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빅테크 시장도 출렁이고 있다. 단순한 AI 전쟁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시장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 쟁탈전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출처=오픈AI
출처=오픈AI

커지는 챗GPT 진영
챗GPT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월 20달러를 결제할 경우 더 빠르고 유연해진 챗GPT를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유료버전 챗GPT는 11일 국내에도 상륙해 벌써부터 빠르게 사용자를 모으고 있다.

챗GPT에 합류하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SKT가 대표적이다. 성장형 AI 서비스 ‘에이닷’에 오래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장기기억’ 기술과 사진, 텍스트 등 복합적인 정보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 서비스를 장착하는 가운데 GPT와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SKT는 2019년부터 한국어 기반 언어모델인 BERT, BART와 함께 GPT-2에 주목했으며 이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 바 있다. 2020년부터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3와 유사 성능을 보이는 한국어 범용 언어모델(GLM) 개발을 위해 국립국어원과 제휴하기도 했다. GPT-3 상용 서비스는 에이닷이 최초기도 하다. 그 연장선에서 에이닷에 GPT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사티아 나델라 MS CE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포스트 모바일 전쟁
챗GPT의 등장은 포스트 모바일 전쟁의 흐름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MS는 오픈AI와 가장 가까운 빅테크로 평가된다. 2019년 오픈AI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상태에서 최근 100억달러 추가 투자를 결정, 현재 오픈AI의 지분 49%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고도화에서도 시너지가 나오고 있다. 애저 오픈AI 서비스(Azure OpenAI Service)를 공식 출시하며 코덱스(Codex), 달리2와 함께 GPT-3.5를 탑재시켰으며 챗GPT 기능도 곧 추가될 예정이다. GPT-3.5를 포함한 최신 기술이 내장된 팀즈 프리미엄을 출시하고 오픈AI의 신규 대형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을 적용하는 한편 웹브라우저 엣지(Edge)에도 AI 기능을 추가했다.

AI와 가까워지는 검색 포털 빙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업그레이드된 빙은 먼저 스포츠 점수, 주가, 날씨 등 간단한 정보에 대해 더 연관성 높은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신규 사이드바를 통해 보다 포괄적인 답을 얻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웹 전반의 검색 결과를 검토해 사용자가 원하는 답을 찾아 주고, 이를 요약하는 완성형 답변(Complete answers)을 도출한다.

새로운 채팅 경험(A new chat experience)을 통해서는 완벽한 답변이 나올 때까지 검색을 세분화할 수 있다. 관련 링크도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자는 즉시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심지어 콘텐츠 생성도 가능하다. 이메일, 예약 링크를 포함한 여행 일정, 취업 면접 준비 문서, 퀴즈 등을 작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모든 결과는 콘텐츠의 출처를 인용하므로 참조하는 웹 콘텐츠 링크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MS와 오픈AI의 간격이 좁아지는 장면을 두고 포스트 모바일 패권 시장의 격변이 시작됐다고 본다.

사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며 MS는 핵심 플레이어의 지위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플랫폼 존재감을 크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와 iOS에 밀려 새로운 모바일 패권 시대에서 축출됐다. PC시대의 황제였으나 모바일 시대와 함께 주변부로 전락했다.

위기의 MS는 사티아 나델라 CEO 취임과 함께 선택과 집중, 나아가 협력의 시너지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아마존과 AI 전략을 연결하고, 최근에는 현대차 슈퍼널과 도심항공전략도 구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세를 몰아 오픈AI와의 만남은 AI 중심의 빅테크 지형도를 바꾸는 핵심 카드가 될 전망이다. 만약 MS가 빙에 챗GPT를 투입해 '구글링' 시대를 위협하는데 성공한다면, 모바일 시장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후 한동안 암흑의 터널을 걷던 MS가 클라우드에 이어 또 한 번 포스트 모바일 플랫폼의 권력을 꿰찰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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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필사의 반격
글로벌 빅테크 시장의 화두는 AI로 좁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장의 핵심 축은 초거대AI 경쟁으로 이동되는 분위기다.

