먼스’에 주목했다. 19세기 중후반에는 어린이 노동이 굉장히 심했다. 당시 런던에는 벽돌을 주재료로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땔나무 대신에 석탄을 쓰는 가구가 크게 늘어났다. 

석탄 연기는 굴뚝 내부가 좁아야 잘 빠져나간다. 좁은 굴뚝 내부를 청소할 수 있는건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뿐 이었다. 10~13살되는 어린 아이들을 밧줄로 묶어서 내려 보내면 아이들은 그 안에서 굴뚝을 청소했다.

여린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공기가 통하지 않아 질식하거나 옷가지가 엉켜 목이 조이기도 했다. 개막식을 연출한 데니 보일 감독은 올림픽 세레모니에서 아이들의 굴둑청소를 묘사했다. 정 교수는 이를 설명하며 “영국은 올림픽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 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 정윤수 교수 제공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해 2005년 완공된 이곳은 히틀러 나치즘의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한 처절한 속죄의 공간이다.

히틀러의 야만적 행위를 어떤 특정 시기의 폭력적인 권력의 야만으로 축소시키지 않고 ‘독일이 저지른 대량 학살’이라는 점을 충분히 떠올리게 한다. 전범 국가라는 부끄러운 과거조차 역사이기에 기억하고 도심의 공공공간 한복판에 구현한 것이다.

정 교수는 “우리가 21세기 글로벌 메가 시티 위에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다”며 “삽을 가지고 도로에 나가서 조금만 파면 50년전에 서울이있다. 그 밑에는 100년전의 서울이, 더 파면 왕조시대의 서울이 있다. 우리는 무려 600년 역사를 지나 21세기 초엽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현 시대에 오기까지 어떤 역사적 이야기들을 거쳐 왔는지 기억하며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도시의 공공공간은 과거의 기억과 시민들의 삶이 공존해야 함을 역설했다.

 

도시의 대표적 공공공간 '광장', 서울 광화문 광장은 어떠한가?

도시의 대표적 공공공간은 ‘광장’이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역시 서울의 대표적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작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라고 묘사 됐다. <광장>을 연구한 프랑코 만쿠조란 학자는 ‘만남, 의견 교환, 산책, 휴식’이 바로 광장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 지난 13일 서울이야기 시민 콘서트 현장. 사진=서울시.

정윤수 교수는 광장을 “공감과 연대가 넘치는 사랑이 허용되는 공간”으로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아가페적인 사랑, 인류를 위한 사랑이 아니다.

외국 광장의 풍경이 그러하듯 젊은 연인들이 주고받는 육체적 친밀감이 허용되는 조금은 발칙한 사랑의 공간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연인들의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광장이라면 나머지는 다 허용 된다”며 “누워 자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집회하는 사람 그리고 기 집회에 반대하는 사람 등 사랑이 이루어져야 광장의 기능이 회복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아고라는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되 그 주변으로 사원, 가게, 공공시설, 사교장 등이 자연스럽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널찍하게 비어있지만 사람들의 삶에 의하여 보이지 않게 채워지는 공간, 그곳이 광장이었다.

더불어 광장은 인류의 모든 활동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공간이었다. 장터이자 문화마당이고 예술이 구현되는 공간이자 더 많은 자유를 향한 열정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특히 근대 사회 이후 광장은 권력의 의지가 무지막지하게 발현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유의 열망이 만나는 삶의 공공공간이 됐다.

▲ 현재의 광화문광장 전경(왼쪽), 과거의 광화문 광장 일대. 사진=정윤수 교수 제공.

그렇다면 서울의 대표적 공공공간인 ‘광화문 광장’은 정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제시한 광장의 모습과 닮아있을까. 정 교수는 “아쉬운 구경거리의 광장이 돼서 아쉽다”라는 말로 소신을 밝혔다.

그는 “현재 광화문 광장은 중앙 집중형 이다. 산업화 과정 속에서 없던 공간들을 조성했기 때문에 교통과 관에서 하는 행사 중심으로 구현 됐다”며 “600년 서울의 역사는 어디있나. 차를 피하고, 신호등을 기다리는게 광장이 아니라 앉아서 책도 읽고 모여서 이야기도 하는 광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광화문에는 구경거리만 나열해 놓았다”며 덧붙여 설명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광화문 광장이 조성될 때 서울시가 내세운 ‘역사성 회복’이라는 당위는 널찍한 광장 곳곳에 역사 상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제시됐다. 기존의 이순신장군 동상에 더하여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되고 역사문화와 관련된 전시관이 들어서는가 하면 해치마당, 역사 물길, 해치상 원형 등이 나열됐다.

기존의 16차선 차로 가운데 6개 차로를 걷어내고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광화문 광장에는 ‘역사성의 회복’을 위하여 동원된 이미지와 설치된 조형물로 1970년대의 국가주도형 공간 구성에 약간의 화장을 더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 됐다.

이곳에서도 ‘사랑’이 가능할까. 일상의 자연스런 흐름을 따라 광장으로 산책을 나가고 그곳에 마음이 헛헛한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하여 자연스레 대화가 교류가 이뤄지고, 나아가 현대 문명의 압도적인 스케일 아래에서도 미약한 마음들이 서로 어울려 사랑을 이루는, 그런 풍경이 가능할까.

