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김아영(26)씨는 오늘도 친구들과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2000원~5000원 수준이면 한끼 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남은 용돈을 모아 이달 말 남자친구와 웨스틴조선호텔 정통 일식을 즐길 수 있는 스시조에서 인당 20만원하는 '오마카세 런치'를 즐길 계획이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로 불리는 MZ세대는 소비 중심에서 인간생활의 세가지 기본 요소인 옷과, 음식, 집까지 모든 영역을 휩쓸며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휩쓴 곳에는 '소비 양극화'가 선명해지는 모습이다. 이른바 'K자형 소비 양극화'다. 초고가와 초저가 제품은 늘어나는 반면, 품질 좋고 가성비 좋은 중간 제품판매는 줄고 있다. 중간시장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이 현상은 MZ세대 취향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했느냐에 따라 심화될 전망이다.

비싸거나 싸거나...명품·리커머스 '고공행진'

최근 '스티브 잡스'가 즐겨 신은 운동화로 유명한 뉴발란스의 '992' 시리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5분만에 동이 났다. 온라인 패션 사이트인 무신사가 진행한 1명을 뽑는 아디다스 스티커즈 구매권(28만9,000원) 온라인 추첨에서도 참여자가 28만2,627명이 몰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K자형 소비 양극화는 '의(衣)' 업종에서 가장 뚜렷하다. 명품·한정판과 중고시장이 활성화되는 사이 그 사이에 낀 국내 토종 패션브랜드들은 불황의 긴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반을 잡아왔던 터전마저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명품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전반이 큰 타격을 받으며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와중에도 전년과 같은 수준의 판매를 보였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방, 지갑, 쥬얼리, 시계 등 명품 매출은 125억420만달러(14조9,960억원. 작년 평균환율 기준)로 2019년 125억1,730만달러(15조120억원)와 비슷했다.

3대 명품으로 불리는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3개 브랜드의 지난해 국내 법인 매출은 2조5,000억원에 달하면서, 마지막으로 매출이 공개됐던 2011년보다 두자릿 수 이상 성장했다. 명품은 올해도 백화점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 17일간 실시한 봄 세일에서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 백화점 4사 매출 신장률은 지난 2019년 봄 세일보다 19%에서 64%까지 올라섰다.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리커머스 시장'도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리커머스' 시장은 2008년 4조원에서 2019년 20조원 규모로 커졌다. 명품이나 한정판을 소유했다 되파는 '리쎌 열풍' 때문이다. 트렌트 코리아 2021는 'N차 신상'이라고 정의했다. 여러차례(N차) 거래돼 누구의 손을 거쳤더라도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소비 트렌드다.

반면, 국내 토종 패션 대기업 5사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일제히 역신장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코오롱FnC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고, LF와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증감률이 전년보다 두자리수로 뒷걸음질 쳤다. 그나마 선방한 한섬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1%, 4.2% 하락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국내 중저가 패션 브랜드들은 맥도 못추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 3월 미쏘·로엠 등 6개 여성복 브랜드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한때 영캐주얼 브랜드로 인기가 높았던 세정그룹 니(NII)도 매물로 나왔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편의점에서 김밥먹고 모은 용돈, 호텔서 푼다

'식(食)'업종에서도 양극화는 마찬가지다. 'MZ 세대'를 잘 이해한 SNS 마케팅 전략과 체험 중심의 놀기 위한 장소로 탈바꿈한 레스토랑 등은 성황을 이룬다. 실제 신세계백화점 식당가 3월 매출은 전년대비 162.4% 신장했고, 호텔내 고급 식당가 역시 당일 예약이 어려울만큼 사람이 붐빈다. SNS활동이 활발한 MZ세대들 사이에서 맛집을 즐기고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플렉스' 문화 덕분이다. 대학생 김아영(26)씨는 "매일 밥 한끼를 먹기위해 1만원을 소비하기 보다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더라고 용돈을 모아 파인다이닝 찾는 것을 선호한다"며 "한번쯤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호텔에서 한끼 식사로 30만원을 지출하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3,000원' 한끼 식사로 안성맞춤인 편의점 먹거리 인기도 고공행진이다. 이마트24에서는 프리미엄 샌드위치 등 3,000원 이상 조리빵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20년 하반기 55%, 올해 1분기에는 117% 증가했다. GS25에서는 지난해 5월 출시한 식사용 제품 구독형 유료 멤버십 '더팝플러스'의 12월 기준 가입자 수가 7개월 만에 5.1배 상승했고, 초·중·고교 정상 등교가 시작되자 간편식 판매도 크게 늘었다.