이미 경쟁은 시작됐다. 알파고를 만들었던 딥마인드는 2800억 파라미터를 자랑하는 고퍼를,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는 5300억개의 파라미터를 보유한 메가트론을, 구글은 무려 1조6000억 파라미터를 가진 스위치 트랜스포머를 공개한 상태다. 네이버는 2400억 파라미터의 하이퍼클로바, 카카오는 300억 파라미터의 코지피티와 민달리를 등판시켰고 LG는 그룹 차원에서 3000억 파라미터의 엑사온을 출격시킨 바 있다.

오픈AI의 GPT는 또 다시 판을 흔들고 있다. 대화형AI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빠르게 인간의 삶에 파고드는 한편, 기존 인터넷 사업의 패러다임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AI와 만난 MS의 전략이 포스트 모바일 패권을 위협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검색'이라는 핵심 비즈니스를 통해 성공한 포털 플랫폼의 위기감이 크다. 인터넷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 시장은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으로 규정할 수 있다. HTTP에 기반하며 텍스트 중심의 콘텐츠를 이용자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인터넷이라는 끝을 모르는 바다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콘텐츠를 담은 무수히 많은 섬들이 떠오른 순간 모험가인 사용자들이 정처없이 유랑하며 섬 내부에 있는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다. 안내하는 사람도, 지도도 없다. 모험가들은 그저 섬의 콘텐츠를 이용만 할 뿐 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웹1.0이다.

포털의 등장으로 시장은 크게 재편된다. 구글처럼 끝을 모르는 바다에 흩어진 섬을 안내해주는 안내자가 등장했으며 아예 워터파크를 만들어 항해자들을 불러모으는 네이버같은 이들도 나타났다. 덕분에 항해자는 섬에 상륙해 경치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섬에 조그만한 오두막 정도는 지을 수준에는 이르렀다. 

모험가들이 섬을 찾아가는 패턴을 파악해 모험가들이 편리하고 쾌적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관리형 제국'이 탄생했다. 많은 학자들이 웹2.0이라 부르는 시대다.

최근에는 웹3.0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아직 그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모험가들 스스로가 섬의 운영과 소유를 책임지는 구조로 보는 시각이 중론이다. 물론 실제 섬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관리형 제국이던 플랫폼, 즉 구글과 네이버 등이 사라지고 사용자들이 수요자와 공급자가 되어 서로 만나면서 모든 콘텐츠를 공유한다.

기술적 뒷받침은 블록체인이다. 탈 중앙화 방식으로 가동되는 블록체인이 '만인의 공동점유'라는 마법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웹3.0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마크 안드레센 안드레센 호로위츠 대표가 블록체인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인터넷의 미래"라고 평가한 배경이다.

구글과 같은 포털 사업자에게는 재앙이다. 수단으로서의 플랫폼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 권한과 존재감은 대폭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의 불완전성, 나아가 요원한 대중화 가능성에 주목하며 '한 숨 돌릴 시간은 벌 수 있다'는 인식도 있었다. 웹3.0 시대는 아직 미완의 시대인데다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아직은 낮았기 때문이다.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MS와 만난 챗GPT가 포털이 중심인 웹2.0 시대의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지는 중이다.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가 중앙집중형 웹2.0 시대의 주역인 포털을 완벽하게 위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AI가 그 부족한 간극을 메워준다면?" 포털에게 닥치는 위협은 상상이상이다.

당장의 가시적인 위협은 검색광고 시장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챗GPT와 같은 대화형AI가 포털이 수행하던 검색의 영역을 빠르게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챗GPT 트래픽의 43.63%는 검색에서 발생하고 48.98%는 직접 링크에서 나온다. 포털 중심의 광고 시장을 AI가 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며, 이러한 전망이 현실이 된다면 포털의 힘은 크게 빠질 수 밖에 없다.

