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사상 최대 상장 규모를 자랑할 것으로 알려진 앤트그룹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역대급 상장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룸버그 및 외신은 3일(현지시간) 홍콩 및 상하이증권거래소가 앤트그룹의 상장을 중단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앤트그룹은 홍콩 거래소에서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이미 발행된 일부 주식 대금 및 개인투자자들의 청약 대금 환불을 시작했으며 6일부터는 상하이 거래소에서역시 발행된 신주 환불 절차를 밟는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에 따른 후폭풍에 집중하면서도,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의 행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앤트그룹의 상장 연기와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그리고 중국 공산당 특유의 정치체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인간, 마윈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는 1964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 전통연극인 경극 배우였으며, 집안은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다. 수학점수가 낮아 낙제의 연속이었고 대학도 2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항저우 사범대학 영어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해 월 1만5000원의 월급을 받으며 교단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20대 후반에는 영어교사의 꿈을 접고 사업가의 길을 선택한다. 처음 설립한 회사는 ‘하이보’라는 통역회사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사업에 '사활'을 걸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후 미국 출장에서 인터넷을 배운 그는 중국 최초의 인터넷 회사인 차이나 페이지스를 설립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는 1998년 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에 취직해 공무원으로 변신했으나, 1999년 퇴직해 자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생애 두 번째 인터넷 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알리바바다. 당시 그가 동료들에게 했던 말은 역사가 됐다.

그의 일성은 다음과 같다.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 기업이 아니다. 바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보라. 정말 열심히 일한다. 우리가 그들을 이기려면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정확히 퇴근하는 자세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거든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낫다. 믿도록 하자. 우리한테는 머리가 있고 강한 정신력이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면담으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한 그는 야심찬 풍운의 일보를 재개했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길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2001년 갑작스러운 재정난으로 한 사업부의 직원 전체를 해고하는 어려움을 겪는가 하면 2003년 개인 간 거래, C2C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설립하며 당시 이베이가 장악한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베이를 공략할 10명의 ‘특공대’를 조직하는 결기로 결국 판을 뒤집었다. 2007년 타오바오의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했으며, 이베이는 중국을 떠났다. 미국 언론은 마윈을 ‘미친 잭’이라고 불렀다. 마윈은 이베이를 물리친 일화를 두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다. 

그리고 2014년, 알리바바는 화려하게 미국 나스닥의 샛별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공산당
마윈의 알리바바는 중국을 대표하는 이커머스 업체로 승승장구했다. 덕분에 무일푼에 가깝던 그는 일약 중화권 최고수준의 부호로 올라설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아직 그가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단순한 이커머스를 넘어 신유통이라는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의욕적인 활동에 전념하는 그가 오랫동안 알리바바를 끌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전은 2019년 벌어졌다. 그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실제 발표는 2018년 11월) 마윈 창업주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은퇴는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앞으로 교육자의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의 미래를 설명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 모델을 시사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부자인 인물이다. 58세의 나이에 자기와 아내의 이름을 따 만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환경 등 다양한 자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마윈 창업주도 빌 게이츠처럼 인류에 공헌하는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마윈의 은퇴 선언은 갑작스럽고 놀라웠지만, 업계에서는 마윈 창업주의 선택을 두고 '기인'의 반열에 오른 CEO의 별난 선택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평소 협객이 되고싶어 태극권 고수를 경호팀으로 선발하고, 광장에서 갑자기 스스로 태극권 시연을 벌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마윈 다운 퇴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윈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은퇴에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윈 창업주가 퇴진을 발표한 2018년 11월, 당시 중국 톱스타 판빙빙의 탈세 의혹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는 미국 헤지펀드인 헤이맨 어드바이저스의 창업자 카일 배스와의 대화에서 판빙빙과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의 스캔들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중국 공산당이 마윈 창업주에게 알리바바 지분을 포기하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왕치산 부주석은 마윈 창업주를 따로 불러 "알리바바 지분을 포기하고 즉각 회사를 떠나라"고 요구했으며, 이러한 압박에 결국 마윈 창업주가 알리바바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다소 복잡해진다.

사실 마윈 창업주는 중국에서 사업하며 공개석상에서 수 차례 중국 공산당 체제를 옹호한 바 있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의 계획경제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시장자본주의를 추월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중국인 사업가의 일반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윈 창업주와 중국 공산당의 관계가 마냥 원만하지는 않았다는 증거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15년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은 알리바바를 짝퉁 판매 플랫폼으로 낙인을 찍으며 강한 압박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마윈 창업주는 당국을 찾아 직접 해명에 나서는 한편 백서까지 만드는 성의까지 보였다.