덕분에 편의점은 김밥집(삼각김밥)을 넘어 고급 '빵집'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SNS에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지 못하는 일반 레스토랑과 식당들은 코로나19리스크까지 덮쳐 버티지 못하는 실정이다. 비대면 산업 확대에 뒤쳐진 전통적 대면산업 중심의 영세 소상공인은 회복에서 계속 소외되는 것이다.

'주(住)'에서도 마찬가지다. 호텔업계는 기존 5성급 호텔을 넘어 6성급 호텔 등 럭셔리 브랜드를 늘리는 분위기다. 호텔에서의 한끼, 하룻밤을 경험하려는 MZ세대들이 늘어난만큼, 문턱이 낮아진 호텔 분위기 속 기존 고객들이 설 자리도 줄어서다.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글로벌 호텔기업 프랑스 아코르그룹의 최상급 럭셔리 호텔 브랜드 페어몬트 호텔&리조트는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파큰원 단지 내 문을 열면서 국내 첫 진출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럭셔리 컬렉션 '조선 팰리스'를 오는 5월25일 오픈하고, 최근 리뉴얼을 마치고 문을 연 롯데호텔 제주는 럭셔리 호텔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샤롯데룸'을 마련했다. 호텔업계 한 관계자는 "MZ세대들이 호텔로 향하면서 과거보다 식당가, 룸 등 할 것 없이 예전보다 붐비고 있다.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고 비지니스 미팅을 하던 기존 고객들을 위한 공간 마련도 필요해졌다"며 "기존 고객들은 럭셔리로 옮겨가고 MZ세대들은 SNS에 본인 취향을 알릴 수 있는 콘셉트형 호텔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MZ세대 관심=매출'...고객따라 마케팅도 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 기업들은 MZ세대의 관심이 곧 매출로 이어진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케팅 방향을 바꾸고 있다. 특히 과거 젊은 세대가 제품 브랜드, 디자인, 소재 등을 구매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면, 요즘 MZ세대는 본인 관심사를 더 중요히 여긴다는 점에 주목한다.

패션기업 한섬은 자사 유튜브 채널 '푸쳐핸썸(Put Your HANDSOME)'을 통해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를 제작한 결과 지난 1월 기준 300만뷰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기업명과 브랜드 노출이 전혀 없는 웹드라마로 가치 중심 소비를 즐기는 MZ세대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웹드라마에 노출된 제품에 대한 입소문이 늘면서 웹드라마 방영 기간(2020년 12월11일~2021년1월5일) 한섬의 프리미엄 온라인몰 '더한섬닷컴'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05% 늘었고, 이중 MZ세대 구매액은 무려 149% 상승했다.

한섬 관계자는 "웹드라마 제작 전 MZ세대가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 속 인위적이고 직간접적인 광고를 싫어하고, 자신만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스스로 찾는 성향을 고려했다"며 "별도 판촉 이벤트가 없었음에도 짧은 기간에 온라인 매출이 100% 이상 늘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GS25에서 출시된 상품과 나이키 조던1 렌트로 하이디올. 출처=GS25.
GS25에서 출시된 상품과 나이키 조던1 렌트로 하이디올. 출처=GS25.

편의점에서는 말표 구두약 깡통에 초콜릿을 넣는가 하면 1980년대 집집마다 들여놨던 삼육두유도 아이스크림으로 소환했다. 유성매직 외형 병에 빨간색, 검은색으로 잉크색을 재현한 음료도 편의점 매대에 놓여 있고, 저녁 술자리에서 만났던 두꺼비는 마카롱, 컵케익, 젤리로 변신해 여성들의 손에 들린다. 스니커즈, 스트리트웨어, 럭셔리 시계 등을 거래하는 서울 옥션이 운영하는 리셀 플랫폼도 편의점에 들어왔다. '드로우유', '버터래플', '제로클럽 젤리' 등 스니커즈 문화가 담긴 편의점 상품들이 등장한 것이다.

콧대 높던 백화점은 얼굴로 여겨지던 1~2층에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를 적극 도입한데 이어 리커머스 시장도 넘보고 있다. 유통명가 롯데쇼핑은 중고나라 재무적 투자자로써 300억원을 투자했으며 현대백화점은 최근 여의도에 오픈한 야심작 '더현대서울'에 번개장터 첫 오프라인 스토어를 입점시켰다. 애경그룹 백화점 AK플라자와 신세계그룹 이마트24, 홈플러스 등에서도 일부 점포에 중고거래를 위한 자판기를 배치했다.

롯데하이마트도 최근 골프를 취미로 즐기는 MZ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유튜브 채널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 TV’와 손잡고 동영상 콘텐츠를 선보였고, 화장품업계는 MZ세대 취향과 성분 안전성에 대한 관심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클린 뷰티(Clean-beauty)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MZ을 타깃해 론칭한 로이비(LOiViE)는 온라인을 주력 유통 채널로 운영하다 내년에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고, 수년내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목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