정교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에 의하면 광화문 광장은 시속 60Km 이상의 차들이 달리는 거대한 차로 한복판에 위치해 그 안에는 거대한 동상 두 개(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동상)가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동상이 갑자기 북악산과 경복궁과 광화문을 가로막고 있어 시야를 가린다.

게다가 차량 소음과 쉬지 않고 흘러 넘치는 분수 물줄기를 피해도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수십년의 근대화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거대한 건물들이 압도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공간 보다 한 발짝 떨어져 구경하기 좋은 관상용 광장에 가깝다.

▲ 뉴욕시 브루클린에 위치한 애틀랜틱 야드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광고. 기존에 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4,500가구의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고, 기업의 입주로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나며, 주민들의 쉼터가 늘어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젠트리피이션이 진행되면 지역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쫓겨나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던 부유한 사람들이 옮겨 오게 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정 교수는 이어 “구경거리로서의 광화문 광장이 된 원인을 정치적 문제나 행정적 문제로만 귀결 시킬 수는 없다. 사실 우리도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그럴싸한’ 광장을 원했던건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언급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만는 용어로 상류계급을 의미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됐다.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생긴 용어다.

정 교수는 “우리의 중산층적 욕망이 젠트리피케이션화 되며 역사적 의미가 지워진 공간에 대한 의문을 지웠다. 광장에 대한 역사적 고민과 성찰 없이 마치 인공적 분수와 설계된 녹지가 있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처럼 보기 좋은 광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 구경거리로서의 광장에 동의하고 훌륭하다고 판단하고는 한다”며 광장의 진정한 존재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가짜 낭만'과 '가짜 기억'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적 공공공간 조성은 비단 광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도시들이 중산층과 중산층을 욕망하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재 조성 되고 재개발 되고 있다는게 정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경북 문경은 드라마 <태조왕건>의 촬영 도시로 불린다. 촬영지로서의 문경이 전의 수 많은 역사와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속초 아바이 마을도 마찬가지로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통한다”며 보여주기에 치중한 지역의 관광지 개발이 그 지역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퇴색 시키고 구경거리의 공간을 조성한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그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들의 삶의 이야기라는 본질을 외면한채 관광지로서의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에 현혹된 ‘가짜 기억’과 거기서 파생된 ‘가짜 낭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풍경. 사진= 정윤수 교수 제공

이어 국내에 중구난방 들어선 ‘벽화마을’을 예로 들었다. “가난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시작된 벽화그리기가 관광상품으로 이용되면서 보여주기식 공간으로만 치중됐다”며 “특히 ‘인천 동화마을’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인천 송월동에 조성된 동화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정작 그거리로 잘 다니지 않는다. 주말에는 일부러 피해서 다닌다. 가난한 삶을 구경하러 온 구경꾼들이 스마트폰과 DSLR을 들고 무차별적 슛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개인의 일상이,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 늘 관광객에게 노출되며 무작위로 도찰된다. 이곳에 온 구경꾼들은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며 자신의 박제화된 가짜 낭만과 기억을 기록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곳에서 똑같은 색체와 그림들을 보며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사진 찍는 가짜 낭만에 익숙해진 보편적 다수에게 경종을 울렸다.

▲ 시민과 소통하는 '집중 토크'의 진행 모습. 사진=서울시.

정윤수 교수의 열띤 강연이 끝난 후 시민들과 소통하는 ‘집중 토크’시간이 이어졌다. 진행자 이제이 교수는 “광장에서 뭘 하고 싶으세요? 내가 상상하는 서울 광장의 풍경은 어떤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토크에 참여한 한 시민은 “얼마전 유튜브에서 외국의 광장에서 일어난 ‘플레시몹‘ 한편을 봤다.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연주를 시작하더니,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환의의 송가>를 들려주더라.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렇듯 소음과 긴장의 광장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창조해내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한강 옆에 있는 시민 공원들이 굉장히 접근 하기 어렵다.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방법 등으로 쉽게 걸어서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공원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는 정윤수 교수(왼쪽), 진행자 이제이 교수.사진=서울시.

질문을 한 시민도 있었다. ‘공원’과 ‘광장’의 차이에 대해 묻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에 정 교수는 “일반적으로 볼 때 광장은 공원의 휴식기능을 포함한 도시의 공공적 기능이라는 의미가 더해준 공간이다”라며 “공공적 기능은 국가적인 행사를 치러야 할 때, 시민들이 문화적 축제를 벌이고 정치적 요구를 표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원은 공공적 기능 보다는 휴식과 나들이 공간으로 더 부각된 곳”이라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해 “도시의 공공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삶의 옛 풍경은 사라지고 현대 공간은 세대가 취향으로 공간이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얼핏 보기엔 평화롭지만, 대단히 분절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고 미세한 불가사의한 삶들이 공간과 개인을 연결하며 계속 유지되고 있어야 개인도 살고 도시도 산다. 그런 공간들의 확신이 ‘광장’이고 그런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고 수렴한 공간이 ‘카페’다“라며 ”이런 공간들을 시민들이 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성찰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연은 여느때와 달리 힘찬 구호로 끝이났다. 정 교수의 선창에 맞춰 시민들은 외쳤다. “광장에서! 사랑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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