마윈 창업주가 은퇴를 선언한 직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이례적으로 그를 개혁·개방 정책에 공로가 큰 각 분야 인사 100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대목도 눈길을 끈다. 마윈 창업주가 공산당원이라는 것도 적극 알렸다. 업계에서는 마윈 창업주가 회사를 떠난 직후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 '약간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한편, 그가 공산당원이라는 점을 공표하며 다른 기업가들의 충성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왔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윈 창업주가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장쩌민의 자산 관리인"
마윈 창업주는 중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당과 우호적인 관계설정을 강조했으나, 중국 공산당은 마화텅 텐센트 창업주 등과 비교해 마윈 창업주에게는 온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분위기가 다수 연출됐다.

그 이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궈원구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궈원구이는 2018년 인터뷰에서 마윈 창업주가 공산당의 압박으로 알리바바를 떠났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를 "장쩌민 정 총서기 가족의 자산 관리인"이라 말했다.  

무슨 뜻일까. 

지금이야 중국 공산당의 정파 분류는 시진핑 주석 권력 강화의 그림자에 잠식되어가는 분위기지만, 최근까지만해도 중국 공산당의 3대 정파인 태자당과 공청당, 상하이방이 벌이는 치열한 암투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큰 변화를 겪은 바 있다. 태자당의 대표인물은 마오쩌뚱, 덩샤오핑 등이 있으며 공청단은 리커창 총리, 상하이방은 장쩌민 등이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시 주석이 권력을 잡은 배경은, 상하이방과 공청단의 권력다툼이 정점에 달하며 제3지대인 태자당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시 주석은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 차세대 주자 중 하나인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를 숙청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마윈 창업주가 상하이방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마윈 창업주를 둘러싼 중국 공산당 내부의 온도차이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파워게임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다시, 앤트그룹 상장 중단 
중국 공산당은 최근 폐막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9기 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통해 쌍순환 모델이라는 특유의 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는 한편, 미국과의 갈등에 있어 중국이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정리했다.

중국이 향후 15년을 바라보는 장기발전 방안을 논의한 것은 1996년 9·5계획 이후 처음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공작 조례 승인이 완료되며 시 주석의 권력을 더욱 강화됐다.

이런 상황속에서 앤트그룹 상장 중단의 배경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마윈 창업주는 알리바바의 지분을 매각하는 일이 있어도, 알리페이 지분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정도로 앤트그룹에 대한 사랑이 크다. 이런 가운데 앤트그룹이 상장에 돌입하며 시장의 기대는 컸다. 상하이와 홍콩증시에 동시 상장하는 앤트그룹의 중국 증시 공모가는 주당 68.8위안, 약 1만1613원이고 홍콩증시 공모가는 80홍콩달러, 약 1만664원이다. 총 상장 규모는 약 345억달러, 즉 약 38조9850억원에 이르며 역대 최대 상장인 아람코의 250억달러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상장으로 향하는 앤트그룹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압박이 상당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 및 틱톡, 텐센트에 대한 압박을 시사하며 앤트그룹과 같은 핀테크 기업에도 칼을 빼들 가능성이 제기되며 긴장감이 고조됐으며, 미 국무부는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며 직접적인 규제 가능성까지 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 및 상하이증권거래소가 앤트그룹의 상장을 중단하는 등, 진짜 위기는 중국에서 터졌다.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를 비롯해 앤트그룹의 주요 경영진들이 중국 인민은행 등 4개 규제당국에 소환된 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PBOC)을 비롯해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관리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금융당국은 2일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등 앤트그룹의 핵심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불러 질타한 바 있다.

마윈 창업주가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중국의 금융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윈 창업주는 중국 당국이 핀테크 발전에 있어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로 나가는 것에 불만을 표했고, 이에 4개 규제당국이 마윈 창업주를 비롯해 앤트그룹 경영진을 공개질타한 후 앤트그룹 상장을 막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앤트그룹이 핀테크 영토를 키우며 중국의 금융 시스템을 교란한다는 주장이 공산당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금융권의 업무를 하면서 덩치를 키워온 것이 중국 금융당국에 눈엣가시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는 앤트그룹에 대한 규제를 넘어, 중국 공산당이 핀테크 전반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실제로 중국 규제당국은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 발표 직전 핀테크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책을 시사한 상태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마윈 창업주가 지난달 24일 컨퍼런스에서 중국 금융 시스템을 비판할 당시, 현장에 왕치산 부주석이 있었다는 점이다.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만 왕치산 부주석은 시 주석과 같은 태자당 소속이면서, 마윈 창업주에게 알리바바를 떠나라 종용한 인물로 알려졌다. 결국 마윈 창업주가 최근 겪고있는 일련의 시련들은, 중국 공산당 내 파워게임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