알파벳 전체에서 구글 포털 검색 광고 매출은 절대적이다. 네이버도 지난해 4분기 2조2717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서치플랫폼에서만 9164억원이 나왔다. 포털에게 검색 광고 매출이 일종의 캐시카우인 셈이다. 이를 챗GPT가 위협하고 있으며, 챗GPT와 손을 잡고 판을 흔드는 곳이 모바일 패권에서 밀려난 MS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구글이 챗GPT 등장과 함께 필사의 반격에 나서는 이유다. 구글은 지난해 'AI의 영혼 실재 유무'로 큰 관심을 모았던 람다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그린 레인 제도를 도입해 AI와 관련된 모든 내부 절차를 간소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종의 속도전을 통해 구글의 기반 뿌리가 흔들리는 일을 막겠다는 각오다.

회심의 반격카드도 나왔다. 시인이라는 뜻의 AI 서비스 바드(Bard)가 그 주인공이다. 람다 기반이며,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킨 최강의 AI라는 자신감이 크다.

다만 초반 스텝은 꼬여가고 있다. MS가 빙에 AI 기능을 대거 강화했다고 밝힌 다음날인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바드의 기능을 시연했으나 생각보다 허술한 경쟁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시연에서 바드는 "9살 어린이에게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JWST)의 새로운 발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태양계 밖의 행성을 처음 찍는 데 사용됐다"고 답으나, 이는 오답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태양계 밖 행성을 처음 촬영한 것은 2004년 유럽남방천문대의 초거대 망원경 VLT(Very Large Telescope)기 때문이다.

바드의 엉뚱한 대답에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등, 그 충격파는 상당했다. 검색 기능 책임자인 프라프하카르 라크하반 수석부사장은 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다만 그가 바드의 실수를 언급하며 AI의 함정에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라그하반은 'AI의 모든 것을 맹신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듣기에 따라 그 발언이 실수한 바드에 대한 변명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큰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구글 내부 사이트에서는 많은 직원들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을 지나치게 급하게 추진했다"고 비판하는 한편, 일부는 대량 해고를 추진하고 있는 선다 피차이 CEO를 겨냥해 "그의 리더십은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오픈AI에서 챗GPT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발자 일부가 구글 출신 이직자라는 점이다. 총 12명의 구글 개발자가 오픈AI로 이직했으며 그 중 5명이 챗GPT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 구글을 나와 오픈AI로 간 개발자들이 친정에 비수를 꼿는 순간이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 챗GPT를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포털인 네이버도 움직이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3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같은 새로운 검색 트렌드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서치 GPT를 상반기 내 출시할 것이라 밝혔다.

대화형 AI는 아니며 당장 네이버 검색 결과에 도입하지도 않는다. 다만 생성형 AI 전반의 신뢰성 부족 문제 등을 조금씩 잡아가며 기존 포털 검색을 보완하는 작업에는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한국어 데이터 베이스를 다량 구축한 상태에서 맞춤형 검색 결과를 창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 출처=연합뉴스
최수연 네이버 대표. 출처=연합뉴스

최 대표는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를 계속 발전시키는 한편 유료 B2B 시장도 열리고 있어 서치 GPT를 통한 수익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도 대응하고 있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10일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초거대AI는 빅테크에 유리한 환경"이라면서 “연내 AI 기반 버티컬 서비스를 빠르게 선보이면서 비용 경쟁력 있게 카카오 AI 역량을 높여 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코GPT를 추진하는 가운데 다양한 승부수를 띄운다는 방침이다.

코GPT는 60억개의 매개변수와 2000억개 토큰(token)의 한국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했으며 한국어를 사전적, 문맥적으로 이해하고 이용자가 원하는 결과값을 보여 준다. 주어진 문장의 긍정과 부정 판단, 긴 문장 한줄 요약, 문장을 추론해 결론 예측, 질문을 하면 문맥 이해해 답변하는 등 언어를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과제를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